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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은 운남성의 성도로써 역사와 문화의 도시이며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해발 1,894m의 운귀고원(雲貴高原)에 위치해 있어, 사계절 온난한 기후조건으로 늘 봄 날씨 같다 하여 춘성(春城) 이라고도 불리며, 사시사철 꽃이 끊이지 않고 피어 꽃의 도시라고도 일컫는다. 곤명은 면적이 21,111㎢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날씨가 온화하다. 연평균 일조시간이 2400여시간으로 일년 내내 꽃이 피어있고 초목이 사계절 푸르다. 곤명의 날씨는 사계절이 봄과 같은 특색으로 봄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다. 동백꽃(茶花),백목련(玉蘭),진달래(杜鵑),보춘(報春),백합(百合),난초(蘭花),용담(龍膽), 녹계고(綠絨蒿) 등은 운남 8대명화이다.
현재 곤명의 화초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일본 등으로 수출되고 동남아 지역의 주요한 화초 수출 생산지 중의 하나이다. 곤명은 관광, 역사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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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역 사
곤명은 약 2,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279년 초(楚)나라의 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배한 뒤 한(한)나라를 거쳐 원대(원대)에 곤명현이 설치 되었다. 이 곤명(昆明)이라는 이름은 이 일대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이다.
곤명은 한때 프랑스의 조차지로서 가톨릭 대성당,수녀원,프랑스인들이 출입하는 클럽등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시작되는 협괘열차는 1895년~1904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지끔까지도 운행이 되고 있다. 프랑스가 원한 것은 이 지방의 주석,텅스텐,아편 등이었다. 이 지방은 또 목재, 고무 쌀 등이 풍부하다. 곤명은 태평양 전쟁에는 토호들의 수중에 있었으며 일본의 동남아 침략의 교두보로도 이용 되었다.
o "곤명"의 유래
곤명은 고대에 이 지역에 있던 부족의 명칭으로 이족(彝族)의 고대 언어의 음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1274년 원대에 곤명현이 생기면서 운남성의 성도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1919년 중국 지역을 공식적으로 분할 정리하면서 운남시 정부가 생기고 1922년 정식으로 곤명시라 칭해졌다.
o 기 후
곤명(昆明)은 해발 1,895m의 고도와 아열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다.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하지만 지난91년에는 눈이 조금오기도 하였다. 7월 중 최고 온도는 29도이며 1월 최저 온도는 영하 1도이다. 대개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비가 오며 이 기간의 강수량은 약 1,500m 정도이다. 동백꽃이 만발한 2월이 곤명을 여행하기에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 곤명의 기온
도시명 |
기온(℃)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昆 明 (곤명) |
최고평균 |
23.4 |
25.9 |
29.6 |
32.3 |
33.4 |
32.2 |
31.7 |
31.0 |
29.9 |
27.5 |
25.0 |
22.7 |
최저평균 |
7.9 |
10.8 |
14.6 |
18.4 |
21.3 |
22.1 |
22.3 |
21.4 |
20.1 |
16.9 |
11.7 |
7.9 | |
평 균 |
8.4 |
10.1 |
13.3 |
16.6 |
19.1 |
19.7 |
19.9 |
19.5 |
17.8 |
15.1 |
11.6 |
8.6 | |
강우량mm |
10.8 |
13.8 |
16.7 |
20.3 |
89.7 |
174.6 |
205.4 |
203.4 |
125.9 |
79.4 |
39.5 |
12.5 |
운남 따이족의 전통축제 살수제 매년 4월 보름에 운남성의 서쌍판납 따이족자치주의 경흥시에서 열리는 따이족의 전통축제로 재미있는 전설을 갖고 있다. 옛날 이곳에 한 폭군이 있었는데, 동네 7명의 처녀를 강제로 아내를 삼았다. 하루는 이 7명의 아내가 담합해 그 폭군을 죽였는데, 이 폭군의 머리가 굴러가는 곳마다 불이 났다. 이 불은 여자들이 끌어 안아야 끌수가 있어서 7명이 돌아가며 1년씩 그 머리를 안고 있었다. 이를 본 동네사람들이 그녀들에게 물을 퍼부어 핏자국을 씻어주고 마침내 그 머리가 타고 재로 남았다고 한다. 축제 중에는 용주경기, 자작 로케트 쏘아올리기, 상각고춤, 공작새춤, 공원놀이, 쇼핑, 살수축복 등의 행사가 벌어지고 또 이날 미혼 남녀들이 '염낭 선물하기'를 통해 사랑을 약속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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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
'고원의 진주'라 불리는 곤명호(昆明湖, 쿤밍후) 곤명의 서남쪽, 남북으로 40km, 동서로는 8km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호수이다. 곤명호(昆明湖)라는 이름보다는 운남의 옛이름을 따온 전지(澱池)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면적 340㎢의 중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담수호다. 또한 해발 18,885m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원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또한 서산산림공원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주변 경치도 좋아 볼만한 명소들이 10여군데 있다.
서산(西山) 서산(西山)은 곤명시 서쪽으로 15km떨어진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연이어진 산봉우리가 무려 40여km 뻗어있고 해발이 1900m ~ 2350m 된다.
서산은 삼림이 무성하고 화초가 우거진 조용하고 수려한 경치로 옛적부터 운남의 제일 가경(佳境)이라 불렸다. 멀리서 바라보면 서산은 아릿다운 미녀가 늪 양안에 엎드려 있는 듯 하다. 그녀의 머리, 가슴, 배, 다리는 생생한 듯 눈에 안겨오고 비단결같은 머리칼은 물보라속에 날리는 듯 어여쁘기 그지없어 "잠자는 미인"이라고도 불린다. 공원 내에는 1000년 전 송(宋)나라 때에 세워진 화팅쓰(華亭寺)와 타이화쓰(太華寺), 링쉬꺼(凌虛閣), 롱먼(龍門)등 둘러볼 곳이 많다.
o 용문(龍門) 서산(西山)에서 가장 장관이라 할수 있는 용문은 절벽에 영웅이 마치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공중으로 비상하는듯한 기세를 느낄수 있는 달천각(達天閣 하늘에 닿는 누각)인 용문 풍경지구가 있다. 롱먼은 청대인 1840년부터 1853년까지 1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70여명의 석공들이 밧줄에 매달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며 돌을 파내어 갔다. 그 피와 땀으로 석실, 신상, 돌다리 등이 만들어졌다. 용문에 서서 정상을 쳐다보면, 오백리정도 떨어진 전지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삼청각을 지나 산을 오르다보면 별유동천(別有洞天)이라 적혀진 석문(石門)을 볼수 있는데, 이것이 나한산 절벽상에 위치한 용문풍경구이다. 돌로 만들어진 터널을 지나다보면 첫번째 석실(石室)이 나오는데, 절벽위로 새겨진 그림이나 글따위등의 조각이 실로 아름답다.
그 앞으로 십여m 가다보면 보타(普陀)관광 지구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절벽사이로 터널이 있으며, 마치 굽이져 돌아가듯 만들어져 있고, 높이는 비교적 높은편이며 절벽위로 창문 같은 것이 있고, 아래로는 깊은 연못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매우 아름답고 놀라와 관광객들의 주목을 끌만하다. 다시 앞으로 30여m 정도 가다보면 두번째 석실(石室)인 자운동(慈雲洞)이 나오는데, 그 뒤로 방과 같은 홀이 있고, 이곳 벽위로 송자관음(送子觀音)이 조각되어 있으며, 앞부분의 홀에는 마치 절벽을 그 위로 걸쳐놓은듯 하며, 앞으로 굽이진 부분에 전지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앞으로 30여미터정도 가다보면, 용문이 그 앞에 높이 세워져있으며, 골목을 지나면 달천각(達天閣)이 나온다. 이 곳에는 문방(門坊), 평대(平臺), 석도(石道), 석실(石室), 신상(神像), 향로(香爐), 촉안(燭案), 공품(供品)등이 있고 모두 암석위로 조각이 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하어촌(下漁村)의 석수(조각가)인 오래청(吳來淸)이 청(淸) 고종 40 ~ 60년때, 공력(共歷) 14년, 삼청각에서 자운동을 지나는 길을 완성했다. 그후 도사 양여란(楊汝蘭)과 양제태(楊際泰)가 계속 수리하고, 그뒤로 72년이 지난 지금은 그 규모가 거대하고 조각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중의 하나로, 지금도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운남민속촌(雲南民俗村) 쿤밍시에서 남서쪽으로 8km 거리에 있다. 윈난의 26개 소수민족 중 약12개 민족의 촌락을 실제 형태로 모아놓았다. 한 자리에서 각 민족의 주거형태와 풍속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곳이 따이족(泰族) 촌이다. 일반적으로 거기서 시작하여 '백탑(白塔)'을 지나는 코스를 택한다. 민족촌을 시계방향으로 돌면 좋으며, 시간에 맞추어서 장소에 따라 소수민족의 민속 공연이 펼쳐지므로 알맞게 걸음 속도를 조절한다. 태족촌은 풍치가 제일 짙고 가장 아름다운 촌 가운데의 하나이다. 열대와 아열대 식물들로 빼곡하게 가꿔진 가운데 정교하고 우아한 태족의 대나무집들로 점점이 단장되어 있다. 백족(白族)촌은 가장 호화롭다. 백족예술관은 중국에서 가장 크고 진품이 가장 많은 나비전시관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대리석 진품관내에는 기괴한 돌들이 매우 많아 눈길을 끈다.
도심에서 갈매기들을 볼수 있는 취호공원(翠湖公園) 쿤밍시내의 서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14세기 중엽 원나라 때부터 개방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8개의 물비취(水翠;호수의 갯수), 4계절의 대나무비취(竹翠), 봄여름의 버드나무비취(柳翠)라 하여 '취후(翠湖)'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공원의 산책로는 십자형으로 되어 호수를 크게 4등분으로 나눈다. 남북으로 난 길은 '위엔티(院堤)'라고 하는데, 윈난 총독인 위엔웬팡(院元傍)이 수축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이 호수는 겨울에 장관을 이룬다. '붉은입 갈매기'라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들기 때문이다. 한덩어리에 1위안씩 파는 빵을 쪼개어 던져주면, 물에서, 공중에서 받아먹는다.
원통사(圓通寺) 위엔통쓰는 쿤밍시의 북쪽 원통가(圓通街)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원통산의 남쪽 자락에 위치한다.
쿤밍에서 가장 큰 사찰로써 당나라때 세워졌으며, 처음에는 부타뤄쓰(補陀羅寺)라고 했으나 원(元)나라 때인 1301 - 1319년 중건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청(淸)나라 초기에 팔각정을 세웠으며, 각종 건물들이 보수되었다. 지금은 성(省)불교협회가 자리하고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 대칭으로 건물이 지어져 있는데, 천왕전(天王殿), 원통보전(圓通寶殿), 팔각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 운남성박물관(云南省博物館) 곤명시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운남성 박물관은 1958년 지상 7층건물로 세워졌다. 총 40미터 높이의 3층 보탑 스타일로 지어졌으며, 1층부터 3층까지가 전시홀로서 4200평방미터의 공간에 운남의 다채로운 민족문화와 운남 청동문화전,남조대리 불교문화전 등을 열면서 여행객들에게 아름다운 곤명을 알리고 있다. 1층 전시실에는 초웅만가패(楚雄万家坝) 1호 묘의 발굴현장을 복원해 놓았으며 방대한 양의 청동기 복제품들을 제작해 전시해 놓았다. 2층 왼쪽의 전시실에는 남조국(南诏国)과 대리국(大理国)시기의 출토된 불교 예술품을 위주로 원명청 3대까지의 불교문물을 전시해 놓았고, 3층 전시실에는 <운남고생물공룡화석전>에서 1988년 운남성 원모현에서 발굴된 세계 유일의 라마원인 두골화석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전시관에는 13만여점의 각종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민족 지방특색이 가득 담겨 있는 고대 청동기만 만점 이상이다. 그 외에도 지방 특색을 가진 고대 서화(书画)등이 있으며 전시품의 90% 이상이 운남성 박물관 소장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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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7 m와 너비 7.8m의 사원은 250t에 이르는 동(銅)으로 만들어진 까닭에 찐디엔(金殿)으로 불리게 되었다.
쿤밍 세계원예박람원 1999년 '인간과 자연-21세기를 향한'이라는 주제로 '세계 꽃 박람회'가 열렸던 장소이다. 쿤밍시내에서 북동쪽으로 8키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 금전풍경명승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산과 물, 수풀의 적절한 배합으로 훌륭한 자연환경과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원예박람원은 실내 전람관, 실외 전람관, 공공시설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실내 전람관은 중국관, 사람과 자연관, 대온실, 과학기술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국의 유구한 원예전통과 풍부한 원예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실외 전람관에는 수십개에 이르는 세계각국과 국제조직 및 중국각지에서 건설한 주제 전람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기구, 형형색색의 꽃들, 열대에서 냉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와 지형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이 뿌리내려 있다. 모두 보려면 하루를 꼬박 걸어다녀야 한다.
흑룡담(黑龍潭) 공원 흑룡담풍경구는 곤명의 북부 용천산으로 곤명시와 약 17km 떨어져있으며, 북부의 오노산(五老山) 기슭에 위치해있다. 이곳 사람들이 칭하는 사미(四美)가 있는데 각각 한사(漢祠), 당매(唐梅), 송백(宋柏), 명묘(明墓)가 그것으로, 한쪽 만의 벽위로 뿜어져 나오는 물은 그윽하고 맑으며 풍경의 우아함을 더해준다. 매우 오래전에 10마리의 교룡이 인간세계에서 항상 악을 행했는데, 여동빈(呂洞賓 : 팔선중의 한명)이라는 자가 아홉마리의 교룡을 물리치고 진압하였는데, 나머지 남은 한마리의 흑룡이 이곳에 남았고, 따라서 흑룡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흑룡담 풍경구 내에는 두개의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데, 이중 하나는 담변의 흑룡궁으로 하관(下觀)이라 불리우며, 명홍무(明洪武) 27년(1394년, 3개의 입구와 4개의 궁이 있으며, 녹색 수림이 무성하다) 건공되었다. 둘째는 고목이 무성한 곳에 위치한 용천관(龍泉觀)인데 상관(上觀)이라 불리워진다. 명대에 건공되어 570년이상 되었다. 웅발(雄拔)의 아치형 패방 자극현도(紫極玄都)를 지나면, 뇌신전(雷神殿), 북극전(北極殿), 삼청전(三淸殿), 옥황전(玉皇殿), 장춘진인사(長春眞人祠)등 13개의 전각이 있다. 청(淸)조 고증에 근거하여, 이곳은 일찍이 한(漢)대 흑수동(黑水洞)이 건공되었고, 연못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당, 원대 건공되기 시작하였으나 후에 전쟁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다시 명대 삼중용천관도원(三重龍泉觀道院)이 건설되었다. 삼청전의 앞으로 5척정도 높이의 매우 큰 동향로가 있는데, 청조 25년에 주조되었으며, 화로에는 사람이 누워있는 무늬가 세겨져 있으며, 그 무늬 아래로 전서 28체가 새겨져있는데, 그 조각이 실로 아름답다. 또한 유명한 삼이목이 화로를 향해 서있고, 당대 심어진 매화나무는 매년마다 꽃이 만발하다. 또한 이곳에 세워진 소나무는 약 25척에 달하며, 다섯사람이 늘어서야 둘러설수 있는 너비를 지니고 있고, 연분홍꽃이 만발한 도화나무는 높이 처마에 닿을듯하게 서있는데 역시 매우 장관을 이룬다. 이 삼대 나무와 한사(漢祠)를 합하여 용천사절(龍泉四絶:4대절경)이라 부른다. 흑룡담내로 명대(明代) 묘가 하나 있는데, 이것은 명조 문사인 벽이망(霹爾望)이란 사람의 것으로, 그는 명말/청초때 군대에 들어간후 청조의 쌀을 먹는 것은 치욕이다라고 하여 전 식솔들과 함께 이곳 흑룡담에 몸을 던졌으며, 후에 사람들이 그의 충성심을 기념하고자 흑룡담변에 합장묘를 만들어주었다. 흑천관비정(黑泉觀碑亭)내로는 역대 진귀한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최고는 단연 철자비이다. 이 비석은 명(明) 영낙년(永樂年) 운남의 장춘진(長春眞) 사람인 유연의 책에서 따온 만물자생(萬物玆生)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그 기세가 마치 용이 하늘로 나는듯하며, 끊지않고 글자를 한번에 모두 써넣었다. 빛이 비석위로 쏟아지면 몇분후 오목한 부분에 빛이 굽이져 닿아 마치 북을 퉁퉁 치는듯한 느낌이 드는데 따라서 철자비(凸字碑)라 불리워진다. 흑룡담공원의 관광을 위해서는 시내에서 9번버스를 타면 이곳 앞까지 다다를수 있다.
강희29년에 이르러 통월정, 등벽당, 그리고 가장 장관인 '따관로우(大觀樓)'가 만들어졌다. 1857년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66년에 윈난성주 왕지웬에 의하여 재건되었다.공원을 둘러보는데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출입구의 반대편에 있는 호수를 배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헤이린(黑林)'으로 가다가 '옥안산(玉安山)'의 허리를 끼고 돌아 3km 정도 가면 '치옹쥬쓰'에 다다른다. 북송연간(960~1127년), 운남성이 아직 대리(大理)라는 독립국이었을 무렵, 고광(高光). 고지(高智)라는 두형제가 사냥을 하던중 한 마리의 코불소를 따라갔다가 옥안산(玉安山)에서 그행방을 놓치고 만다. 문득 보니 구름속에 위엄 있는 중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중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손에 있던 축죽(筑竹) 지팡이 뿐이었다. 형제는 영감을 받아 이곳에 절을 세우고 축죽사(筑竹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 사찰은 원나라 때인 1280년에 처음 설립되었는데 불교 선종이 운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가 1885-1891년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청나라 광서(光緖) 16년(1890년)에 사촌성 출신 조각가인 여광수(黎廣修)가 5명의 제자와 함께 제작한 오백나한상이다. 형태가 각양각색인데, 희노애락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각 조각들은 인체묘사 뿐 아니라, 의복, 문양등도 독특하다. 중국의 적지않은 사찰에 오백나한이 있지만 이곳의 조각은 그 가운데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안령온천(安寧溫泉) 여행시 두배이상의 관람과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자 한다면 가장 훌륭한 선택은 당연히 곤명의 서쪽으로 4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녕온천이라 할수 있다. 이 온천은 1400년이전에 이미 동한(東漢)에서 발생했다. 안녕온천은 산천이 수려하고, 환경이 그윽하고 조용하며, 광천수가 흘러나오고, 그 깊이를 뼛속 깊이 느낄수 있다. 광천수의 색은 짙푸르기 때문에 마치 옥의 결정체를 보는듯 하다하여 벽옥천(碧玉泉)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 안녕온천은 안녕현 접경지점의 안녕산(安寧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탕랑(사마귀)호수와 조계(曹溪)가 자살했던 격강(隔江)을 바라볼수 있다.
명대 양승암(楊升庵)이 말하길 칠미(七美)라 하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맑은 물은 거울과 같고, 돌과 연못은 하늘을 이루며, 언제나 이끼가 끼지않고, 더러운것이 근접하지 못하며, 냉온의 정도가 적합하며, 차(茶)를 타기 적합하고, 요리를 하기에도 적합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칠미이다. 온천의 온도는 대략 42℃ ~ 45℃정도로 유황성분도 없고, 하루 유출량이 약 6000t정도이다. 함유성분으로는 탄산, 마그네슘, 칼륨, 라돈등이 주를 이루며, 씻고 마시기에 모두 적합하다. 또한 피부병이나 류마티스 관절염과 여러가지 현상의 장과 위병에 효과적이며, 명대초 문인이였던 양진이 말하길 천하제일탕(天下第一湯)이라 하였다. 현재는 유명한 관광 유람요양지의 하나이며, 유람객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거나, 기타 관광을 할수 있다. 안정온천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곤명시 서역에서 전용버스를 타고가면 된다. |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꼽히는 석림(石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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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석림(石林)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명승지로 대자연의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 남쪽으로 400㎢나 되는 구역에 흑색 삼림과도 같은 수백개의 커다란 돌들이 놓여 있다. 홀로 놓여있는 것도 있고 가로세로 엇갈려 하나로 이어진 것도 있다. 그중 유명한 이자정석림(석림-돌숲)은 면적이 약 12㎢이고 기괴한 돌들이 천태만상을 이루어 천하 제일 기관(기이한 풍경)이라고 일컬어진다. 이곳은 석림호수, 대석림, 소석림, 리자원 등 몇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관광 여정은 5000여m, 석림풍경구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며 돌기둥, 석벽, 돌봉우리가 온갖 자태로 기이함과 아름다움을 뽐낸다. 어떤 돌기둥은 40-50m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이곳의 돌들은 절묘한 그림과 같이 그 특이함으로 매일 방방곡곡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모은다. 공작새가 날개를 다듬는 듯, 서우가 달을 바라보는 듯, 唐僧石, 悟空石, 八戒石, 沙僧石, 觀音石, 將軍石, 士兵石, 시를 읊는 시인 등 무수한 석상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동물석상 외에 비 내린 뒤의 죽순, 버섯, 꽃 등 식물과 흡사한 돌들도 수없이 많다. 종석(鐘石)이라 불리는 돌은 두드릴 때마다 수십가지의 다른 소리를 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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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연 석림은 거대한 자연 石景예술 보물고와 같이 유람객들이 마음껏 관상하고 상상하게 한다. 꼬불꼬불한 작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미궁 선경에 들어선 듯한 황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