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金銅彌勒菩薩半跏像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은 높이 83.2cm로 삼면에 화려한 조각을 한 높은 관을 쓰고,
하체 앞뒤에 규칙적인 의문(衣文)을 새기고, 몸 좌우에도 허리띠에 연결된 긴 장식띠가 수직으로 내려 왔다.
살포시 눈을 감고 깊은 철학적 명상에 빠진 모습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닮았지만,
그 표정은 훨씬 성숙해 보이면서 깨달음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간 느낌을 준다.
태양과 초승달을 결합한 장식이 솟아 있는 화려한 보관(寶冠),
가느다란 듯 힘이 넘치는 신체의 곡선, 천의(天衣)자락과 허리띠의 율동적인 흐름,
높이가 82.9㎝나 되는데도 두께를 2~4㎜로 유지한 고도의 주조 기술. 미술사학자 강우방은
“언뜻 고요해 보이지만 위대한 보살 정신의 생명력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기념비적 작품”
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불상을 고구려에서 만든 것으로 보지만
백제설· 신라설도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반가사유상.
사유상의 보관과 천의에도 신령스러운 기운의 표현이 숨어 있다.
인간의 실존적 운명을 자각하고 깊은 사유에 몰입해 있는 인간적인 모습인 사유상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은
종교는 불교뿐이다. 싯다르타 태자의 고뇌에 찬 모습은 점차 희열에 차서 법열을 느끼는 은은한 미소를 띠게 된다.
인도에서 성립되어 중국에 이르러 수많은 사유상이 만들어졌지만 조형적 완성을 이루어 독립된
예배 대상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 이르러서였다.
국보 78호 금동일월식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금동연화관사유상은 그런 의미에서
세계미술사상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금동일월식사유상은 불교가 수용되어
6세기 전반부터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불과 100년 남짓한 시기에 만들어진 걸작품이어서
우리 민족의 뛰어난 잠재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 국보78호와 83호의 비교
국보 78호(왼쪽) 반가사유상은 화려하다.
장식에 신경을 쓴 반면 몸통은 직선으로 흐르고 손발은 다소 뻣뻣하다.
국보 83호(오른쪽) 반가상은 장식성이 확연하게 사라졌다. 대신 가슴을 통통하게 표현하는 등
생동감이 있다. 손가락도 78호에 비해 작고 멋을 부린 흔적이 있다.
특히 명상 중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듯하여 인상적이다.
● 일월식사유상 보관에 감춰진 영기 무늬
나는 일찍이 모두가 신라의 작품이라고 알고 있던 때에 이 작품이 고구려의 것임을 논증했다. 그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사유상은 일반적으로 일본 학계의 명칭을 따라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으로 불리지만
반가(半跏)란 말은 반쯤 앉았다는 의미여서 어색하다. 생각에 깊이 잠기면 자연스럽게 취해지는 자세이므로
그저 사유상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존재의 머리 주변에는 후광(後光)을 표현한다.
인도 불상의 광배(光背·불상의 후광)는 단순한 편인데 중국에 이르러 크게 변화가 일어나
광배의 넓이가 확대되고 그곳에 다양한 역동적 영기(靈氣) 무늬를 새겼다.
우리가 흔히 화염 무늬라고 부르는 것은 ‘불꽃 모양의 영기(靈氣) 무늬’인 것이다.
그러한 영기 무늬는 광배뿐 아니라 보관(寶冠)에도 나타난다.
일월식사유상의 보관은 장식이 매우 복잡하고 화려하다.
나는 이미 가장 윗부분의 3장식이 페르시아 지배자의 관에 장식된 해와 달을 결합한 일월(日月)장식의
변형임을 규명한 적이 있다. 그 보관을 실측하여 그 세부를 알린 지 25년 뒤 이 글을 쓰면서
보관 장식의 한 부분의 비밀을 풀게 되니 감회가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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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 중앙부에서 양옆으로 잎처럼 솟아오른 이상한 무늬들은
평양 덕화리 1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익히 보아온 바로 그 영기 무늬 아닌가.
금동반가사유상 보관 중앙 부위의 상세도 덕화리1호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영기무늬
전체 모양도 영기의 싹을 3차원적으로 표현하였거니와 그 안에 선(線)으로 조각한 무늬도
바로 영기의 싹으로 그 끝에서 파장 무늬가 나와 운동감을 나타낸 것은 그 벽화의 무늬 그대로다.
게다가 보관 양쪽에도 역시 똑같은 영기 무늬 다발이 역동적으로 표현돼 있다. 그것은
보관 띠의 끝자락이 아니었다. 보관 띠는 한두 가닥이면 충분한데 무려 열 개가 넘는 다발을 이룬 것은
중생을 널리 구하겠다고 맹세한 보살의 위대한 정신을 마음껏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봐도 고구려 불상일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 천의무봉<天衣無縫> 반가상, 天衣되살렸다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함께 한국 불교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높이 83.2cm·6세기 후반 삼국시대)이 처음으로 보존 처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훼손된 천의(天衣) 끝자락을 복원하는 등 최근 보존 처리를 마치고 이달 중 복원된 모습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그 존재가 알려진 이후 95년 만에 복원된 것.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을 다시 공개 전시하는 것은
2006년 10월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일 “지난해 3개월에 걸쳐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의 보존 처리 작업을 진행해
반가사유상 등 뒤 좌우 아래 천의의 훼손된 끝자락을 수지(樹脂)를 사용해 모두 복원했다”면서
“보수 부분은 반가사유상의 다른 부분과 색감과 질감이 동일하도록 처리했다”고 밝혔다.
-2008. 04. 02. 동아일보 윤완준 기자의 기사 중에서-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올리고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특히 얼굴의 미소가 압권이다.
몸 전체를 감싼 천의는 반가사유상 목에서 타원형의 대좌(臺座)까지 흘러내려
반가사유상의 신체 곡선과 사유의 아름다움을 두드러지게 해준다.
그러나 1912년 천의의 뒤쪽 좌우 끝자락이 훼손된 채 발견됐고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 부분을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시돼 왔는데, 드디어
1912년 그 존재가 알려진 이후 95년 만에 복원된 것이다.
첫댓글 늘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상세하게 비교도 해 주시니 새로운 사실도 배우고 갑니다.
동란님, 감사합니다. 신경을 많이 써서 작성했기에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맞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