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수호지 - 수호지 26
- 얼간이 무대와 반금련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무송이 혼자 거리를 거닐고 있으려니까 누군가가 불러 돌아보니 뜻밖에 그의 형 무대였다.
고향에 계신 줄로만 알고 있던 형님을 그 곳에서 만난 무송은 깜짝 놀랐다.
"형님, 여기엔 웬일이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며칠 후에는 청아현으로 형님을 찾아 뵐려고 하였는데 ...,
아무튼 반갑습니다."
두 형제는 근처 찻집으로 들어갔다.
무대가 고향을 떠나 양곡현으로 이사를 온 이유를 설명했다.
"고향에서 장가를 들었는데 건달들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 반년 전에 이리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단다."
무대와 무송은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간인데도 외모나 성격이 너무나도 달랐다.
동생은 산같이 큰 체구에 엄청난 힘을 지녔는데 비해, 형은 키가 5척이 되지 못한데다 얼굴도 못생기고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는 얼간이었다.
그런 못난이 주제에 어떻게 반듯하게 생긴 여자를 아내로 맞게 되었는지 그 일은 참으로 공교로웠다.
청아현에 한 부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몸종 중에 나이 스물에 뛰어나게 얼굴이 반반한 반금련이란
여자가 있었다. 그 부자 영감이 반금련에게 흑심을 품고 일을 저지르다,
반금련이 홱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가서 이 일을 주인 마님께 고해 바쳤다.
당연히 주인 마님은 노발 대발했다.
그래서 속으로 크게 한을 품은 부자 영감은 그 앙갚음으로 반금련을 동네에서도 제일 가난하고 못생기기로
이름난 무대에게 내어 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마을 안에 시샘하는 젊은이들은 무대를 괴롭혔다.
그러니 무대는 팔자에 없는 미인 계집을 얻어 가지고 도리어 골치만 앓고 있었다.
계집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라 그저 그대로 붙어산다 뿐이지, 계집이 속으로 밤낮 다른 사내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무대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대는 그대로 청아현에서 살 수가 없어 마침내 이곳 양곡현으로 집을 옮기고, 전과 마찬가지로
떡장수를 하면서 그날 그날을 지내 오던 중에 이렇듯 아우 무송을 만난 것이었다.
무대는 아우 무송을 보자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리며 반가워헀다.
"경양재에서 호랑이를 잡은 장사가 너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지 뭐냐, 어서 내 집으로가자."
무송은 형을 대신해 떡이 올려진 지게를 지고 무대 뒤를 따라갔다. 집에 도착하여 무대는 무송을 아내에게
소개했다.
"호랑이를 때려잡고 이번에 장교 자리에 임명된 내 아우야. 무송아, 여긴 내 처다."
무송이 형수를 보니 얼굴은 예쁘지만 첫눈에 행실이 좋지 않아 보였다.
반금련은 무송의 늠름한 체격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인데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을까?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모시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하필이면 난쟁이 얼간이한테 시집을 왔으니 내 팔자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을까?'
반금련은 철철 넘치는 애교를 부리며 무송에게 말을 걸었다.
"도련님, 숙식은 어디서 하세요?"
"포도청 숙직실에서 지내지요."
"불편한 데 계시지 말고 저희 집으로 옮기시지요. 형이 워낙 호인이라 남들이 업신여기는데 도련님같이
든든한 분이 계시면 누가 감히 놀리겠어요?"
그러나 무송은 일부러 형님의 집에 들르지 않았다.
떡장수를 하는 형이 올 때마다 돈을 주며 형수 몰래 쓰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이 고장 태수는 부임한 이래 상당한 황금을 모아 동경의 친척 집에 그 황금을 맡겨 두었다가 장래에
승진 운동을 할 때 뇌물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동경으로 황금을 가지고 가는 도중에 도적에게 빼앗길 우려가 있어 힘센 장사를 물색하던 중에
무송을 적임자로 생각하고 그에게 그 일을 맡기기로 하였다.
태수의 분부를 받은 무송은 술과 고기를 사 들고 형네 집으로 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무송은 형 무대에게 말했다.
"형님, 저는 태수님의 심부름으로 동경에 다녀와야 합니다. 두어 달 걸릴 텐데 그 동안 형님이 건달들한테
봉변을 당할까 걱정입니다. 그러니 제가 없는 동안에 떡장사는 일찌감치 마치고 일찍 집에 돌아 오십시오.
집에 돌아오셔도 문 단속을 잘 하고 누구와도 시비를 걸지 마십시오."
그리고 형수 반금련에게도 부탁했다.
"형수님께서 형님을 잘 돌봐 드려야 합니다. 형님은 고지식한 분이라 형수님이 도와 드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무송이 동경으로 떠나자 무대는 아우가 시킨 대로 한나절만 장사를 하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꼭 닫아 걸었다. 반금련은 그럴 때마다 무대에게 욕설을 퍼붓고 바가지를 긁었다.
"대낮부터 대문을 닫아 거는 집이 어디 있어? 여기가 초상집이야! 남들이 뭐라고 그러는 줄 알아?
내가 남편한테 감시받고 있다고 그런단 말이야!"
"누가 뭐라든 난 동생이 시킨 대로 하겠어."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자 북풍이 그치고 차츰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여 봄기운이 찾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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