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담스님
경덕왕은 백성들에게 존경 받는 왕으로 남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아버지 성덕왕의 업적을 기리는 일을 위해 성덕대왕신종을 주조하게 했다. 이어 아버지처럼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성군이 되기 위해 덕망 높은 승려를 초빙해 길을 묻기도 했다.
하루는 대신들에게 추천을 받아 충담스님을 모셔오게 했다. 충담은 여기저기 떠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백성들을 도와주기로 유명했지만 어디에서 사는지 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충담은 그의 거처가 불분명한 것처럼 그의 행적 또한 신비스러웠다. 그의 걸음걸이는 보통 사람과 같았으나 자세하게 보면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서라벌 북쪽 마을에 어린아이가 북천 깊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건질 엄두를 못 내고 있었으나 충담스님이 뛰어들어 아이를 구했다. 그 아이의 부모들이 감사 인사라도 전하려고 스님의 뒤를 아무리 뛰어 쫓았으나 천천히 걷는 스님의 걸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왕이 충담스님을 찾아오라고 명했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왕이 남산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월정교 누각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마침 허름한 옷을 걸친 스님이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범상치 않게 보여서 왕이 그를 모시고 오게 했다.
왕이 “스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충담이라고 하옵니다”고 대답했다. 왕이 깜짝 놀랐으 나 태연하게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라고 또 물었다. 충담은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하고 오는 길입니다”고 답했다. 왕이 차 한 잔을 청하자 충담이 기꺼이 차를 달여 올렸는데 왕이 차를 마시는데 차의 맛이 특이하고 그윽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차를 마시고 왕이 “과인이 들어보니 스님께서 화랑 기파랑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었다는데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노래를 지어줄 수 있는지요”라고 청했다. 이에 충담사는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다/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로 생각하신다면 백성들이 나라의 사랑을 알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사는 백성들은 이를 먹임으로써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백성들이 말한다면 나라가 유지될 줄을 아실 것입니다/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경덕왕이 충담의 노래를 듣고, 존경해 나라의 스승으로 모시고자 했지만 충담은 거듭 사양하고 총총히 일어나 자리를 떠나갔다.
충담스님은 매년 3월3일과 9월9일에 남산 미륵세존에 차를 공양했다. 이를 이어받아 경주지역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충담재를 열어 충담스님을 추념하는 한편 남산 삼화령을 찾아 차 공양 의식을 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