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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량의 긁는개. 조선시대 최고의 음식재료는 개고기였다. 음식디미방에서도 다양한 개고기조리법이 등장한다. 개 중에서는 누렁개가 가장 선호됐다
동물의 내장 속에 각종 음식을 넣어 삶아낸 순대요리의 대표 격은 돼지순대다. 그러나 개고기를 즐겨 먹었던 조선시대에는 개순대가 양반가에서 인기였다. 우선 개를 잡아 뼈를 모두 발라 버리고 그 고기에 후추, 산초, 생강, 참기름, 진간장을 넣어 만두소를 이기듯 한데 섞는다. 돼지 피가 들어가는 돼지순대와는 달리 개 순대에는 개의 피가 들어가지 않는다. 이를 깨끗하게 빤 개 창자에 넣고 시루에 담아 한나절 정도 약한 불에 찌면 개 순대가 완성된다.
17세기 조선 양반가의 음식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은 실로 다양한 개고기 요리법이 소개된다. 책은 개순대를 어슥어슥 썰어 식초와 겨자를 쳐서 먹으면 맛이 아주 좋다고 설명한다.
음식디미방은 경북 북부의 안동과 영양 일대에서 살았던 정부인 안동 장씨가 한글로 쓴 책이다. 조선 중기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 실상을 잘 알려주는 문헌이다.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서 가치가 매우 높으며 고어사전에 올라가 있지 않은 특이한 어휘들도 상당수 실려 있어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서 디미는 지미(知味)의 당대 표기법으로 이해된다. 즉 음식디미방은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법'으로 풀이할 수 있다. 책에는 총 146가지(면·떡류 18가지, 어육류 74가지, 술 51가지, 식초 3가지) 음식 조리법을 설명한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 시대이지만 여전히 개 식용은 논란이 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개고기를 일상적으로 먹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개고기가 제사상에 올랐고 유교의 창시자 공자도 개고기 애호가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불교를 국교로 신봉해 개고기를 멀리했다. 하지만 조선에 들어와 성리학을 숭배하면서 유학자들도 공자를 따라 개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현재 개 요리법은 탕, 수육, 전골 정도만 겨우 남았지만 조선시대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음식디미방에서도 개순대를 비롯한 많은 수의 개고기 요리가 등장한다. 개장꼬지 누르미는 꼬치구이와 유사하다. 개고기를 살짝 삶은 뒤 썰어 후춧가루, 참기름, 진간장을 함께 섞어 뒀다가 다음날 꼬챙이에 꿰어 굽는다. 구운 누르미는 꿩고기 육수에 장, 기름, 후추, 산초, 생강가루 등을 섞어 데운 즙에 찍어 먹는다.
개는 어떻게 삶아야 맛이 좋을까. 먼저 개에게 황계(黃鷄) 한 마리를 먹여 5~6일 지나 그 개를 잡는다. 고기를 잘 씻어 맑은 장 한 사발, 참기름 다섯 홉을 타 김이 새지 않도록 봉한 항아리에 중탕한다.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삶아야 한다. 책은 오늘날 먹지 않는 허파와 간 등 내장을 요리하는 방법도 전한다. 저자는 가장 맛있는 개의 종은 황백견(黃白犬, 누렁개)이라고 했다.
음식디미방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밥과 죽 요리법을 빼놓은 점이다. 밥 짓기가 너무 평범해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현재 양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추가 보이지 않는다. 고추는 임진왜란(1592~1598년) 때 전래되고 17세기 초반부터 재배되기 시작했지만 17세기 후기에 쓰여진 이 책에는 이를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북 북부지역에는 고추를 키우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신 향신료로는 개고기 요리에서 언급됐듯이 산초, 후추와 함께 마늘, 파 등이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 꿩. 꿩고기 역시 개고기와 함께 양반가 요리에 많이 쓰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선 중기 양반가에서는 만두를 메밀가루로 빚어 먹었다. 저자가 책을 쓸 시기에는 밀 재배가 일반화하지 않았다. 밀가루를 일부 활용하기는 했지만 워낙 귀하다 보니 밀가루에는 진(眞)자를 붙여 '진가루'로 표시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만두피나 면류를 요리할 때에는 대부분 메밀가루나 녹두가루가 들어갔다.
만두를 만들기 위해서는 메밀을 빻아 가는 모시나 비단에 거듭해 거듭 쳐서 이 가루를 죽처럼 풀로 쒀야 한다. 이 풀을 반죽해 만두피로 썼다. 끓인 메밀풀로 만두피를 만드는 게 무척 생소하다. 그리고 오늘날 만두소는 두부, 부추와 돼지고기를 주로 이용하지만 당시에는 무를 무르게 삶아 덩어리 없이 다지고 꿩고기를 으깨어 간장에 볶은 뒤 잣, 후추, 산초가루와 함께 넣어 빚어 사용했다. 꿩고기가 없으면 종종 쇠고기를 넣기도 했다. 만두는 삶아서 초간장에 생강즙을 혼합한 소스에 찍어 먹었다.
꿩고기로는 김치도 담아 먹었다. 오이지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제거한 뒤 먹기 좋게 한치 길이로 도톰하게 자른다. 꿩고기를 삶아 잘라놓은 오이지 크기로 썰어 오이지 국물에 소금 등을 넣고 나박김치처럼 삭을 때까지 둔다.
쇠고기는 책에서 개고기나 꿩고기 등 다른 고기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것처럼 기술돼 색다르다. 질긴 고기 삶는 법에서는 쇠고기가 늙은 닭과 함께 질긴 고기로 분류된다. 쇠고기는 산앵두나무, 뽕나무잎 스무 개, 껍질을 벗긴 살구씨 5~6개 등을 한데 넣고 뽕나무로 불을 때 삶으면 고기가 연해진다. 쇠고기를 삶을 때는 반드시 뚜껑을 열어둬야 해가 없다고 덧붙인다. 돼지고기도 개고기나 꿩고기보다는 인기가 덜해 그 조리법 역시 멧돼지 고기 삶는 법, 집돼지 볶는 법 등 매우 간략하게 다뤄지고 만다.
▲ 참새고기는 여러 양념을 한뒤 단지에 넣어 두고두고 먹던 별미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에서 진미로 꼽는 곰발바닥 요리도 소개된다. 물론 중국 요리법과는 전혀 다르다. 곰발바닥을 불로 그을려 털을 태운다. 가죽을 벗겨 버리고 깨끗이 씻어 무르게 삶는다. 곰발바닥은 다 힘줄로 돼 있어 약한 불로 오랜 시간 고아야 한다. 다 익으면 간장기름을 발라 굽는다. 1970~1980년대 포장마차에서는 참새고기를 팔았다.
그때는 참새들이 인간을 무척 겁냈다. 참새고기를 먹지 않는 요사이는 참새들이 인간을 거의 겁내지 않는다. 음식디미방에는 추억의 소주안주였던 참새고기 요리도 다뤄진다. 참새의 털, 눈, 부리, 발, 내장을 모두 제거하고 고기를 술로 깨끗이 씻어 말린다. 참새 한 마리에 소금과 끓인 기름, 좋은 술 한잔으로 양념해 두 마리를 한데 합하되 그 속에 산초, 파 등을 넣고 단지에 넣어 단단히 싸둔다. 익으면 다양한 요리 재료로 쓴다.
빈대떡도 지금과 무척 다르다. 녹두를 갈아 기름을 부어 지진 뒤 그 위에 꿀로 반죽한 팥소를 얹고 다시 녹두반죽을 부어 잘 익힌다. 녹두와 돼지고기 등을 섞어 굽는 지금의 빈대떡과 비교할 때 그 모습은 호떡에 가깝다.
게로는 젓을 담아먹기도 했다. 게젓은 우선 소금을 물에 넣고 달여서 식혀야 한다. 달인 소금물이 미지근해지면 게가 잠기게 부어 그 위에 가랑잎을 덮어 돌로 눌러 둔다. 소금의 양은 게 열 마리에 한 되가 적당하다. 열흘 쯤 경과한 후 먹으면 된다.
한여름철 과일인 복숭아를 한겨울에도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 비법도 알려준다. 밀가루 풀을 쑤어 소금으로 간을 해 깨끗한 독에 넣는다. 그리고 갓 딴 복숭아를 밀가루 풀 속에 두고 단단히 봉해두면 한겨울에도 제철과일처럼 복숭아를 즐길 수 있다. 수박도 오랜 기간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깊은 광주리나 큰 독에 쌀겨를 넣고 거기에 묻어 얼지 않는 방에 간수하면 썩지 않는다.
책에는 갖가지 술 제조법이 제시된다. 술이 제사용, 접빈용, 일상용, 약용 등 생활의 여러 면에서 많이 쓰여서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저자는 정성을 다해 이 책을 썼다. 그래서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이 책을 썼으니 그 뜻을 알고 이대로 시행하라. 딸자식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질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라.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해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아라"고 당부한다.
▶정부인 안동 장씨(1598~1680, 장계향) = 안동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장흥효이고 어머니는 첨지 권사온의 딸이다. 19세에 출가해 이시명의 두 번째 부인이 됐다. 6남2녀를 뒀으며 둘째 아들 현일은 이조판서를 지냈다. 현일이 쓴 '정부인 안동장씨 실기'에 따르면 장씨는 행실과 덕이 높아 굶주린 사람들을 구휼하고 노인과 고아를 돌봤으며 서화와 문자에도 뛰어나 훌륭한 필적을 다수 남겼다. 영양군 석보면 원리동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 배한철 매일경제 영남본부장 : 고전으로 읽는 우리역사 / 매일경제 프레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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