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
추석명절 연휴기간에 여덟번째 해파랑길을 걷기로 했다.
큰 아이는 미국에서 공부중이고 작은 딸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각자 연휴를 보내야 할 상황이여서 남은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처음엔 3박 4일 일정으로 걸을 계획이었으나
첫날 15일(일) 강릉지역에 비 소식이 있어 마포집에서 하루를 더 머물고
16일(월) 새벽 4시 마포에서 강릉으로 향했다.
- 걸었던 날 : 2024년 9월 16일(월)
- 걸었던 길 : 해파랑길 38~39코스. (오독떼기전수관--모산봉-중앙시장-솔바람다리-경포대-사천진해변)
- 걸은 거리 : 33.5km (약53,000보, 8시간)
- 누계 거리 : 572.3km.
- 글을 쓴 날 : 2024년 9월 18일(수)
서울 마포에서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오독떼기전수관으로 향했다.연휴 둘째날 서울 시내에서 새벽녁에 서울시 외곽으로 빠지는 차량은 아직 한가하여 빠르게 달렸다.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지역을 지나는데 산에 안개가 자욱하다. 산자락 계곡에서 피어나는 안개을 보며 나는 산안개라 하고, 은여사는 구름이라 서로 우기며 대관령 터널을 지나 오독떼기 전수관에 도착했다.전수관 뒤 게울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요란하다.어젯밤에 비가 제법 많이 내렸나 보다.이슬비가 내려 비옷을 입고 모자를 쓰며 채비를 하고 7시 20분에 걷기 시작했다.
아침 7시 20분 일단은 고고!
이번 코스는 강릉 내륙 깊숙한 학산리에서 안인해변 솔바람 다리까지 인데 강릉 농촌 마을과 야산을 오르 내리며 단오공원, 창포 다리를 건너 중앙 성남시장과 월화정을 경유하는 코스이다.비가 오지 않았으면 한적하게 걸으면서 주변 경치도 즐기며 걸을 코스인데 이슬비가 내려 여간 불편하다.야산 등산로를 점령한 야생 잡초는 이슬비을 잔뜩 머금어 신발을 서서히 젹셔 오고 등로는 질컥거리고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그런데 산길을 걷다가 아내는 밤나무에서 떨어진 날밤을 몇개 주우면서 여간 즐거워 하기도 했으니 아이러니 하다.그런데 강릉지역은 해파랑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으나 매우 부실하여 없는듯 하고 야산에서 간간히 나부끼는 깃발에 의존 하는데 모산봉 자락을 통과 할 때 여러번 알바를 하면서 고생했다.강릉지역 해파랑길 이정표는 좀 아쉽다.
장현저수지 위 징검다리을 만난다.건너편 허름한 목조건물 서너채와 어우러진 주변 경치는 마치 한폭의 산수화 같은 모습인데 비가 내리고 적당한 운무가 주변에 머물고 있어 명작의 수채화를 보는것 같았다. 예전에 물래방아 터는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고 오늘의 날씨 탓인지 그 모습이 한 없이 정겨웠다.
장현저수지 위, 목조건물 아래 키 큰 수양버드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저수지 주변은 평화롭고 고즈넉 하여 목가적인 풍경이다.더우기 여튼 물안개가 잔뜩 깔려 있어 몽환적인 모습을 품고 있었으며 갑자기 뜨거운 커피향이 그리웠다.그리고 모네의 그림이 그리운건 우연일까? 나는 모네의 정원을 상상하고 있었다.
장현 저수지를 지나면 시가지로 접어든다. 경포중학교 앞 내리막 도로를 따라 내려가 단오공원을 만나고 단오공원 가운데를 가로 질러 남대천을 건너 시가지로 들어 간다.
철제로 만들어진 남대천 창포다리를 건넌다.
창포다리를 건너면 강릉시가지역에 들어 서게 되고 코스는 "강릉 칠사당"과 "강릉 대도호부관아"를 경유하게 한다.강릉 칠사당은 조선시대 7가지 정무(호구,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비리,단속)를 보던 관헌이며 강릉 대도호부관아는 조선시대 행정기관이 모여있던 관공서인 셈이다.(현판글 참조)
이제 시내 중심거리를 관통하여 중앙성남시장 안으로 들어 간다. 마침 내일이 추석이여서 명절 대목장 답게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으며 떡집앞에는 긴줄이 늘어서 있어 떡순이 아내는 송편떡 작은 포장(1만원) 하나을 사서 맛을 보는데 급 실망이다.아마도 지역이 달라서 식감이나 맛의 정도가 다른 모양이다.우리는 재래시장에서 돈가스집에 들어가 옛돈가스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고고!
시장 골목을 빠져 나오면 옛 철도 경강선 월화역 앞인데 핫한 거리였고 문화의 거리인듯 하다.장현저수지를 지나며 땡긴 커피향이 생각나서 컴포즈에서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샀다.구 철교는 월화교라는 이름으로 인도교가 되었고 우리는 "월화정"정자를 향해 다시 남대천를 건넌다.
솔바람다리에 도착하여 QR마킹를 하고 나는 카카오 택시를 불러 승용차를 가지러 간다. 아내는 솔바람다리를 건너 안목해변으로 북진하며 송정해변으로 걸었으며 나는 가져 온 승용차를 예약한 델타호텔 주차장에 주차하고 송정해변 소나무숲에서 아내을 만났다.송림해변 솔숲은 거리가 얼마인지 가늠하지 못하지만 소나무가 건강하고 관리도 잘 되어 걷기에도 편한 숲이다.맨발로 걷는 사람도 있고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서 휴식하는 사람도 보인다. 은자여사도 맨발로 걷는다.사실은 오전에 물 먹은 신발과 젖은 양말 상태로 걸어서 발바닥이 부르트고 따가워서 곧 물집이라도 잡힐것 같았다. 그래서 발바닥 맛사지를 겸해서 나도 잠시 맨발로 걸었다.
해변에는 명절 연휴에 놀러온 사람이 참 많아 놀랍다.이제 명절의 의미도 세대에 따라 또는 가문에 따라 달라진 모습이다.
잠시 해변 백사장으로 들어 서고
강문솟대 다리를 향해 걷다가
백두대간 할 때 지친몸으로 들렀던 솟대다리와 이 해변이 기억났고
송강정철의 관동별곡의 한대목에 ~
"외로운 배 닻줄을 풀어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동해가 거기로다.
조용한 경포의 기상 넓고도 아늑한 동해의 경계
이 보다 갖가지 다 갖춘곳 또 어디 있으리~" (현판글 옮김)
옛시인이 노래한 강문다리
지금은 다르지만
밤하늘 경포에 비친 달그림자,
동해로 흐르는데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 아닌 경계의 다리는
달 그림자의 경계였을까?
옛 시인의 시 한수
수백년 지나 그 시를 내가 읽었네.
경포호수 4.35km를 환종주 했다.마침 연등축제를 준비하고 있어 연등이 호수 주변으로 메어 달려 있고 연휴에 나드리 나온 일행들이 많다.그리고 어린아이까지 3대가 동반한 가족들도 많았다.이제 명절을 보내는 풍습이 시대에 따라 많이 바뀐 모습이다.경포호수는 4,000년전에 생성된 석호이며 반만년 자연생태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말 할 수 있고, 다양한 생물을 키워 내는 생태계의 인큐베이터 역활을 한다고 하니 보전해야 할 호수인 셈이다.호숫가를 걷는 동안 스치는 바람은 시원했고 잔잔한 호수의 기운에 편안했다.다인 가족용 자전거 페달을 낑낑거리며 밟는 손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즐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미소도 따뜻했다.그러나 몇년전 산불 화재로 경포호수 인근 야산과 펜션 건물이 불에 탄적이 있었다.지금도 그 흔적들을 볼 수 있어서 아품이 컷고 언젠가는 회복이 되겠지만 나무와 숲이 빨리 회복하기를 바랬다.
경포호수을 종주하고 나면 다시 해안가를 계속 북진하는데 해변 모래 해변은 계속 이어져 있다.경포호수 위쪽으로 순개울 해변, 순긋해변,순포해변,사천해변 그리고 사천진해변을 걸었다.순포해변 가게에서 이온음료 한개를 사 마시고 오후내내 해변 소나무 숲길과 2차선 지방도로 옆길을 번갈아 가며 따라 걸었다.본래 계획은 오독떼기전수관에서 솔바람다리까지 17.4km를 걸을 계획이었으나 어제 서울에서 하루 더 머물고 왔기에 오늘 오후 39번코스 16.1km를 더 걸어 총 33.5km를 완주했다.오전에는 이슬비에 비옷을 입고 걸었고 오후에는 따가운 햇살아래 걸었으니 미련스럽게 걸었다.그런데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코스 마감 구간까지 걸어야 하는 버릇이 있다. QR지점이 아니라도 중간 지점에서 중단하고 다음날 걸어도 되는데 마감구간까지 걷는 습관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오후 5시20분 사천진해변에서 마감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까 하다가 배차 시간표상 50여분이나 기다려야 해서 승강장 앞에 있는 택시를 타고 곧장 호텔로 돌아 가서 일과을 마쳤다.
2024년 9월 18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