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시조 > 섬
아리리 다도해 여행
결혼 50주년 헌사
박 헌 오
파도가 잠 안 자고 자장가 불러주면
고단한 섬들은 손을 빨며 잠이 든다
바다는 어머니의 품 안아달라 배를 탄다.
고깃배 줄지어 웃어대며 돌아오고
아내의 흰머리에 은빛 비늘 반짝일 때
먼 섬에 닻을 내리고 그리움을 업고 간다.
섬돌로 담을 쌓고 달빛 채운 오붓한 집
별들도 옷을 벗고 풍덩 풍덩 빠져드는-
호젓한 섬 밤에 누워 초래청을 차릴까나
섬동백 둘러서서 축가를 불러주고
늦동이 만들까 봐 미역 다발 쌓아놓고
아라리 다도해 여정 달도 흠뻑 웃고 있다.
< 2024. 3. 22. 아내와 여수 금오도에서->
모란의 살점
박 헌 오
남해의 소록도란 아름다운 마을 있지
살점이 뚝뚝 져도 웃으면서 살아간다.
모란이 사랑의 손을 펴 아픈 땅을 쓰다듬지.
파도는 왜 그렇게 밤낮없이 울어가며
슬퍼할 사람들의 울음을 챙기는가
모란이 살점 떨궈도 슬픔 없는 까닭이지.
언젠가 영부인과 나눠 먹던 사과 한 알
그 임이 가시던 날 한없이 울었는데
모란 빛 한복을 입고 봄이 되면 또 오신다.
호연재 영산홍
박 헌 오
호연재 안채까지 호롱호롱 타는 꽃 빛
주인 없는 내실에는 꽃 병풍에 원앙금침
삼백년 넘어온 여심 손편지에 빼곡하다.
이 봄날 깨어질까 열린 문을 못 닫는데
가슴엔 숯불 타고 얼굴엔 꽃불 탄다
볼 붉은 미소가 익어 너도 타고 나도 탄다
4월의 시심으로 초대하는 여성군자
외로운 꽃술 한 잔 노래하다 춤을 춘다
쪽박이 깨질지언정 꽃 빛 넘쳐 눈물 맑다.
뜨락을 돌아보니 임 발자국 덮는 꽃잎
아득한 그리움이 꽃불 질러 타는구나
자욱한 치마 빛 안개 시묵향기(詩墨香氣) 깊고 깊다.
진달래 회상
박 헌 오
선머슴 지게 위에 한 묶음 진달래꽃
한평생 떠오르는 소년의 환한 얼굴
산 넘어 슬픈 봄 지고
나비 날개 아롱진다.
능소화(凌霄花)
박 헌 오
월담한 고운 임아
어사화라 그랬느냐
궁전 같던 고향 집은
굴뚝만 남았는데
고사목
꽃상여 타고
요령(搖鈴) 따라 떠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