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39) - 논산을 걷다
1. 논산 돈암서원에서 출발하는 ‘솔바람길’를 걷기 위해 바로 옆에 있는 논산 한옥마을에 주차했다. 돈암서원은 조선 후대 사회를 규정지었던 ‘예학’을 정립한 김장생을 추증하기 위해 만든 서원으로 얼마 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한국의 서원 9곳 중 하나이다. 보물로 지정된 돈암서원 중심에 있는 ‘응도정’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들은 규모와 구조가 단단하면서도 운치있는 매력을 보여주었다. 선비들의 정신적 힘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2. 하지만 ‘솔바람길’의 안내는 영 부실했다. 입구 쪽 안내 하나만 보였고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네스코 지정’ 표지판이 중간에 하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어떤 표지도 방향 안내도 없었다. 어떤 지역의 길안내보다도 부실한 최악의 길안내였다. 결국 ‘솔바람길’ 답사를 포기하고 옆에 있는 ‘탑정호’을 둘러 보기로 결정했다.
3. 탑정호는 상당한 규모의 저수지이다. 탑정호 주변에 만들어진 나무테크길은 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게 조정되어 있었다. 기온이 35도 가까이 올라가서인지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호수 중간에는 한국에서 가장 길다는 흔들다리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월요일에는 휴관하는 바람에 직접 다리를 걷지는 못하였다. 호수의 규모나 다리를 포함한 풍경은 답사의 즐거움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온도 때문에 물이 녹조로 가득찼지만 어떤 호수의 둘레길보다 충분한 운동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길이었다.
4. 뜨거운 태양이 내리쬘 때의 답사는 가끔 ‘수행’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더위가 숨을 막을 때,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갈 때에는 생각보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생각을 버리고 몸에 가해지는 자극과 싸우는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제를 실천하는 일이다. 생각을 버리는 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을 버릴 수 있어야, 필요할 때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수시로 등장하는 불필요한 잡생각의 자극에서 자유로워질 때 필요할 때 의미있는 생각을 산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뜨거운 날의 걷기는 생각을 버리게 하는 효과적인 수행법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소진된 육체적 탈진은 머리 속을 깨끗하게 비워주고 새로운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토대를 만든다.
5. 시간이 조금 남아 논산의 대표적인 유적지를 몇 군데 찾아다녔다.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는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과거의 답사 때와는 다르게 입구도 좁고 절로 들어가는 길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상당히 여유로웠던 과거의 인상과는 달리 절내도 좁고 조금은 답답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은진미륵은 현재 한참 보수 중이었다. 또한 논산은 백제 계백 장군의 비극적인 저항과 안타까운 죽음이 벌어졌던 ‘황산벌’이 있는 곳이다. 황산벌 옆에는 계백 장군을 기리는 <군사박물관>과 계백장군 동상이 만들어져 있다. 월요일은 관광지 답사에는 불편한 날이다. 대부분의 장소가 휴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논산의 대표적인 장소를 돌아보았다. ‘신병훈련소’로 유명한 논산이지만 탑정호의 웅장한 매력은 가을이나 겨울에 오게 되면 색다른 매력과 만나게 해주는 논산의 대표적인 명소일 듯 싶었다.
첫댓글 - 걷는이의 경지, 수행의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