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4일부터 18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
한동안 팬데믹으로 열리지 못하다가, 지난해 마스크를 쓴 채 소규모로 다시 문을 열었는데요. 올해는 드디어 정식으로 마스크도 벗은 채 팬데믹 이전과 똑같이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숲속책방 천일야화>는 팬데믹 기간 중에 발간되어서 책과 관련한 행사들을 거의 치루지 못했고요. 전국의 서점 몇 군데만 돌면서 강연회를 해서 책을 내고 독자들과 만날 기회를 잘 갖지 못했습니다. 책이 나온지 벌써 2년 된 구간이지만 도서전이 열리는 김에 출판사 "남해의봄날" 부스에서 일일 책방지기가 되어 두 시간 동안 깜짝 사인회를 열었습니다.
서점과 관련한 두 권의 책....벌써 오래된 고전이 되어버린 듯해 어색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유명 작가 사인회야 뭐 저 앞에서부터 줄을 서고....미리 와 기다리고....성황이지만....저같이 이름없는 시골 저자 사인회에 누가 와줄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모처럼 서울에서 반가운 얼굴들 만나는 즐거움으로 달려간 자리예요.
도서전을 맞아 리커버 표지를 부착한 책...
그리고 이 책을 산 독자들을 위해 밤마다 글을 써서 준비한 책방지기 엽서들을 들고 앉았어요.
나를 만나러 와 줄, 내 책을 읽어줄, 혹은 이미 읽어주었던 독자들을 생각하며 "천일야화" 속 한 구절을 써넣거나 짧은 시를 써넣어 문장 엽서를 만들었습니다.
도서전은 성황이라 사람들 오가는 발길은 분주하고....남해의봄날 부스에도 방문객이 많이 찾아주었습니다.
앉아있다보니 신기하게도 어린이들이 제 책에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ㅎ
표지가 동화처럼 예쁘다 보니 맘에 들었나봐요. 게다가 고양이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주었고요. 어린이가 읽을 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못읽을 책도 아니니까요, 부모님이 함께 읽어주시면 좋다 말씀드렸어요.
모두가 바쁜 와중에 굳이 저를 만나러 와 준 고마운 독자님들과도 많이 만났습니다.
이미 제 책을 읽은 분들, 책방에 방문하셨던 분들이 와서 인사해주셔서 고마웠어요.
도서관 시절부터 나의 귀한 제자(?). 책을 좋아하던 꼬마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출판인이 되어 동종업계 종사자가 되었어요. 오늘도 잊지않고 함께해주어서 기뻤답니다.
이번 도서전을 위해 준비한 열 다섯 그림책 작가들의 <바캉스 프로젝트>.
사전예약한 책을 찾아왔습니다. 마침 부스가 바로 근처에 있어서 그날 함께하신 무려 네 분 작가님 사인을 보자기에 받아올 수 있었어요. 저를 통해 사전 주문했던 캄보디아 친구 보따리와 책방 보따리....이 자체가 작품이라 아직껏 보자기를 풀어 내용물을 보지도 않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서 사인회 시작하기 전에 한 시간 동안 급하게 도서전을 돌아볼 수 밖에 없었는데요.
곳곳에 작가 강연회며, 사인회에 많은 독자들이 모여있는 걸 보니 기쁘더군요. 아직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만큼 살아있구나 하는 기쁨....그러나 곧이어 여기 온 이 독자들이 전부가 아닐까 하는 슬픔....무엇보다 도서전에 온 독자들이 압도적으로 20,30대 여성들이었다는 점이 제게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베스트셀러는 20,30대 직장여성들이 만든다는 출판계 불문율이 있었지만 그 현상이 좀 더 심화된 것 같았어요. 그들 외에는 이제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것도 같았고요. 그러니 그들에게 맞춘 책들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고 독립출판물 부스가 작년보다 두 배가 확대된 것도 그 독자들의 영향때문인 것 같아요.
과연 그 시장에서 오래된 책방지기, 늙은 저자는 무슨 글을 쓰고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제가 참 재미나게 읽었고 또 좋아했던 천명관 작가님 사인회가 있어서 살짝 엿보았는데요. 역시나 흰머리 성성한 작가님의 모습이 또 한번 제게 세월을 느끼게 했습니다. 다행히도 부커상 후보라는 화제성이 있어서 다시 한 번 젊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사인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이 고마웠어요.
오랜만에 참여한 서울국제도서전은.....자세히 살펴보지 못해 총평을 하기는 어렵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행사였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시즌3이 마지막 방송을 했는데요.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
김사부가 던진 묵직한 한 마디가 새삼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낭만"이 있었기에 책방과 저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말도 안되는 세상을 겪으면서도 저의 낭만을 어떻게 지켜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도서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마주한 드라마에서, 질문하기를 포기하고 싶은 저를 향해 던진 듯한 김사부의 말이 울림이 되어 계속 저를 흔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