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구관조라는 새가 사람 흉내로 웃기기는 하나 말로 의사를 소통하는 것은 사람이 유일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말’에 대한 격언이나 속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다양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는 말이 인간 사회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은 말을 잘 사용하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에 위치하고 있다.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작은 학교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폐교가 되었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략 학교를 중심으로 5리 내외에 살고 있었다.
시골 자연부락의 특색은 마을마다 동성이 집성촌 이라는 부락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처가살이 하는 사람, 남의 집 일을 돕다가 정이 들어 정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타 성씨가 가뭄에 콩 나듯 섞여 살게 되는 마을도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학교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위치한 곳에 ‘대죽리’라는 곳이 있었다. 대죽리는 들어 넓어서 인지 15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그 마을 친구들의 성씨를 보면 세 성씨가 마을의 대부분 이었다. 김씨 박씨 류씨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대죽리 한대마을 입구에는 이름도 생소한 말 무덤이 있다. 말 무덤이라고 하면 주인을 이롭게 하고 의롭게 죽음을 맞이한 말(馬)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놀랍게도 말(馬)의 무덤이 아니고 세계 유일의 말(言) 무덤, 즉 언총(言塚)이다.
사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말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이 무덤은 500여 년 전에 만들어져 오랜 시간 동안 잊혀 지다시피 하다가 1990년 경 마을 앞에 비석을 세우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50여 년 전쯤만 해도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말(言) 무덤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지금은 자긍심도 대단한 듯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말 무덤이 생겨났을까?
우리 친구들의 성씨에서 보듯이 옛날부터 이 마을에는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았는데 성씨 간에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이 마을을 지나던 풍수지리를 잘 아는 과객이 마을을 둘러싼 산의 형세를 보고는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서 길게 뻗어 위턱 모습이어서 개가 짖어대는 형상이니 마을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실제로 친구들이 살고 있는 대죽리을 둘러싸고 있는 낮은 산의 모습은 흡사 개의 입이 벌어진 모습 이어서 ‘주둥개산’으로 불리고 있다. 그 과객은 형세만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말싸움을 그칠 방안으로 개의 송곳니 위치인 지형가운데에 뾰족한 바위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 길 입구에 재갈 바위까지 세워 개가 더 이상 짖어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주둥개산에 큰 구덩이를 파게 하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집에서 사용하는 사발 그릇을 가져오도록 했다. 서로 헐뜯고 비방하던 욕설로 인하여 서로에게 가졌던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 마음 모아서 가지고 온 사발그릇에 모두 뱉으라고 한 뒤 이것을 땅에 묻게 했다. 그리하여 세계 도처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형이상학적 말의 무덤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실제로 마을에서 문중간 말싸움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었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이곳을 들린다. 그리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압니다. 이 동네에 살던 우리 친구들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지혜로운 삶 본 받아 남에게 상처 주면 그 말이 나에게 상처로 되돌아 옮을 꺠닫게 해 주시고 화평한 마음으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다른 곳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근처를 지나칠 때면 몇 십리 길쯤 돌아가더라도 자랑스런 마음 되어 거쳐 가도록 한다. 그리고 말 무덤의 유래를 들려준다.
이제 말 무덤이 세계인들이 본 받아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대해 본다.
내 고향에 말 무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언총을 만든 지혜가 세계 곳곳에 알려 저 온 세계가 하나되어 화평한 마음으로 이 땅의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기대해 본다.
말 무덤가 마을의 친구와 40년 가까이 한 울타리의 대학에서 생활 했다. 그 긴 세월 얼굴 한번 찡그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시간이 흘렀다 싶으면 어김없이 안부전화가 왔다. 할 이야기가 궁하면 언제 밥 한번 밥 먹자고 기약을 한다. 정말 말 무덤의 지혜를 보면서 자란 덕택일까? 왜 저리도 고운 말만 골라서 쓸까? 친구 더불어 행복한 교정이었음을 감사 한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