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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 장 야릇한 술수(術數)
[1]
"아미타불……."
명인대사의 불호소리가 침묵을 깨뜨리며 나직이 울려퍼졌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푸풋!"
두주불사는 입술을 좌우로 삐죽거렸다. 이어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말을 이었다.
"두려워할 필요가 뭐 있겠소? 사련과 일월궁이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우리 역시 만만치 않소이다."
그때였다.
느닷없이 싸늘하면서도 흉흉한 괴소가 장내를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크흐흐흐! 건방진 놈이로군. 감히 본좌들 앞에서 기고만장을 떨다니!"
"앗?"
"아니?"
좌중은 난데없는 괴소에 대경했다.
기실 이들은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절정고수들이었다.
헌데 침입자는 추호의 기척도 없이 이들의 지척에 접근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이 침입자의 무공은 중인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이 분명했다.
중인들이 미처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이었다. 다시 침입자의 음성이 중인들의 고막을 쇠막대기처럼 파고들었다.
"냄새나는 거렁뱅이! 네놈의 사조인 구지신개가 이 자리에 있다 해도 결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우리 오대악사(五大惡邪)다!"
"오대악사!"
"크으! 전대 거마들이 나타나다니!"
중인들의 놀람은 극에 달했다.
오대악사(五大惡邪).
금적상사(金積商邪) 장관홍(張關洪).
편복사인( 邪人).
비사(飛邪) 궁표(宮杓).
흡혈귀매(吸血鬼魅) 노노심(盧爐心).
현빙마사(玄氷魔邪) 구양패(毆陽覇).
이들은 바로 일백 년 전에 강호에 무지막지한 피를 뿌렸던, 사련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는 사황성(邪皇城)의 오대호법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사련의 태상호법으로 있으며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잔혹한 살인마왕들이었다.
휙! 휘리리릭!
짧은 파공성과 함께 대청으로 다섯의 인영이 현신했다.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모두 황의장포 차림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팔구십여 세로 보였다. 한결같이 깡마른 데다가 퍼런 눈이 움푹 패여들어가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섬뜩한 눈에서는 뼈를 얼릴 듯한 음산한 기운이 서리서리 뻗쳐나왔다.
"오대악사다!"
좌중에서 한 마디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오대악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불회진인은 반사적으로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억지로 꾸민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그들을 맞이했다.
"무량수불…… 다섯 시주께서 어찌 이곳까지 어려운 행차를 하시었소?"
"흐흐흐! 불회진인, 우리가 온 목적을 모른다고 발뺌하지는 않겠지?"
오대악사 가운데 맏형인 금적상사 장관홍이 살기가 싸늘하게 뻗치는 눈길로 불회진인을 쏘아보며 음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뜻밖의 상황이라 불회진인은 할 말을 잊은 채 불호만 외었다.
이번엔 흡혈귀매(吸血鬼魅) 노노심(盧爐心)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긴 말 하지 않겠다. 지금 즉시 현판을 내려라! 본교의 교지에 따라 이곳을 본교의 호북지단(湖北支團)으로 삼겠다."
"……!"
불회진인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는 수양이 깊은 도인답게 곧 정색하며 도호를 읊조렸다.
"무량수불……. 그럴 수는 없소이다."
금적상사는 입가에 서리가 내릴 듯한 싸늘한 미소를 베어물면서 냉막한 일갈을 터뜨렸다.
"크흐흐…… 그렇다면 오늘 무당산이 피로 씻길 것이다. 본교의 명을 따르는 자에겐 영광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그때였다.
[2]
쾅!
두주불사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흥, 사도의 무리라 할 수 없군. 오대악사! 네놈들 눈엔 우리들이 장기판의 쫄로 보이느냐?"
두주불사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안면과 코를 씰룩였다.
오대악사 가운데 둘째인 편복사인( 邪人)이 안색을 대변시키며 격노한 귀갈을 터뜨렸다.
"두주불사, 죽고 싶으냐?"
두주불사는 뉘집 개가 짖느냐는 듯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흐흐흐…… 아마 쉽지 않을 걸?"
그러자 맨 왼쪽에 서 있던 현빙마사(玄氷魔邪) 구양패(毆陽覇)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섰다.
구양패는 얼음가루가 날릴 듯한 싸늘한 표정으로 음풍스런 괴소를 터뜨렸다.
"크흐흐…… 두주불사! 네놈에게 나 현빙마사 구양패의 무서운 손속을 보여주마."
휙!
구양패는 말을 마치자마자 마루를 박차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에 뜬 구양패는 활과 같은 곡선을 그리며 신형을 바꾸더니 두주불사의 전면으로 짓쳐내리며 일 장을 격출했다.
"죽어랏!"
"킁! 누구 맘대로!"
두주불사는 소맷자락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강맹하게 장력을 뻗어냈다.
콰르릉!
대청을 뒤흔드는 굉음을 일으키며 강맹한 두 장력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크윽!"
두주불사는 뒤로 네 걸음이나 격퇴되어 다급한 신음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현빙마사 구양패는 뒤로 반보 정도만 물러난 채 흐트러진 신형을 추스르며 재차 공세를 취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중인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회진인은 내심 치를 떨었다.
'과연 오대악사는 무서운 놈들이구나! 개방의 장문인인 두주불사가 오대악사의 막내에게 당하다니!'
그때였다.
현빙마사 구양패는 득의의 괴소를 터뜨리며 간신히 신형을 추스르고 있는 두주불사에게 다가갔다.
"크크큭! 두주불사, 마지막 일장으로 네놈을 지옥으로 보내주마."
그때였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불회진인이 두주불사의 앞을 다급하게 가로막으며 싸늘한 일갈을 터뜨렸다.
"구양시주! 이곳은 무당파의 중지요. 두주불사 시주는 무당파의 손님이시니 빈도가 시주를 상대해주겠소."
불회진인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을 뽑아들면서 허공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파파팍!
불회진인은 이어 무수한 검광을 난무시키며 현빙마사 구양패의 전면으로 덮쳐갔다. 무당파의 칠성난파검(七星亂派劍)이 마침내 불회진인에 의해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파츠츠츳!
문득 기이한 장력 한 줄기가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불회진인의 신형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음충맞은 괴후가 들려왔다.
"흐흐흐…… 불회진인! 그들의 싸움에 끼지 마라. 너는 내가 맡아주마."
그는 바로 오대악사 중 셋째인 비사 궁표이었다.
불회진인은 울화가 치밀었다. 공중에 뜬 그는 즉시 비사 궁표를 향해 검을 돌렸다.
"비사 궁표! 검의 진수를 보여주마. 지파검(地破劍)!"
불회진인은 분갈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비사 궁표의 면전으로 태산압정(泰山壓頂)의 일식으로 검을 뻗어냈다.
찰나지간 비사궁표의 눈에 기광이 스쳤다.
"흐흐흐…… 무당의 칠성난파검법이군. 좋다, 오너라!"
츄츄츄…… 슈슈슈슛!
비사 궁표는 짓쳐오는 검강을 향해 쌍장을 펼쳐내며 신형을 솟구쳤다. 그들은 곧 본신의 절기를 십분 펼쳐내어 격렬한 격투를 벌였다.
콰르르…… 번쩍!
검강과 벽공장이 난무하는 가운데 불회진인과 비사 궁표의 신형이 어지러이 허공을 누볐다. 마치 용호상박(龍虎相搏)하듯 막상막하의 호각지세(互角之勢)였다.
"……!"
잠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오대악사 가운데 편복사인과 흡혈귀매 노노심, 현빙마사 구양패가 일제히 눈짓을 주고 받았다.
다음 순간 편복사인이 주석(酒席)을 향하여 소리쳤다.
"명인! 곤륜검성! 우리도 한번 어울려 보는 것이 어떠냐?"
"아미타불……, 빈승도 동감이오."
명인대사가 선뜻 앞으로 나섰다. 곤륜검성 역시 검을 뽑아들며 몸을 일으켰다.
"차앗!"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외마디 기합과 함께 편복사인이 명인대사 앞으로 덮쳐내렸다. 동시에 흡혈귀매 노노심과 구양패도 곤륜검성을 향해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
그러자 뒤에 남은 금적상사 장관홍이 음탕한 시선으로 금극철화 도산랑을 바라보며 주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연신 입가에 음흉한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도산랑, 예전부터 네년의 속살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했었다. 도도한 척 뭇 사내들을 발가락 사이의 때만치도 안 여겨온 네년이 아직 청백지신이란 말을 들었다. 오늘 본좌가 네년에게 인생의 황홀감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도산랑은 싸늘한 안색으로 금적상사 장관홍을 쏘아보며 서슬이 시퍼렇게 외쳤다.
"닥쳐라, 금적상사! 온갖 나쁜 일을 도맡아온 너 같은 놈은 죽어도 마땅하다."
"흐흐흐…… 그렇게 앙탈을 부리는 게 꼭 열 여덟 꽃다운 계집 같군. 앙탈은 이따가 침상에서나 부려라."
장관홍은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도산랑에게로 다가갔다.
[3]
"……!"
도산랑은 그의 위세에 눌려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금극철화 도산랑.
그녀도 분명 강호의 고수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오대악사 가운데 맏이인 금적상사 장관홍에 비교하면 한 수 밑이였던 것이다.
"……!"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는 장관홍을 불안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웅후하면서도 낭랑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잠깐 걸음을 멈추시는 게 어떤가? 금적상사!"
뒤이어 한 인영이 그림자처럼 끼어들며 도산랑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이건 또 뭐야?"
장관홍은 난데없이 훼방꾼이 나타나 도산랑의 앞을 가로막자 얼굴을 있는대로 다 구겼다.
"……?"
장관홍은 미간을 있는대로 다 일그러뜨리며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훼방꾼을 바라보았다. 뜻밖에도 그 훼방꾼은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약관(弱冠)의 청년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금적상사 장관홍은 눈을 휩뜨며 분격에 찬 괴후를 빽 내질렀다.
청년은 신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구냐고? 보면 모르냐? 난 이곳에 머무는 손님이다."
"이런 우라질!"
금적상사는 하룻강아지 같은 청년이 앞을 가로막은 채 유유자적 농담이나 하고 있으니 솟구치는 울화를 금할 수 없었다.
비록 마도에 몸을 담고 있기는 해도 금적상사는 무림의 고수였다.
그는 싸늘한 살광을 뿌리며 타이르듯 노갈을 터뜨렸다.
"크크ㅋ! 에미의 젖에나 매달려 있을 새파란 놈이 감히 노부의 일에 참견을 하다니. 사지를 온전히 간수하려면 즉각 물러나라!"
청년은 추호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뉘집 개가 짖느냐는 듯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비릿한 조소까지 흘리는 것이 아닌가?
"후후! 본인은 원래가 불량한 일을 보면 온몸이 근질근질거리는 성미라서 참견 좀 해야겠다."
"……!"
금적상사 장관홍의 안색이 삶은 돼지간처럼 푸르딩딩하게 변색되었다.
"건방진 애송이 놈! 관을 보기 전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놈이구나!"
장관홍은 가소롭다는 듯 냉랭한 얼굴에 한 줄기 비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한 손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애송아, 받아랏!"
그는 일갈을 터뜨리며 손을 쭉 들이밀었다.
꽈우우우우!
금적상사 장관홍의 장심으로부터 막강한 암경이 흉험한 기세로 내뻗쳐 나왔다.
스슷!
황자강은 담담하게 웃음을 머금은 채 슬쩍 소맷자락을 흔들었다.
펑!
금적상사 장관홍의 장심으로부터 폭사되어 오던 암경과 황자강의 소맷바람이 허공에 부딪치는 순간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바로 그때였다.
"컥!"
장관홍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뒤이어 그는 다섯 걸음이나 뒤로 주르르 밀려나다가 간신히 멈추고 흔들거리는 신형을 곧추세웠다.
"이럴 수가!"
장관홍의 얼굴에는 온통 경악과 공포, 당혹의 감정들이 뒤엉켜 떠올랐다. 그는 도대체 지금 일어난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희대의 흉맹을 떨치던 자신이 일개 약관서생의 가벼운 소맷바람에 격퇴당했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금적상사 장관홍은 가까스로 경악의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황자강을 쏘아보았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무공을 보니 결코 무명소졸(無名小卒)은 아닌 것 같은데……?"
"후후후…… 본인의 이름을 물으셨소? 가르쳐 드리지. 황자강이라고 하오이다."
황자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런 황자강의 태도는 무척이나 느긋해 보였다. 그 사실이 금적상사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말았다.
"크으! 찢어죽일 놈!"
금적상사 장관홍은 이를 부드득 부러져라 갈며 양손을 가슴 앞으로 끌어올렸다.
"좋다! 조금 전에는 네놈을 너무 얕본 탓에 당했다. 허나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파츠츠츳!
장관홍의 양손이 돌연 황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도산랑이 다급히 소리쳤다.
"어사대인! 조심하세요. 지금 저자가 시출하려는 것은 금양마공(金陽魔功)이예요!"
그 순간 이미 금적상사 장관홍의 양손은 노랗게 물들어져 완전히 황금수(黃金手)로 변해 있었다.
"애송아, 이젠 뒈져랏!"
장관홍은 귀갈같은 괴후를 내지르며 황금수를 힘차게 내뻗었다.
파츠츠츳!
찰나지간 공기를 가르는 예리한 파공음과 함께 태산을 허물어버릴 듯한 장력이 폭풍처럼 황자강을 향해 덮쳐들었다.
차앗!
황자강은 현천강기를 끌어올려 전신을 철벽보다 더 단단한 호신강기로 둘러쌌다.
바로 그 순간 장관홍의 장력이 흉폭한 기세로 황자강의 전신을 때려왔다.
퍼퍼펑!
거대한 일진폭음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뒤이어 무겁게 가라앉았던 공기가 느닷없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흙먼지를 허공으로 밀어올렸다.
"크악!"
그런 와중에 외마디 처절한 비명이 중인들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
찰나지간 중인들은 보았다.
촤아악!
허공으로 떠오른 누군가의 몸뚱아리가 뜨거운 피보라를 사방으로 흩뿌리는 것을. 뒤이어 잠시 허공에 머물렀던 그 몸뚱아리가 둔중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것은 바로 금적상사 장관홍의 몸뚱아리였다.
"앗! 저…… 저럴 수가!"
"헉!"
주위의 인물들은 모두 손을 내린 채 목전에서 전개된 상황에 대경실색했다.
[4]
그들은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금적상사 장관홍 같은 절세마두가 저 청년에게 당하다니……!"
"믿, 믿을 수 없다!"
두주불사와 불회진인까지 경악할 정도였으니 오죽하겠는가?
두주불사는 황자강과 내공을 겨루어 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황자강을 하류무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련이 나타났다고 했을 때 황자강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려 하는 것을 보고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뜻밖에도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우욱!"
금적상사 장관홍이 창자가 뒤틀리는 듯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으며 울컥 피 한 모금을 토해냈다.
"……."
장관홍을 내려보고 있는 황자강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했다.
하지만 그의 내심은 그렇지 못했다. 정말이지 구경꾼들만 없었더러면 황자강은 팔짝 뛰면서 함성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아까 중인들의 표정으로 보아 이들 오대악사의 무공이 상당한 듯했는데…… 이제보니 별 것 아니었잖아? 나의 칠성(七成) 내공조차 받아내지 못하는 늙은이들이 마두는 무슨 놈의 마두? 더욱이 난 힘 하나 안들이고 저 늙은이를 격퇴시켰다. 현천강기…… 이거 쓸만한데? 히힛!'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칠성의 내공만을 써서 절세마두 금적상사 장관홍을 저지경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누군가가 들었다면 자신의 귀를 의심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당비전 현천강기.
이는 외접내탄(外接內彈)의 신묘한 이치가 깃들여진 강기였다.
그 결과로 황자강 본연의 진기에다가 금적상사의 경력까지 합세되어 내뻗어진 반탄지력에 금적상사는 치유할 수 없는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결국 금적상사는 황자강을 죽이기 위해 자신이 뻗어낸 공력에다가 그 이자까지 쳐서 고스란히 되돌려받은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도산랑의 다급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어사대인! 위험해요!"
"……?'
황자강은 슬쩍 양 옆을 훑어보았다.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흡혈귀매 노노심과 편복사인이 자신의 양쪽 옆구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짓쳐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놈! 죽어랏! 흡혈사공(吸血邪功)!"
"유성난비(流星亂飛)!"
파파팟!
그들은 금적상사 장관홍이 순식간에 당하자 눈이 뒤집혀 혼신의 전력으로 합공을 전개한 것이었다.
황자강은 추호도 당황의 기색이 없이 담담하게 웃으며 도산랑에게 입을 열었다.
"누님, 염려마십시오.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해결합니다."
"……!"
다급한 와중에서도 도산랑은 황자강이 자신을 향해 누님이라 칭하자 얼굴이 붉어졌다.
"나더러 누님이라고!"
그녀의 나이는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삼십 팔 세였다.
비록 아직까지 결혼은 물론 사내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처녀(處女)의 몸이긴 하지만 여자로서는 시들다못해 완전히 꺾어져버린 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 자신을 향해 황자강이 누님이라 불렀던 것이다.
찰나지간 도산랑은 얼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마구 울렁거렸다.
옥황상제도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으로 기묘한 것이 여심(女心)이라면 여심이었다.
일순간 황자강의 눈에 기이한 이채가 빛났다.
'흐흐흐…… 저 나이에 아직 처녀다 이거지? 전부터 물이 오를대로 오른 나이에 아직 한 번도 사내 맛을 보지 못한 계집을 안아보고 싶었다. 유부인(柳婦人)을 꼬시려다가 실패한 이후 그 생각은 굴뚝 같았다. 좋아, 널 찍었다!'
결국 황자강이 기를 펴며 나선 것은 다 속셈이 있었던 것이었다.
이야기가 잠시 삼천포로 빠지긴 했지만 한 마디 밝히고 넘어갈 것이 있다.
사실 황자강은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여온 유부인(柳婦人)이라는 청상과부(靑孀寡婦)가 있었다.
유부인은 결혼 첫날밤을 남편과 함께 보내보지도 못하고 청상과부가 되고 만 여자였다. 새신랑이 결혼 축하주를 너무 마셔 그만 주사(酒死)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 장례식을 치뤄야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액운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을 잡아먹은 요부(妖婦)라 하여 시댁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친정집에서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혼자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빼어난 미모에다가 수놓는 솜씨까지 뛰어나 먹고 사는 데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그런 그녀가 황자강의 장원 옆에 살고 있었으니 황자강이 어찌 그녀를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하지만 온갖 수단을 다 부려도 그녀는 넘어가지 않았다. 생각다 못한 황자강은 강제적으로 그녀를 범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은장도를 빼어들어 결사항쟁하였다.
결국 황자강은 헛물만 켠 채 물러나야 했다.
그날 이후 그는 나이 찬 청상과부 소식만 들어도 절로 아랫도리가 후끈해졌던 것이다.
처녀도, 유부녀도, 과부도, 요조숙녀도, 창기도 가리지 않고 건드려본 그지만 아직 꽉 찬 나이에 홀로 지내온 청상과부만은 건드려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것이 바로 이 자리에 그가 그토록 희망하던 청상과부가 있었다. 아니 과부가 아닌 순수한 처녀로 물이 꽉 찬 금극철화가 있었다.
그런 진미(?)를 놓칠 황자강이 아니었다.
황자강은 이 참에 도산랑의 뇌리에 자신을 확실히 박아둘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 맞춰 나타나준 오대악사를 박살내야만 했다.
금극철화는 여협이었다.
강호 여걸(女傑) 치고 강자(强者)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을 것이 분명한 일 아닌가? 더군다나 그 강자가 더없는 정인군자에다가 의협인이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황자강은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던 것이다.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