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Antares 24.02.22 15:21 (https://cafe.daum.net/ahwha)
어향사(御香使) 안우(安祐)가 고려에 온 기록은 고려사 열전 정운경(鄭云敬) 편에 나오는데, 연대는 충혜왕(忠惠王)대라고 했을 뿐 정확한 연도는 나오지 않는다..
고려사 > 권121 > 열전 권제34 > 양리(良吏) > 정운경 > 정운경이 상주사록·지밀성군사로서 치적을 쌓다
http://db.history.go.kr/id/kr_121r_0010_0060_0010
정운경(鄭云敬)의 아들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부친 행장(行狀)에 같은 사안을 기록하고 있는데 연대가 지정(至正) 3년 즉 1343년으로 충혜왕(忠惠王) 복위 4년이다.
지정(至正) 원년(1341, 충혜왕 복위2), 지정(至正) 3년(1343, 충혜왕 복위4)
삼봉집(三峯集) 제4권 > 행장(行狀)
고려국 봉익대부 검교밀직제학 보문각 제학 상호군 영록대부 형부상서 정 선생 행장(高麗國奉翊大夫檢校密直提學寶文閣提學上護軍榮祿大夫刑部尙書鄭先生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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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至正) 원년(1341, 충혜왕 복위2) 6월에 전의주부(典儀主簿)가 되었다. 그때 자급(資級)은 다 승봉랑(承奉郞)이었다. 2년 8월에 덕직랑(德直郞)으로 올라 홍복도감 판관(弘福都監判官)이 되고, 동 3년 ☐월에 밀성군 지사(密城郡知事)로 나갔는데, 이때 재상 조 영휘(趙永暉)가 밀성 사람에게 받을 빚이 있어서 어향사 안우(安祐)를 통해 본군 밀성 에 공문을 보내어 받아 보내도록 했다. 그러나 선생은 그를 묵살하고 시행하지 않았다. 밀성의 영접나간 아전이 어향사가 김해부(金海府)에 달려 들어가 교외[郊] 어떤 본에는 교(郊)자가 없음. 까지 마중나오지 않았다고 부사(府使)를 매질하는 것을 보고는 빨리 달려와서 아전의 우두머리와 함께 들어와서 아뢰는 말이, ‘김해부사가 까닭없이 욕을 당하고 있으니 지금 명(빚 받으라는 명)을 따르지 않으면 어떤 욕을 당할지 모릅니다.’ 했으나 선생은 듣지 아니하니 온 고을 사람들이 위태롭게 생각했다. 어향사가 군에 들어와서 인사를 나눈 다음 묻기를, ‘전번에 공문 보낸 일은 어찌되었소.’ 했다. 선생은 답하기를, ‘밀성 사람이 빚을 진 것이 있더라도 조상(趙相 조영휘를 가리킴)이 스스로 받을 일이지 상공께서 물을 일이 아닙니다.’ 하니 어향사가 성을 내어 좌우의 사람으로 포위하게 하였다. 선생이 정색(正色)하고서, ‘이제 들 밖까지 마중나와 즐겨 천자의 명령을 맞는데 어찌하여 나를 죄주십니까? 상공께서 덕음(德音)을 펴서 먼 지방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고 감히 이런 일을 하십니까?’ 하니 어향사는 할 말이 없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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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正原年六月。典儀,注簿。階皆承奉郞。二年八月。加德直郞弘福都監判官。三年▣月。出知密城郡事。時宰相趙永暉以密人有負債者。託御香使安祐。移文本郡徵之。先生寢其事不行。密候吏見使馳入金海府。以不及郊 一本無郊字 迎笞府使。奔還。與長吏入白金海府使無故見辱。今不從命。辱且不測。先生不聽。一邑危之。使入郡禮畢。問前有移牒如何。先生曰。密人苟有負債者。趙自徵之。非相公所宜問。使怒令左右圍之。先生正色曰。今郊迎舞蹈。奉迎天子之命。何以罪我。相公不布德音以惠遠民。敢爲是與。使詘而止。
이 글에서는 정운경의 외삼촌으로 고려 문과에 장원급제한 안분(安奮)을 안장원(安壯元)이 아닌 안장원(安壯原)으로 쓰고 있는데,
이는 원(元)자를 휘하기 때문이다. 至正元年도 같은 이유로 至正原年으로 썼다.
같은 글이 "동문선(東文選) 제117권 / 행장(行狀)"에도 나온다.
고려국 봉익대부 검교밀직제학 보문각제학 상호군 영록대부 형부상서 정선생 행장(高麗國奉翊大夫檢校密直提學寶文閣提學上護軍榮祿大夫刑部尙書鄭先生行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