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형(安元衡)은 죽성군 아닌 광산군(光山君)으로 판명 : 안복초(安復初) 묘지명
Antares추천 0조회 31514.10.05 18:04댓글 0
한산정 | 안원형(安元衡)은 죽성군 아닌 광산군(光山君)으로 판명 : 안복초(安復初) 묘지명 - Daum 카페
게시글 본문내용
신죽산 안씨 시조 안원형(安元衡)의 군호는 죽성군(竹城君)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근래 도굴되어 공개된 그의 증손자 안복초(安復初, 1382-1457) 묘지명(墓誌銘)에는 안원형의 군호가 광산군(光山君)으로 되어 있다. 이같은 내용의 묘지명은 이승소(李承召, 1422-1484)의 삼탄집(三灘集)에 실려 알려져 있던 것이지만, 이승소가 착오로 잘못 쓴 것이라고 반박할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안복초의 실물 묘지명이 도굴되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승소의 삼탄집에 실린 안복초 묘지명이 정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1. 안복초 묘지명
안원형(安元衡)은 죽성군 아닌 광산군(光山君)으로 판명 : 안복초(安復初) 묘지명
公諱復初。姓安氏。竹州人。考諱魯生。嘉靖大夫仁寧府尹集賢殿提學。祖諱勉。通訓大夫光州敎官。曾祖諱元衡。重大匡光山君。府尹娶仁川望姓李氏典醫監資忠之女。以某年月日生公。
공의 휘는 복초이고, 성은 안씨이며, 본관은 죽주(죽산)이다. 부친의 휘는 노생이며 가정대부, 인녕부윤 집현전 제학이다. 조부의 휘는 면이며 통훈대부 광주교관이고, 증조부의 휘는 원형이며, 중대광, 광산군이다. 부윤(안노생)은 인천의 망성인 전의감 이자충의 딸에게 장가들어 모년 모월 모일에 공을 낳았다..............
실물 묘지명에서 이 귀절이 확인된 이상 안원형(安元衡)은 광산군(光山君)이지 죽성군(竹城君)이 될 수 없다. 이는 곧 안원형이 순흥안씨 였다 죽성군에 봉해져 죽산안씨가 되었다는 종래의 주장은 잘못 전해진 것이고, 그가 원래부터 죽산안씨임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실물 묘지명의 서두에는 삼탄집(三灘集)에는 없는 안복초(安復初)의 아들 안철손(安哲孫)이 지은 가장(家狀)을 참고로 하여 지었다는 말이 나오므로, 그 진실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안원형이 죽성군(竹城君)이 아니라면 그를 죽성군이라 한 구죽산안씨의 안씨동원보도 고려말 족보가 아니라 근세에 위작된 가짜 족보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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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복초(安復初, 1382-1457) 묘지명(墓誌銘)
도굴된 안복초 묘지명은 2점이나, 내용은 동일하며, 서두에 삼탄집에는 없는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유명조선 통정대부 회양도호부사 안공 묘지명 (有明朝鮮 通政大夫 淮陽都護府使 安公 墓誌銘)
天順元年丁丑正月二十九日戊午。通政大夫淮陽都護府使安公卒。四月初四日丁酉。以禮葬于原平府治之南。新堂山西麓。從先塋也。既葬。子哲孫。以所撰家狀。授成均大司成陽城李承召。"墓之有誌古也。將子是託焉。" 予考其狀。如公茂德醇行。不可不傳于後人。敢不諾而銘諸。
안복초의 아들 안철손(安哲孫)이 자신이 지은 가장(家狀)을 보여주며 이승소에게 부친의 묘지명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2, 삼탄집
이승소(李承召, 1422-1484), 삼탄집(三灘集) : 1515년 간행
회양 부사 안후의 묘갈명〔淮陽府使安侯墓碣銘〕 삼탄집 제13권 > 비갈(碑碣) - 번역문
淮陽府使安侯墓碣 삼탄집(三灘集) > 三灘先生集卷之十三 > 碑碣 a_011_507d - 원문
公諱復初。姓安氏。竹州人。考諱魯生。嘉靖大夫仁寧府尹集賢殿提學。祖諱勉。通訓大夫光州敎官。曾祖諱元衡。重大匡光山君。府尹娶仁川望姓李氏典醫監資忠之女。以某年月日生公。弱冠中監試。以父任011_508a補職。歷瑞興,信川,尼山守。由京市令都事咸吉道。尋陞經歷。入拜宗簿,內贍少尹。出爲潭陽府使。秩滿。遷典農少尹。未幾。復除淮陽府使。考最。授中訓大夫。後與監司不遇罷。嘆曰。吾以非才。致位通顯。年又老矣。豈可復躡危機。苟求榮進。遂决意退居交河縣墅。怡閑自養。人稱其恬於勢利。國家優老增秩。至通政大夫。年七十六。以天順元年丁丑正月某日病卒。卜葬得四月某日。以禮窆于原平府治之南新堂山西麓。從先塋也。公性忠恕。莊重寡言。喜怒不形。義以訓子弟。恩以撫九族。不喜干謁。不事產業。涖官淸愼。馭民寬簡。凡歷四縣兩府。皆有去後思。尼山人嘗上三十年治效。以公爲第一。此其驗也。配尹氏。中訓大夫襄011_508b州府使將之女。毓德華閥。歸于大家。承祀主饋。以順以則。生三男四女。長孟孫。先公沒。次哲孫。開城府經歷。次信孫。藝文待敎。皆力學登第。人以遠大期之。女長適司正張孟元。次適彥陽縣監徐居廣。次適生員崔井平。次適副司正李孝綱。孟孫娶戶長趙均女。生二男。曰致中,致和。經歷娶弼善崔有悰女。生一男。曰從道。待敎娶上護軍李士敏女。生二男。外孫凡十有二。皆幼。銘曰。
維其才可以有爲。維其德可以大施。而用不盡其才。位不稱其德。宜其委祉于後。益繁且碩。
삼탄집에는 안복초의 묘갈명(墓碣銘)이라 했는데, '묘갈(墓碣)'과 ‘묘비(墓碑)’는 묘소 앞에 세우는 비석으로 본래는 구분되었으나 후대에 와서 서로 통용되었다. 안복초 묘소에서 도굴되어 출현한 것은 묘지명(墓誌銘)으로 무덤에 묻어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묘소 인근에 세워 전해온 묘비는 없는 것 같으니 처음부터 묘지로 만들었던 것 같다. 맨 뒤에 명(銘)이 있고, 그 앞에 서문이 있으므로 정확한 명칭은 묘지명병서(墓誌銘幷序)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래 이미지들은 클릭하면 확대 됨.]
도굴 문화재 몰래 보관한 박물관장 YTN 2014-09-28 21:50
안복초 묘지명은 1분 10초 부근에 나옴.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여 확대해서 보면 대부분의 묘지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신죽산, 탐진 안씨의 순흥 안씨 분파 논란 관련 기록 정리
김태현처왕씨묘지명(金台鉉妻王氏墓誌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