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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국립박물관에서 나의 할머니를 만나다.
감자처럼 친숙한 강원도의 얼굴을 만나고 싶다면 국립춘천박물관을 찾으라. 서울서 전철로 남춘천역까지 가서 버스 한번이면 강원도의 오아시스같은 유물들을 접할 것이다. 2002년에 개관했으니 이제 열살박이인데 주변 숲도 무성해 산책코스로도 좋다.
내가 이곳을 강력 추천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석조 나한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부로 들어가면 너른 휴식공간이 나온다. 천장에는 복주머니가 매달려 있고 양편에 전시관이 1,2층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구조 때문일까. 2003년 올해의 우수건출물로 선정되어 한국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했다.
전시실은 오산리유적지 등 선사문화관, 삼국시대의 철기문화관, 강원의 불교문화가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강원을 빛낸 인물인 신사임당. 그녀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꽃과 나비 그림과 미수 허목의 친필서찰도 볼 수있다. 동방 제일의 전서 글씨와 척주동해비의 탁본도 만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춘천박물관에는 배용준 전시코너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하긴 겨울연가때문에 전세계에서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으니 강릉의 신사임당 만큼이나 유명인사가 되었다. 관련사진과 상품이 전시되어 있다.
양양의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도깨비 와당.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해학적이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당초문양과 턱수염의 곡선이 부드럽다.
회오리 문양의 막새도 있고 연꽃문양 막새는 양감이 뚜렷하다.
이렇게 만든 것은 몽고침입, 임진왜란도 아니다. 바로 6.25 전쟁으로 사찰에 불이 나 이런 흉찍한 종으로 바뀌었다. 양양의 선림원지 동종
약사철불. 어깨가 작고 목이 길고 손가락이 길어 몸체만 따지면 여성인 것 같다. 특히 물결무늬의 옷주름이 눈에 띈다.
정수가 '마이클잭슨 부처'라고 칭한 석조비로자나불. 원주쪽 폐사지에서 출토된 것 같다.
인도의 헤나문신처럼 옷주름이 흘러내리고 있다. 둘굴널적한 얼굴, 세밀하고 연꽃. 대좌 중대석은 공양상까지 새겨 넣었다. 기단의 각 면에는 사자가 꿈틀거리고 있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천년의 명품인데 이런 불상이 왜 보물로 지정 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박물관의 유일한 국보인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 월정사나 신복사지 석불좌상의 얼굴을 빼 닯았다. 한송사터가 대관령 아래에 자리잡은 것을 감안하면 동시대의 조각각가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얼굴이 아기처럼 통통하고 눈은 지긋히 감았으며 머리에 긴 보관을 쓰고 있는 것이 이 불상들이 특징이다.
이마의 백호에는 엄청 큰 보석이 박혀 있었나보다.
자세히 보면 오른손으로 연꽃을 쥐고 왼손은 검지 손가락을 길게 내밀고 있다. 아주 색다른 수인이다.
미남 얼굴에 늘씬한 허리를 가지고 있는 관음보살
이번 춘천박물관에서 가장 감명 받은 작품이 바로 창령사지 나한상이다. 어쩜 이 딱딱한 돌이 살아 있는 숨쉬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공력을 들인 작품이 아닌데 툭툭 정으로 찍어낸 얼굴들이 인간의 평화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저 감탄사만 튀어 나올 뿐이다.
한동안 바닥에 주저 앉아 나한상을 유심히 관찰했다. 우리네 평범하고 순박한 이웃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웃집 삼촌, 옆집 아저씨, 저잣거리 할머니가 바로 부처였던 것이다. 오백나한상은 영월의 창령사지에서 출토되었다. 조선 전기의 불상이라고 하는데 해학적인 미소에서 나의 할머니의 얼굴을 찾아냈다.
정수가 수녀님이라고 불렀던 경주의 감실부처가 이곳에는 무더기로 있었다. 세파에 찌든 마음의 때를 씻고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겠다면 일부러라도 이 나한상을 만나라.
어제는 할머니 제사였다. 눈이 오거나 세찬 바람이 불면 장꾼들은 귀찮기도 하고 손님이 오지 않을 것 같아그날은 쉰다고 하는데 우리 할머니는 그런 날에 옷을 더 팔수 있다는 신념에 장터로 향하셨다. 운좋으면 하늘에서 눈이 그쳐 장터에 손님이 북적러려 하루 수입이 괜찮았다고 한다. 이를 기도의 힘으로 믿고 있었다. 매일 기도 내용지겨울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마태복음 7장 7절 "구하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30대 초반에 혼자가 되어 아들 넷, 딸 하나를 키우는 할머니의 유일한 버팀목은 오기같은 기도였다. 누구나 절망할 때 할머니는 이를 기회로 삼고 죽자사자 두드렸다. "도대체 빈집을 두드리면 사람이 나옵니까'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몰아치면 할머니는 아라비아 상인처럼 목도리를 머리에 두르고 찬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연탄 한 장을 의지하며 불을 쬐고 있었다. 손 바닥은 거북의 등짝처럼 쩍쩍 갈라져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짠해졌다. '그냥 들어가시지.'
한동안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괴산 할머니. 난 이 나한상의 얼굴에서 할머니의 잔영을 보았다. 억척순이만은 아니었다. 불쌍한 사람이 나타나면 내복을 몰래 시장 바구니에 쑤셔 넣어주면서 먼산을 바라 보았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손때 묻은 장부와 알이 올라가지 않은 주판은 할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는 30대 초반에 혼자가 되셨다. 우체부인 할아버지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4남 1녀를 혼자 기르시고 대학까지 보내셨다. 한마디로 억척대장이었다. 농사 지을 땅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할아버지 약값으로 다 써 버려 어쩔 수 없이 시골 장터를 전전하며 옷을 팔았다.
가세가 다시 피려면 자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없이 빚을 얻으면서까지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를 시켰다. 그러다보니 평생 맛난 것은커녕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셨다.
어떤 때는 장터에서 버스를 놓쳐..20리길을 걸어 왔다고 한다. 얼마나 무섭고 힘드셨을까? 남편도 없이 갓난 아기를 업고 산길을 넘어왔는데 다른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무덤을 지나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한다. 한손에 묵주를 꼭 쥐고 성가를 부르면 뚜벅뚜벅 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언젠가 우연히 할머니 외상장부를 보게 되었다. 10년을 넘도록 돈을 못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마음이 착해서 늘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하신 것이다. 빚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유가 자식 교육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할머니를 모시러 괴산을 찾았다. 당시 나는 부산에 살았는데 조치원역에서 무궁화호나 통일호를 타면 부산에 쉽게 갈 수 있는데... 굳이 여비를 아끼신다고 비둘기호를 타는 것이었다. 조치원에서 부산까지 12시간 이나 걸렸으니 평생을 통해 가장 지루했던 여정이었다. 모든 간이역은 다 쉬고.. 어떤 역은 20분도 넘게 정차를 했다. 암만 생각해도 이해를 못하겠다. 기차삯보다 기차에서 먹는 밥값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6시간이나 12시간이나...조금 참으면 되잖아 .대신 그 시간동안만은 배가 부르잖아." 장터에서 얼마나 배고픈 삶을 사셨으면~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꼬깃꼬깃 모은 쌈짓돈으로 양복을 한 벌 사주셨다. 근사한 정장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어찌나 대견해 하시던지..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이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고향에 갔을 때 잠시 차를 세우란다. 5년전 외상을 받아야 한다며 그 집에 들어갔다가 사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아이들에게 과자값만 쥐어 주고 나왔다. '아예 들어가지나 마시지. '
참.내가 대학때 담배 피우다 들켜 빗자루로 사정없이 맞은 적이 있다. 군대까지 갔다온 성인을 말이다. 지금 힘들게 담배를 끊었는데 그 때 기분좋게 끊을걸~.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해서 또다시 시골로 달려갔다. 그때는 이미 치매가 심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젊날날의 힘든 기억을 잊고 싶으셨을까? 갑자기 내 얼굴을 기억하셨는지 똑바로 시선을 맞추시는 것이엇다. 입술을 꿈틀거리시는데 말씀은 못하시고....제 손만 꼬-옥 잡으며 눈물만 떨구시는 것이다. 분명 할머니는 무엇인가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을셨을 텐데 ....
나는 똥 오줌이 범벅이 되었는지 쾌쾌한 방에서 도무지 5분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애처로움을 무시한 채 그냥 훌쩍 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달 후 천국으로 가 버리셨다. 그때 할머니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
아무래도 귀에 못이 박혔던 마태복음 7장 7절이 아닐까 싶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
당신은 가셨지만 우리들에게 굳은 신앙을 주셨고, 이웃을 내몸처럼 아끼는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문이 열린다는 믿음을 심어 주셨다.
가끔 세상 살기가 버거울 때면 마태복음 7장 7절 구절이 떠오른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
빛바랜 성경 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마 예수님의 목소리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난 이 나한상에서 난 막내 삼촌을 보았다. 공부하기 싫다고 집을 뛰쳐 나갔던 삼촌은 온갖 고생을 지렛대로 삼아 이제는 근사한 사업체를 운영하신다. 역시 할머니처럼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사신다.
바보같지만 순박한 미소가 난 참 좋다.
붉은 입술
해맑은 미소. 세상사람들이 이것의 10분의 1만 닮았다면 세상은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다. 과하지 않는 미소가 마음을 흐믓하게 해준다.
한동안 주저 앉아 이 불상만 유심히 쳐다 보았다. 그 미소 속에 푹 빠져버렸다.
모놀의 대타님 얼굴 같기도 하고
정수야..라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행복한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긋이 눈을 내리며 싶은 사유를 하고 계신다.
'인생이 다 이런 거야'
국립춘천박물관 033-260-1500. 입장료 없음 경춘선 남춘천역에서 3km, 택시로 8분거리 시내버스 7번,9번, 63번, 85번, 88번 박물관 입구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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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수의 관심은 연예인이군요. ㅎ ㅎ ㅎ 나한상의 모습들이 정말 천진난만한 모습들이시네요. 대장님께는 할머니 삼촌의 모습으로 다가오셨군요.
대장님 김동있는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
할머님의 정이 그리워지는 훈훈한 글이네요~ 대장님 가족 모두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인사가 좀 늦었죠? 정수야 보고 싶구나...)
할 머니의 추억과 사랑으로 대장님이 돼셨군요~~~아마도 함 머니께서도 손주의 사랑을 기억 하고계실 꺼예요!!천국에서.....
볼만한게너무너무 많네요
가까운 시일내에 가봐야 겠네여...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나한상의 모습들이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올줄 몰랐네요. 할머님의 삶의 내용에 푸~욱 빠졌네요. 좋을글 감사합니다.
나한상과 할머니.... 요양원에 ㅇㅆ는 엄마의 얼굴이 ~~~~~-_-
잘 보고 정보 감사합니다 ^*^~~
나한상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나타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언젠가 한 번 가봐야 겠어요. ^^
한번 가봐야겠군요.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서른 여섯에 혼자 되어 3남2녀를 잘 기르신 우리엄마...대장님처럼 우리 엄마에 대해 멋지게 한 번 표현해 봤으면....^^*
고운 님..,
고맙습니다.
대장님의 시선은 많은 이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줍니다.
저의 바로 위에 언니가 춘천에 사는 관계로 춘천은 저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한국에 가도 반은 춘천에서 지내죠.
장이 서는 날이면 시장구경도 재미있어요.
지금은 접근하기 좋은 장소로 옮겨 놓아 현대판 장이 ...
주차장도 넓습니다.
춘천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어지네요. 대장님 고맙습니다.
전철 개통, 저도 가봐야 겠습니다.
그렇군요.....할머님의 온정의 불꽃이 이어져 대장님의 주변을 따스하게 해 주시는가봐요.....
가슴이 저리는 글 속에서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대장님 온 가족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글을 정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나한상 보기 위해 경춘선 타고 국립춘천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어요.
항상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분 한분 설명 감사합니다. 박물관 가면 그냥 지나쳤을 것인데...넘감사합니다. 뵙지는 못했지만 참 아름다운 사람일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장님의 따뜻한 시선은 할머님으로 부터 나왔군요 손자의 훈훈한정을 할머님도 아실겁니다........
잘 보고..........많이 감사합니다 ^)^
좋은글과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천안에서 전철타고 춘천까정 가려면 얼마를 가야되나? 할머님처럼 전철에서 도시락이라도 먹으며 가야할것 같네요...
날 따뜻해지면 가보고 싶네요. 할머니, 삼촌, 마이클....
천안에서 용산역까지 직통열차를 타고 오시구요.(1시간 30분) 용산에서 중앙선을 타고 상봉역(30분)까지 가셔서 여기서 춘천역까지 가시면 됩니다.(1시간 30분)
큰아버님의 상을 당해 괴산을 엊그제 다녀왔는데...대장님 할머님도 괴산 였군요 반갑습니다.ㅎ
항상 좋은정보 사진 을 보면서 동참하고 싶은데 하지못하는 형편에 마냥 아쉬움만 남습니다
기회가 되는데로 꼭 참석 하도록 하겠습니다 올 한해도 모놀가족들의 행운과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앉아서도 누릴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 또 감사 ㅎㅎ 할멍은 처음인데 정말 다양한 표정이네유~인생이 다 들어 있는듯^^
할머니에 대한 절절한 대장님 안의 느낌에 온전 공감합니다. 나한상 하나하나에 붙여진 그 표현에 .....도 또 감탄!
자연스럽고 온화한 나한의 표정들이 평화롭네요.
할머니에 대한 기억...................저도 가슴 짠한 기억이 무지 많답니다.
원주 석조비로자나불의 저 입매를 어디서 본 듯한데요~~~~
아!!!! 서산 황금산 코끼리바위에서 빛나던 대장님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