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09-03)
소망과 인내의 기간
다니엘 9장 20-2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소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고통스러운 현재는 미래 회복될 소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절망(絶望)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과 같이 강퍅한 마음을 만지시고, 무너진 마음을 세우시며,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해 주시며 그리고 사막과 같은 삭막한 곳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조용히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루실 시간을 찬찬히 기다려야 합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기 시작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내려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칠십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셔서 영원한 의가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또 육십 이레 후에는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 끊어지며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쏟아질 것입니다.
이상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20-23)
다니엘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갈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셨던 큰 이상들을 깨달아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의 범죄를 위해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범죄한 일들에 대해 참예하고 회개할 때, 우리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응답하신 시간이 언제입니까?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1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22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23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20-23)
다니엘은 조국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때, 어떤 대가를 바라보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위해 대해 자신의 일처럼 회개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비록 그는 바벨론 포로의 신분으로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앙적인 자세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영적인 생활의 패턴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던 시간을 기억하면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21)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머리 속에 ‘예루살렘 시간표’가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기도했던 것처럼, 하루에 세 번씩 성소를 향해 기도했습니다(6:10).
오늘날로 표현하면 그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교회와 교회의 영적인 프로그램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기준을 하나님의 일에 집중한 것입니다. 몸은 세상에서 일을 하지만, 마음은 ‘지금쯤은 교회에서 예배시간인데...’, ‘지금쯤은 교회에서 일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금술사]라는 책을 썼던 파올로 코엘료는, 그의 책에서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당신의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마음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삶도 모든 삶의 기준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당신의 마음이 있길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을 하나님께서 다니엘처럼 강력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찬양//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자세를 기쁘게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 시간 중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응답을 알려 주시고자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23)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명령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할 때, 시작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주시려는 지혜와 총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간절히 구하여 알고자 한 바를 이상 중에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총명을 주심을 믿고, 그분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주변에 생각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답답함이 가득하십니까? 다니엘처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기도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약속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간절히 전해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는 당신이 되길 바랍니다.
칠십 이레의 이상(24-27)
하나님께 나갈 때,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고,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들이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총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은 이상이 무엇입니까?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24-27)
가브리엘이 예레미야가 선포한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2절)의 의미를 풀어준다. 한 해가 '주간(間)의 해'로 계산돼 칠십 년이 일흔이레, 곧 사백구십 년으로 확장된다. 여섯 동사를 사용해 일혼 이리의 마지막에 성취될 일들을 간략히 기슬한다. 처음 세 동사는 부정적이고, 뒤의 세 동사는 긍정적이다. 허물과 죄와 죄악은 동의어로, 죄악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 '영원한 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움을 가리키는 것 같다(7, 14, 16절). 이스라엘에 행하신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8:12-14 과 관련해서는 성전의 회복을 생각해볼 수 있다. 환상과 예언은 일차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가리키지만, 폭넓게는 종말에 관한 모든 예언을 포함한다. 환상과 예언이 그대로 실현돼 진실이었음이 확증된다. "지 극히 거룩한 이는 '가장 거룩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원래는 지성소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성소를 가리킨다. 성소의 기름부음은 성소의 봉헌을 의미한다. 안티오코스 4세에 의해 더러워진 성소가 유다 저항군의 지도자 마카비에 의해 회복돼 다시 여호와께 봉헌된다. 25절은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다. '그러니 너는 (이것을 알고 깨달아야 한다. 예루살렘을 회복
을 받은 자, 가흐르리라. 또 예순두 이레 동안 (예루살렘이 다시 장과 해자를 갖춰 재건되겠지만, 어려운 때가 되리라.' 두 주기의 기간이 주어진다. 첫 번째는 일곱 이러로,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이다. 사람의 말(영)일 경우에는 유배민의 귀환과 성전의 재건을 허락한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스 1:1-4), 하나님의 말씀일 경우에는 예레미야의 칠십 년 예언 또는 23절의 말씀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니엘서의 문맥에서는 세 번째 가능성, 곧 다리오 왕 원년에 가브리엘을 통해 다니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기름 부음" 의식은 왕과 제사장에게 적용되기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재건을 주도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일 수 있다(슥4:14). 일곱 이레 다음에 올 시대에는 예순두 이레의 기간이 주어진다. 첫 번째 기간은 시작과 마지막에 초점을 맞추는데, 두 번째 기간은 전체를 뭉뚱그려 요약적으로 기술한다. 재건된 예루살렘에 많은 주민이 정착해 살면서 광장도 마련하고 적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할 수 있게 성 주변에 해자도 세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나 사회적·경제적으로 활발하게 살아가지만, 평안이 보이지 않는 “곤란한' 시대다. 26-27절은 약이 기승을 부리고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마지막 한 이레에 관한 언급이다. 예순두 이레가 지난 후에 잘려나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주전 170년 대제사장 메넬라오스의 술수에 빠져 살해당한 오니아스 3세를 가리킨다(참조, 11:22 마카비하 4:23-28).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한 왕(지도자)의 백성은 대제사장 야손이나 메넬라오스를 지도자로 하는 유대의 헬라주의자들보다는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에 주둔시켜놓은 셀류코스 왕조의 병사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 주둔한 안티오코스의 용병들이 예루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