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각묵스님 옮김), 제1권 게송을 포함한 가르침, 제1주제 천신 상윳따(S1),
제3장 칼 품 - 엉킴 경 · 마음의 고삐 경(S1:23~24)』
엉킴 경(S1:23)
Jaṭā-sutta
2. [천신]
"안의 엉킴이 있고, 밖의 엉킴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쭈오니
누가 이 엉킴을 풀 수 있습니까?"113) {55}
3. [세존]
"통찰지를 갖춘 사람은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근면하고 슬기로운 비구는 이 엉킴을 푼다.114) {56}
탐욕과 성냄과 무명이 빛바래고
번뇌 다한 아라한들이 이러한 엉킴을 푼다. {57}
정신ㆍ물질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
부딪힘[의 인식도 남김없이 소멸하고]
물질의 인식까지 남김없이 소멸하는
여기서 그 엉킴은 잘려지도다."115) {58}
마음의 고삐 경(S1:24)
Manonivāraṇā-sutta
2. [천신] [14]
"어떠한 마음[意]116)이건 고삐를 죄면
거기서 괴로움은 오지 않다네.
모든 곳에서 마음의 고삐를 죄면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합니다." {59}
3. [세존]
"마음[意]이 이미 잘 제어되어 있다면
모든 곳에서 마음 고삐 죌 필요는 없으리.
그에게서 사악함이 생겨나올 때
그런 때에 마음 고삐 죄어야 하리."117) {60}
113) 본 게송은 『청정도론』 제1장에서 『청정도론』 의 시작 게송으로 인용된 잘 알려진 게송이다. 본 게송에 대한 『청정도론』 의 설명을 인용한다.
"엉킴(Jaṭā)은 갈애의 그물과 동의어이다. 그것은 형색[色, rūpa] 등의 대상들에서 아래위로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로 꼬여 있다는 뜻에서 엉킴이라 한다. 마치 대나무 덤불 등에서 가지들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것을 엉킴이라 부르듯이 그것은 자신의 네 가지 필수품과 다른 사람의 필수품에 대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안의 감각장소[處]와 밖의 감각장소에 대해 일어나기 때문에 안의 엉킴과 밖의 엉킴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엉킴으로 뒤얽혀 있다.
마치 대나무 덤불 등이 대나무 가지들로 뒤얽혀 있듯이 중생의 무리라 불리는 모든 유정들이 이 갈애의 그물에 뒤얽혀 있다. 그것에 의해 한데 얽혀 있고, 서로 꼬여 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뒤얽혀 있기 때문에 '고따마시여, 당신께 그것을 여쭙니다.'라고 그것을 여쭙고 있다. '이와 같이 삼계를 얽어두는 엉킴을 누가 풀 수 있습니까? 즉 누가 이것을 풀 능력이 있습니까?'라고 그[천신]은 질문하고 있다."( 『청정도론』 I.1)
114) 본 게송도 『청정도론』 의 모두(冒頭)에 앞의 천신의 질문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청정도론』 의 방대한 내용은 계ㆍ정ㆍ혜 삼학을 표방하고 있는 본 게송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청정도론』 에 나타나는 본 게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인용한다.
"여기서 이것이 [게송의] 간략한 설명이다. 계에 굳건히 머물러서: 계에 머물러서. 계를 철저히 봉행하는 자를 여기서 계에 머무는 자라 부른다. 그러므로 계를 철저히 수지하여 계에 굳건히 머문다는 것이 여기서의 뜻이다. 사람: 중생이다. 통찰지를 갖춘: 세 가지 원인을 가진 재생연결을 통해 업에서 생긴 지혜를 가진. 마음과 통찰지를 닦는다: 삼매와 위빳사나를 닦는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삼매를 서술했고, 통찰지라는 이름으로 위빳사나를 서술했다.
근면한 자: 정진하는 자. 왜냐하면 정진은 오염원들을 말려버리고(ātāpana) 태워버린다(paritāpana)는 뜻에서 열(ātāpa) 이라 부른다. 그것을 가진 자가 근면한 자(ātāpī)다. 슬기로운 자: 슬기로움을 일러 통찰지라 한다. 그것을 갖춘 자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깨어 있는 통찰지를 나타낸다. 질문에 대답하는 이[게송]에서는 이처럼 세 번의 통찰지가 언급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첫 번째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통찰지(jāti-paññā)이고, 두 번째는 위빳사나의 통찰지(vipassanā-paññā)이고, 세 번째는 모든 일을 주도하는 깨어 있는 통찰지(pārihārika-paññā)이다.
윤회에서(saṁsāre) 두려움을(bhayaṁ) 보기(ikkhati) 때문에 비구(bhi-kkhu)라 한다. 그가 이 엉킴을 푼다. ① 계와 ② 마음이라는 제목 아래 표현된 삼매(定)와 ③-⑤ 세 가지의 통찰지(慧)와 ⑥ 근면함이라는 이런 여섯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마치 사람이 땅 위에 굳게 서서 날카롭게 날을 세운 칼을 잡고 큰 대나무 덤불을 자르는 것처럼 할 것이다. 즉 그는 계의 땅 위에 굳게 서서, 삼매의 돌 위에 [갈아] 날카롭게 날을 세운 위빳사나 통찰지의 칼을, 정진의 힘으로 노력하였기 때문에 깨어 있는 통찰지의 손으로 잡아, 자기의 상속에서 자란 갈애의 그물을 모두 풀고 자르고 부수어버릴 것이다. 그는 도의 순간에 엉킴을 푼다고 한다. 그는 과의 순간에 엉킴을 푼 자가 되어 신을 포함한 세상에서 최상의 공양을 받을만한 자가 된다."( 『청정도론』 I.7)
115) "정신(nāma)'이란 네 가지 정신의 무더기(수ㆍ상ㆍ행ㆍ식)이다. '부딪힘의 인식과 물질에 대한 인식(paṭighaṁ rūpasaññā ca)'에서 '부딪힘의 인식'이라는 문구는 욕계(kāma-bhava)를 말했고, '물질에 대한 인식'이라는 문구는 색계(rūpa-bhava)를 말했다. 이 둘을 취함으로써 무색계(arūpa-bhava)도 포함되었다. '여기서 그 엉킴은 잘려진다(etthesā chijjate jaṭā).'는 것은 여기 삼계윤회가 끝나는 이곳(pariyādiyana-ṭṭhāna)에서 이 엉킴은 잘려진다는 말이다. 열반에 도달한 뒤 잘려진다, 소멸된다는 뜻을 보이신 것이다."(SA.i.50)
116) 여기서 '마음[意]'은 mano를 옮긴 것이다. 본서 전체에서 mano는 마노[意]로 옮기고 있지만 여기서처럼 문맥상 마음[意]으로 옮긴 곳도 있다. 마음[心]과 마노[意]의 차이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해제 §3-(2)-⑤를 참조할 것.
117) 주석서에 의하면 이 천신은 유익한(kusala) 마음이건 해로운(akusala) 마음이건, 세간적인(lokiya) 마음이건, 출세간적인(lokuttara) 마음이건, 모든 경우에 다 고삐를 죄어서(nivāretabba)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uppādetabba)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복주서는 여기에 대해서 이 천신은 어떤 마음이든 일어나면 그것은 다 괴로움을 가져오기 때문에 무의식 상태(acittaka-bhāva)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을 첨가하고 있다.(SA.i.50)
여기에 대해 세존께서는 '이 천신은 벗어남으로 인도하지 않는 말(aniyyānika-kathā)을 하고 있다. 마음은 고삐를 죄어야 할 마음도 있고, 닦아야 할(bhāvetabba) 마음도 있다.'라고 생각하시면서 이 두 번째 게송을 말씀하신 것이다.(Ibid) 마음의 고삐를 죄는 것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 「류트 비유 경」 (S35:246) §3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