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찾아 다니다가 환성님 께서 모 리조트게시판에 쓴 글이 있더군요.옮겨옵니다.
해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약천사가 중문에 있다. 우리영토 남해를 지키는 극락도량이다.대적광전의 크기가 동양최대이다(사진). 20여년동안 노력해서 부지를 조금씩 사 모으시고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들이 큰 시주를 하여 지어서 1998년에 완성 하셨단다. 정말 한 출가 스님의 원력으로 건립하기엔 존경심이 절로 난다.
해인스님은 산방산 옆 마을에서 출생하여 초 중등 다닐때 체구도 작고 공부도 꼴치하시듯 볼품없는 소년이었단다. 그 후 해인사 일타큰스님께 어린나이에 출가하여 경전도 잘 못외우며 갖은 고생으로 수행하시다가 장성하여 어느날 불사를 할 원이 세워져 성철큰스님께 그 방법의 길을 물었더니 "너는 전생 현생에 걸쳐서 부모복 재물복 재주복 삼복이 조금도 없으니 하루 5천배를 200백일동안 백만배를 해야 될성 싶으다"는 명이었다.
스님의 결심은 대단하여 봄부터 시작하였으나 더운날 까칠한 삼배옷이 스치는 손목 목덜미 등짝 등에 살이 까지고 핏와 진물이 범벅이 되어 도저히 사람몸 가죽으로는 할수없다고 단안을 내리고 백일(50만배) 끝나는 날 성철큰스님께 삼배올리고 중단하기를 허락해달라 했다.그랬더니 큰스님께서 옆에 놓인 주장자를 슬그머니 잡고서 끄트머리로 등어리 물집에 콕콕 후벼파시며 "삭발하여 출가한 수좌가 뒤돌아 갈곳이 어디메며,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이 몸땡이 아껴서 가져갈 곳은 어디냐?" 이 한 말씀에 즉시 내려가 다시 계속 하시었다.
천천히 할수밖에 없으니 결국 잠자는 시간이 2~3시간 남짓하여 죽을 힘을 다해 한달 지나니 그 헤어진 살짐이 점점 아물어 가고 팔다리는 날아다니는 새들 처럼 가벼워 져서 200일동안 백만배를 마치쳤단다.그 후 이상하게도 머리가 트이고 경전은 보는대로 해석되고 말문이 트여서 누가 물으면 말이 술술나와서 법문에 달통하더라. 그 후 전국 큰절마다 법문해 달라하여 이래저래 모은 돈이 싹이 되더라. 지금 단양에 광덕사라는 절을 약천사 보다 더 크게 지을 준비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우리부부는 3백배씩 하고 정해준 방에서 따뜻하게 잘 주무시었다.4시 새벽 예불, 아침공양은 6시반하고, 설겆이 하는데 공양주 보살님이 제주 감귤과 미깡을 한~ 봉지씩 담아 주셨다. 양손에 들고 오느라 힘들었지만 보살님이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맛은 서울에서 먹어 보지 못한 맛이었다. 담에 또 가야지.
첫댓글 비슴듬히 앉아서 킥킥거리며 웃고 읽다가 가슴이 뭉클하여 저도 모르게 합장하게 되었어요. ...()...
역시 절은 참좋은 것이네요...
부산 소림사에서 해인 스님 법문을 듣고서 정말 발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거든요.. 큰스님의 마음은 정말 우리 중생들에게 많은 도움울 준다는것을 공부하면서항상 느낀답니다..
와 어질이님 대단 합니다.^*^ 그 리조트가 제주도 중문 가까이에 있는데 친구가 지어서 영업을 하고 있더군요. 올해는 바다가에 또 짓고 있을 겁니다. 그 친구에게 놀러갔다가 인터넷에서 가까운 사찰을 검색하여 약천사를 찾아 내어 1박 했어요. 그 후일담을 친구 리조트 험피에 올렸는데 어떻게 알고 그걸 발견 했네요.()
아침 공양간에서 해인스님 상좌스님을 뵈었는데 이런 행장을 들려 주셨어요. 귀한 인연이지요. 당시 일타스님께서도 성철스님의 법력을 흠모 하셨던가봐요. 아끼는 상좌의 앞날을 위해 엄한 정진을 시키고 싶은데 스승 당신은 어린상좌의 고생이 아려서 못하시고 성철스님의 엄명을 받게 하신 겁니다.
보내신 분이나 그걸 받아서 죽도록 정진을 시킨 분이나 또 그걸 받아 기어이 행한 분이나 위대 하십니다. 위대하신 성철스님, 일타스님, 해인스님께 귀의 합니다. ()()()
환성님....감사합니다()()()
살면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 섬기고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