청년과정을 통해 내일을 봅니다.
정재원
청년과정을 하게 된 나
나는 2023년부터 청년과정 1년차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청년과정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든 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갑자기 생각난 것이어도 바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청년과정이 되어서 얼마 지나지 않은 2월말에서 3월초까지는 애들과 별로 친하지도 않고,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왜냐면 내가 최고학년일 당시 인턴십을 나갔는데 그 시기에 편입으로 들어온 애들이 많았기도 했고, 내가 평소에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기에 애들이 나를 어려워 하기도 했다. 물론 최고학년 당시 ‘후배들이 왜 이렇게 나를 어려워 하지?, 나는 충분히 잘 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과 말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2023년 초반과 후반의 나를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모습이 보일 정도다.
졸업식을 마치고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나의 모습
나는 누구의 강요 하나 없이 스스로 청년과정을 경험해 보겠다고 했다. 사실 쉬운 줄만 알았다. 물론 청년과정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나가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보단, 내가 자라왔던 환경에서 지낸다는 게 쉬워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원래 알던 쌤들이나 청년과정 선배들은 나를 볼 때 적응을 아주 잘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적응을 잘하는 척 했던 것이다. 나는 약간 남이 나를 봤을 때 적응 잘하고 뭔가 잘하는 것 하나 있어 보이고 싶은 성향이 있다. 그래서 적응 잘하는 척 했던 것이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학기 초에 내가 인턴십을 나갈 당시 들어왔던 후배들과 말을 많이 안 해서 대천 캠프 때까지 친해지기 어려웠다. 청년과정의 우선적인 목표가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앞으로의 1년을 함께 하기 위해선 친해져야 내가 좀 더 덜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말 하기 부끄럽지만, 대천캠프를 갈 때까지 기존에 청년과정이었던 쌤들과 아이들이 대화를 할 때 너무나도 편해보이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만큼 아이들이 나를 편하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깨달은 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던 나
대천캠프 당시 태언쌤께서 다리에 큰 부상을 입으셔서 한동안 학교를 못 나오셨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1과정 아이들과 담임 시간을 함께했다. 담임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머리 아플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할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금방 끝나버리면 막상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대천캠프에 이어서 이번 캠프는 청년과정 2년 차 선배들이 기획해서 진행하는 캠프였다. 나는 2년 차 선배들만 캠프를 기획하는 줄 알았다. 근데 어느 날 남쌤께서 도움을 줄 테니 나에게 캠프를 기획할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솔직히 나는 이 당시에 좀 고민을 하는 척했지만, 마음만으론 정말 해보고 싶었다. 고민하는 척이라기보단, ‘과연 내가 이 짧은 기간 안에 캠프를 기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뭐든 해봐야 알게 되는 법이니 나는 캠프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주제 잡는 것을 남쌤께서 많이 도와주셨다. 여러 주제 중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은 그림(드로잉)캠프로 결정됐다. 내가 생각했던 건 동해바다에 가서 바다 풍경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수요조사만 했을 뿐인데 하고 싶은 아이들이 6명이나 됐다. 내 기억으론 연우, 영진, 동재, 태양, 민규, 동건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아서 길고 긴 회의를 통해 결국 연우, 영진이가 양보해서 네 명의 아이들과 채쌤, 그리고 내가 한 팀이 되었다. 조별로 회의를 하다가 동해보단 제주도로 가자는 의견이 많아서 제주도로 확정되었고, 그 당시 비행깃값도 비싼 편은 아니어서 제주도를 가게 된 것이다. 제주도 가는 것만으로 기대감이 높았지만, 제주도 가는 날부터 꼬여버렸다. 정확하지 않은 사이트에서 항공권을 예매해서 그런지 시간 맞게 도착했는데, 비행기는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공항직원분이 추가로 얼마를 더 내면 곧 출발하는 비행기로 변경할 수 있다 해서 추가 요금을 내고 비행기를 탔다. 그 당시 정말 큰 혼란이 왔었다. 제주도에선 그림도 그림이지만 아이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함께 생활한 덕분에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나도 캠프를 통해 ‘이런 변수도 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 시기가 있는 법
내가 청년과정 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학생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내가 학생 시절에는 마음에 안 들면 싫어하고, 얘기도 하기 싫었다. 예를 들면 나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편입생이 여름에 문 안 닫고 다니는 것과 잘 씻고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참고 참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 편입생과 1대1로 차분하게 얘길 해줬다. 하지만 그 대화가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되어 가다가 결국 열 번을 넘어섰다. 나는 참기 힘들어서 화를 내려고 했지만 내 성격상 화를 내긴 힘들었다. 그래서 정색하면서 문 잘 닫고 다니고 씻고 다니라고 얘길 해주었다. 나는 그 당시 그 후배와 친해지기도 싫었고 대화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과정인 나는 보조교사라는 부담감이 있어서 그런지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 당시에 내가 청년과정이었다면 문을 안 닫고 가도 내가 닫아 줬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된 이유가 어느 날 자기 전에 누워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나를 되돌아보고 나니 과거의 나랑 다를 게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문은 안 닫고 다니진 않았지만 그만큼 아직 성장하는 중이기도 하고 사람은 누구나 그럴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이후부터 완전히 바뀌진 않았지만, 서서히 바뀌어 갔다. 그런 마인드로 청년과정을 지내보니 정말 아이들과 보조교사로서 서로 불만 가질 일이 없었다. 앞서 이전에 내용에서 “하지만 내 마음가짐과 말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글이 있었는데 그 말의 의미는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나를 어렵게 생각할지, 편하게 생각할지 결정되는 것 같다는 말이다.
한 층 더 책임감이 높아진 나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이동학습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의 긴장은 더 커져만 갔다. 이번 이동학습은 프랑스에서 봉사활동과 스페인 산티아고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걱정도 많았지만, 한 편으론 샨티에서의 첫 해외 이동학습이니 기대도 되었다. 조를 정하는 데 있어서 현주쌤, 태언쌤, 보조교사 쌤들과 많은 회의를 통해 네 번이나 바뀌었다. 결국, 정해졌긴 했다. 나는 1년 차기 때문에 태언쌤과 함께 네 명의 아이들을 인솔할 교사가 되었다. 나도 혼자 아이들을 인솔하면서 안 친했던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은 했지만, 나의 과도한 욕심이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 현지 아이들과 놀이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친하지 않았던 샨티 아이들과도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이동학습을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렵고 긴장한 탓에 부담감을 더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동학습 준비는 연습일 뿐이었다. 프랑스에 가서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말을 조금만 더 귀 기울여 들어줬으면 했다. 한번 말씀하실 때 안 듣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물어보는 게 보기 좀 그랬다. 학생 시절의 나였으면 그러한 아이들의 행동들이 싫고 짜증 났을 것이다. 나는 인솔교사가 아닌 보조교사였기에 아이들이 혼나는 상황에서 딱히 할 말이 없었고, 할 말이 있었다고 해도 말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좀 더 선생님들의 말을 잘 들었으면 했다. 어찌어찌 프랑스 일정이 마무리되어가고, 산티아고를 걸을 날이 얼마 안 남은 상황이다. 우리 조는 체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산티아고 조를 조금 변경하기로 하였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동의하에... 우리 조는 태언쌤과 나, 그리고 은찬, 동건, 민규, 유준이었다. 태언쌤은 효래쌤과 함께 하게 되었고, 동건이는 현주쌤조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나 혼자서 은찬, 민규, 서윤이 세 명을 인솔하게 되었다. 나에겐 너무나도 큰 부담감이었다. “길 잃으면 어쩌지?, 언어도 못 하는데...” 라는 걱정 감이 너무 컸다. 하지만 나를 믿고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고 혼자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산티아고를 걷게 되었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인솔하게 되면서 부담감도 커졌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점점 켜졌다. 나는 어렸을 때 주변 어른들께서 하신 말씀이 본인이 일으킨 일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과거의 나는 정말 책임감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언갈 이끌고, 먼저 나서보는 일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인 것 같다. 그런 경험이 많지 않았던 이유도 용기가 부족해서였다. 어쨌든 이번 이동학습, 특히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책임감이 한 층 더 높아진 것 같다.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 새로운 시작을 고민하며….
이제 나를 제외한 나머지 청년과정 선배들의 졸업이 다가오고 만약 내가 2024년에 청년과정을 한다면 혼자 남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2년 차까지 함께 해보기로 했다. 청년과정이 나 혼자가 될 것 같아서 걱정됐지만, 와중에 이번 3과정이었던 영진이가 청년과정에 들어오고 싶다 해서 걱정이 줄어들었다. 영진이가 청년과정을 한다는 것이 확정되고 난 후에 갑작스럽게 큰 고민에 빠졌다. 돈 문제가 가장 컸다. 아버지가 학비를 버시느라 뼈 빠지게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기가 좀 그랬고,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안 그래도 우리 집안에 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내가 받는 돈이 부족하기도 했다. 내 계획 루트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청년과정 1학기만 하고 타일 자격증을 공부해서 인테리어 회사 대표님이신 이모부께서 보내주는 회사에 다닐지, 완전히 그만두고 바로 타일 공부를 시작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나는 1학기만은 마무리하고 타일 공부를 하고 싶었다. 만약 학교 측에서 한 학기만 하는 것이 힘들어서 2학기 이동학습까지 함께 해야 할 것 같다면, 나의 2학기 이동학습 비용을 학교 측에서 내주기 힘들다면 청년과정 더 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릴 예정이다. 왜냐면 내 입장에서 그리고 가족 입장에서의 큰 부담감은 돈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작년의 나보다 더 성장한 내가 되길.
올해의 내 계획이 아직 확정 나진 않았지만 이번 연도 청년과정을 1년 더 하던, 안 하던 청년과정 1년 차부터 지금의 나까지 많은 성장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작년에 아쉽게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번 연도 목표로 삼아 꼭 지켜볼 것이다. 먼저 뭐든 꾸준하게 이어나갈 것이다. 작년 동안 나는 무언갈 도전해 보고 싫으면 그만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을 좀 더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나를 발전시킬 것이다. 재작년에 비하면 청년과정 1년 차 때 훨씬 다양한 책을 도전해봤던 것 같다. 도전해봤던 책들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진 않았다. 내가 생각했을 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지 않아도 읽으려고 도전한 것 자체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년엔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다면 올해는 많은 책을 읽으려고 도전한 만큼 좀 더 집중적으로 읽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