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월 13일(월) 예레미야 14:1-6 찬송 149장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피곤하여 땅 위에서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얻으려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들의 머리를 가리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6.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개역 개정)
-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 -
제 14-15장은 예레미야가 유다를 향해 직접 선포한 12편의 설교로 구성된
본론 제 1부 2-25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 가운데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과 관련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통한 유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여섯 번째 설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중 오늘 말씀은 이러한 여섯번째 설교의 개시 부분으로
유다의 범죄에 대한 징계의 일환으로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의 실상을 매우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즉 유다 땅에 임한 가뭄이 식수(3절)는 물론 농업 용수(4절)와
들짐승의 음료(6절)까지도 앗아갈 정도로 극심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처럼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의 실상을 자세히 보도하는 것은
단지 자연 재해의 위력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가뭄을 성경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한 수단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레26:19; 신11:17; 삼하21:1; 왕상17:1)
예레미야서에서도 범죄한 유다를
가뭄을 통해 심판할 것을 이미 예언하고 있는 바(11:22)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이 그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대규모의 가뭄 재앙이 언제 유다 땅에 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여호야김(주전609-598년) 왕 시대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은 범죄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서막일 뿐 그것으로 유다에 대한 심판이 그친 것은 아니다.
즉 이후에 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하여 실로 엄청난 재앙을 겪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대심판 때에도
본격적인 심판의 전조를 보여주실 것이다.
그 전조란 전쟁과 지진과 기근 등의 현상이다.(마24:7)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를 보라.
도처에서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가?
이것이 죄로 관영한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대심판이 임박했다는 경고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세상의 마지막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깨어 경성함으로 대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날은 도적과 같이 홀연히 임할 것이다.(마24:42-44)
6절)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
1-6절은 유다에 임할 극심한 가뭄 재앙의 실상에 대한 말씀이다.
말씀에 의하면 유다에 임한 가뭄은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들짐승의 음료까지도 앗아갈 정도로 극심하였다.
이러한 가뭄 재앙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하나의 자연 재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다에 임한 가뭄은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다.
성경은 가뭄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한 수단으로 묘사한다.(레26:19; 삼하21:1)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예레미야가 범죄한 유다를 하나님께서
가뭄 재앙을 통하여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11:22)
또한 예레미야는 이미 12:4에서 유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뭄 재앙으로 말미암아 농작물은 물론 짐승과 새들까지도
멸절의 위기에 처하였음을 호소한 바 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가뭄 재앙은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재앙이다.
온 유다는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절박한 목마름 가운데 처하였다.
특히 6절을 보면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 유다가 얼마나 심각한 가뭄에 직면해 있는지를 반영한다.
들 나귀는 짐승들 중에서는 비교적 갈증에 잘 견디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들 나귀조차 승냥이 같이 헐떡인다고 하였다.
여기서 승냥이로 번역된 원어는 들개와 같은 육상 짐승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악어와 같은 수중 동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만일 이를 악어로 번역한다면 6절은 들 나귀가 마치
악어가 물이 없어 죽어가는 것처럼 헐떡이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물 속에 사는 동물조차 물이 없어 몸이 마르고 입이 타서 죽어가는 것처럼
유다의 죄는 온 유다로 하여금 심각한 재난의 자리에 떨어지게 하였고
심각한 목마름으로 헐떡이게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처럼 죄로 인해 절박한 목마름 가운데 헐떡이는 것은
비단 과거 가뭄 재앙을 만난 유다 사람들만이 아니다.
영적으로 이 세상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절박한 목마름 가운데서 헐떡이고 있다.
그들의 목마름은 육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다.
곧 영혼의 갈증이다.
영혼의 생명수를 찾지 못하여 느끼는 갈증이다.
인간의 영혼은 범죄와 함께 생명수가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고 말았다.(2:13)
그리하여 인간 영혼에는 영적 가뭄이 임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마다 절박한 영적 갈증에 직면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타는 목을 움켜쥐고 안타깝게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인생 가운데 채워지지 않는 깊은 공허함과 타들어가는 갈증을 체험하고 있다.
그것을 해소하고자 세상의 여타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재물이나 명예, 권력을 취하려고 힘을 기울이기도 하며
육적 쾌락에 탐닉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인간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지는 못한다.
그들이 그러한 것들을 찾아 헤맬수록
그들은 더 큰 공허감, 더 큰 영적 갈증을 느낄 뿐이다.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아 그분이 주시는 은혜의 물, 영생의 물을
마시기 전까지 그들은 끝없는 공허감, 심령과 삶의 갈증을 면할 길이 없다.
이를 감안할 때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생하는 생수를 공급하시는 우리 주님을 알며
그의 흡족한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참으로 복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심령을 적셔줄 참되고 완전하며 유일한 생명수를 맛본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생명수가 있는 곳을 영적 갈증으로 고통 당하는 이들에게 알려주어
그들 영혼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심령의 잔이 넘치도록 축복의 생수를 베푸시는
풏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명철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7: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