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추억
정경희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다. 그 중에서도 주로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는 것을 추억이라고 한다. 퇴직한지 4년이 지났다. 앞만 보고 달리던 생활에서 이제는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진다. 지나간 일기장을 꺼내 수정하고 저장하는 기분이 이럴 것이다. 어린 날 무섭기만 해서 어지간히 싫어한 아버지를 떠올리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는 농사 일 밖에 모르는 농부이었다. 동 트기 전부터 하루가 끝나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일 하였다. 오직 소 한 마리에 의지하여 농사지었기에 언제나 바쁘고 힘들었다. 가을이 되어 밭작물 수확할 때는 아버지와 어린 우리들은 숨바꼭질을 한다. 아버지는 하나라도 일 더 시키려 하고, 나는 조금 더 밖으로 뛰어다니고 싶어 하니 자연히 숨바꼭질 하는 꼴이 된다.
얼마 전 시장 모퉁이에서 뻥튀기 가게를 지나게 되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찌그러진 알루미늄 통에 곡식을 줄지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몇 대의 기계가 돌아가는지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연신 ‘ 뻥뻥’ 소리를 낸다. 설 명절 앞두고 수북이 채워지는 돈 통 만큼이나 아저씨 목소리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차분하지 못한 탓인지 구석구석 곡식 낟알들이 흩어져 있다. ‘저 아까운 것을’ 아버지가 보았다면 "아까운 곡식 줍지 않는다."고 화내었을 것이다.
갑자기 어린 시절 콩 타작하던 일이 떠오른다. 아직은 더위 남아있는, 가을이 막 시작되는 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여름 더위에 잘 여문 메주콩을 뽑아 마당 한 구석에 널어둔다. 잘 마를 수 있게 뒤적일 때마다 콩꼬투리 터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꼬투리를 탈출한 콩이 햇빛에 반짝인다. 아마도 콩꼬뚜리도 자유를 원하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도리깨를 들고 왔다. ‘도리깨는 콩이나 보리 등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농구 중 하나이다. 긴 작대기 끝에 서너 개의 휘추리를 달아 휘두르며 친다. 요즘은 농가에서 탈곡기나 콤바인을 사용하므로 보기 힘들어진 농기구이다.’ 도리깨질하기가 힘든다. 요령이 없으면 자신을 후려치게 된다.
허공에서 한 번 회전한 휘추리가 바닥을 칠 때마다 꼬투리가 떨어진다. 또 한 번치면 꼬투리 속 콩들이 튀어 나온다. 박자 맞추어 바닥 때리는 도리깨질이 어지간히 재미있어 보인다. 아버지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도리깨질 흉내를 내어 보지만 잘 안 된다. 어쩌다 성공이다 싶어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비틀거리다가 휘추리에 내 머리만 한 대 맞을 뿐이다. 콩 대를 걷어내어 소죽 끓이는 아궁이 옆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땔감으로 쓰면 화력이 꽤나 강하다. 콩깍지와 콩을 분리하면 아버지 일은 끝이 난다. 콩깍지는 땔감이 아니라 소 먹이로 사용된다.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음은 어린 우리들의 일이다. 쪼그리고 앉아 마당 주변을 빙빙 돌며 달아난 콩 낟알을 주워 모은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일이다. 종류별로 콩 농사지었기에 싫은 일을 몇 차례나 더 하였다. 이런 속도 모르는 친구들은 번갈아가며 ‘같이 놀자’고 불러댄다. 도리깨질에 놀라 멀리 달아난 콩은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다. 친구들이 다녀가면 그때부터 놀러 나가고 싶어 좀이 쑤신다. 한 알 한 알 낟알 콩 줍는 것이 지루하기이를 데 없다.
콩 타작하고나서 며칠 뒤 비가 내렸다. 벼 익어가는 이 때 "가을비는 필요 없다."며 어른들은 하늘을 쳐다본다. 밤새 내린 빗물에 퉁퉁 불은 콩이 허옇게 모습을 드러낸다. "콩 주워 모으라고 했더니 뭐 했냐?"며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된다. 아침잠이 확 달아난다. 얼마나 꼼꼼하게 주웠는데 왜 빠졌지? 아버지가 화를 내든 말든 어린 우리들은 키득거리며 콩을 줍는다. 그렇게 주운 콩은 소죽 끓이는데 들어간다.
콩 들어간 쇠죽 먹느라 콧김을 푹푹 불어내는 황소 보고 있으면 괜히 보람 느끼기도 한다. 가끔씩 황소 부릴 일이 있는 날은 따로 모아둔 콩깍지를 넣어 소죽을 끓인다. 콩깍지를 탈출하지 못한 콩들이 소의 특식이 된다. 곡식 한 알도 귀중하게 여기는 아버지 보고 자랐다.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요즘 사람들은 곡식 한 알을 생각하는 마음이 옛 어른들만은 못한 것 같다. 뻥튀기 기계 주변에 흩어진 곡식이 있어도 낟알 줍는 이는 없다. 세상 참 많이 변하였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내 마음도 많이 변하였다.
아버지는 일밖에 몰랐다. 곡식 한 알은 중요하면서 어린 자녀 마음 다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며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그래도 배곯지 않고 잘 살았다. 내가 어른이 된 지금, 어쩌다 흩어진 곡식 낱알도 그냥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의 말 없는 가르침이 유전인자로 나에게 옮겨져 있구나 싶다.
아버지와 아무 연관 없는 뻥튀기 가게 앞에서도 아버지를 생각한다. 항상 밉기만 했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흐르는 세월 따라 지난 일들이 아름답게 저장되는 것이 참 좋다. 힘들어하는 지금 일들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시 저장될 것이다.
(20250104)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