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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서 시집 출간 기념기(記
김완
“사랑하기에 이 아등 물고
먼 길을 가는 무개화차처럼 묵묵히 한세상
견디겠습니다라고 썼다가 지우고, 지우고
지우다가 망쳐버린 편지지 위로 망울망울
번져오는 쓰린 눈물 자국을 다시 지우다 보면
봉함엽서 같은 유리창에 새파란 압인을 받아
배달되어 온 새벽입니다 온몸으로 밤을 건넌
야래향나무들이 침침이 마른 잎을 떨궈
새 아침을 맞이하듯이 교대할 시간입니다“
-「새벽편지」 부분
박관서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 앞 시집이 나온 지 14년만이다. 세월호 문제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는데 출판기념회한다고 시인들이 떠들며 노는 것이 부담스럽다던 시인. 박관서 시집『기차아래 사랑법』출간 기념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광주전남작가회의 메일로 전달받았다. 만날 때마다 ‘시집 내고 월선리 저수지 앞에서 돼지 한 마리 잡고 잔치 한 번 크게 하자’고 채근했던 나로서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떻게 내려갈까?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목포역에서 행사가 열리니 김민휴 시인과 송정리역에서 만나 무궁화호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송정역에 도착하니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인 조진태 시인과 조성국 시인이 있어 함께 목포로 출발하였다. 오래된 열차이지만 공간이 KTX열차보다 훨씬 크고 넉넉하다. 새롭고 빠른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오늘도 길 위에서 한 문장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잠깐 사이에 목포역에 도착한다. 박관서 시집『기차아래 사랑법』출간 기념 포엠 콘서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맹문재 푸른 사상 주간, 백정희 작가, 이승철 시인, 조정 시인, 광주전남작가회의 이명한, 김준태 고문, 나종영, 조진태, 조성국, 김민휴, 신남영, 안오일, 김미승, 주영국, 김황흠 시인, 채희윤, 전용호, 이원화 소설가, 순천작가회의 박철영 회장을 비롯한 김종숙, 이민숙, 조동례, 김해화 시인, 목포작가회의 유종, 김성호, 양원 시인, 김천일, 조병연, 박종만 화가, 대전작가회의 김희정 시인, 이시랑, 장혜경 시인 등 많이들 오셨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가을이다. 30여년의 세월동안 남도의 철길을 묵묵히 지키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문학예술의 길을 올곧게 걸어온 박관서 시인을 축하하기 위해 문학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주말에 여행 가방이나 배낭을 메고 목포로 내려온 많은 여행객들과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합쳐져 빈자리 없이 목포역 맞이방이 그득하였다. 문학과 예술이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고 대중과 함께 소통한다는 의미에서는 딱 맞은 공간이다.
유종 시인(목포작가회의 지부장)의 사회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김애경 님이 제작한 식전 영상물을 보았다. 기차와 함께 사는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뜻 깊은 영상물이었다. 여는 시로 대전작가회의 사무국장인 김희정 시인이 「손금」을 낭송하였다. 언제 들어도 낭랑하고 이야기가 있는 김희정 시인의 낭송이 목포역 맞이방을 일순 숙연하게 만들었다. 행사는 인사말, 축사, 격려사, 내빈소개, 작품해설, 포엠 콘서트, 감사패 증정, 작가 인사말과 가족 친지 소개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하재련 목포 역장님, 조진태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의 인사말, 박지원 국회의원의 축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인 김준태 시인과 목포대학교 교수 김천일 화가의 격려사가 있었다. 유종 시인의 내빈소개가 있었다. 맹문재 푸른 사상 주간(안양대 교수, 시인)의 철도문학에 있어서는 한국시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박관서 시인에 대한 작품해설이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과 열차시간에 따라 들고나는 사람들, 방명록에 서명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진 플래시, 소란스런 분위기 탓에 말들이 잘 안 들리기도 하고 끊기기도 하였다.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 소개 후에 본격적인 포엠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박관서 시에 곡을 붙인 ‘에밀레’-오영묵, ‘일로역 민들레’-진진이 있었다. 동료시인들의 시낭송 광주의 안오일, 목포의 김혜경, 순천의 김종숙 시인들의 축하의 말과 더불어 박관서 시인과의 인연들을 소개하면서 시낭송을 하였다. 다시 시노래로 ‘봄날 내 마음은’-한보리, ‘그대에게’-오영묵, 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중국에서 탤런트를 하는 박관서 시인의 조카 박목련님의 시낭송이 있었다. 연이어 포엠 콘서트의 사회자인 나무(박양희)님의 박관서 시인에 대한 소감이 있었다. 곧바로 나무의 시낭송이 있었는데 잔잔한 배경 음악에 깔려 아름다운 목소리로 멋진 시낭송을 하였다. 시노래 ‘고하도 작은 섬’-한보리, ‘무안역’-진진으로 이어졌다.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들이 퇴장하고 마지막으로 가수 허설이 등장하여 신작 시노래 두 곡 ‘간이역’과 ’신호기‘를 열창하였다. 소음이 많은 역대합실에서 박관서 시인을 위해 기꺼이 노래한 한보리, 오영묵, 박양희, 진진 그리고 허설을 비롯한 노래패들의 노래, 시인들, 지인들이 시낭송을 하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지루할 때쯤 오늘의 주인공인 박관서 시인이 등장하였다. 감사패 증정과 가족들의 소개가 있었는데 친가, 처가 모두 우애가 두터운지 스스럼없이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대가족이었다, 박 시인의 넓고 푸근한 뫔처럼 고루 화목해보여 보기에 좋았다. 마지막으로 함께 모인 문학 예술인들이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행사가 끝났다. 단체사진에서 빠진 조 씨 성을 가진 시인들은 그때 이미 역전 식당에서 막걸리를 먹고 있다는 소문이? 사진을 볼 때 마다 두고두고 회자될 운명이었다. 아무리 술이 급해도 출석이 자연스레 점검되는 전체 사진촬영 때는 빠지면 안 된다는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드디어 기다리던 뒤풀이 시간, 목포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선창 돌집식당에서 즐거운 저녁식사와 더불어 술이 돌았다. “기운 햇살 줄줄이 스며드는 역전 골목/밥집 뒷방에 모여 보글대는 곱창전골로/송별식을 한다. 서로가 빈속인지라/몇 잔의 선술에도 불기둥이 서고/눈자위와 귓불에도 금방 꽃물이 든다.”―「송별식」 부분. 그렇게 노래했던 시인의 아픈 마음과는 다른 오늘은 기쁜 날. 반갑고 그리운 마음들이 서로 술잔을 나누는 사이 한쪽에서는 벌써 취기가 돌았다. 몰랐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친해지는 친교의 시간이다. 역시 우리 문화에서는 술잔을 함께 나누어야 친해지는 거다. 미처 말이 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시간들. 시절이 하수상하고 시대가 불온하니 그리운 사람들이 모인 말들의 수런거림, 이런 자리가 다른 어떤 모임보다도 살갑다. 자리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서로에게 술잔을 돌리며 안부를 묻는다. 이런 풍경을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이다’는 홍신선 시인의 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왁자지껄 한바탕 전쟁을 치르듯 돌집식당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식는다. 한두 사람씩 일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빠져나갔다. 9시경 식당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하여 소수 정예들이 차를 나누어 타고 무안 월선리 박시인의 마을로 이동했다.
소수 정예라 하지만 수가 너무 많아 박시인의 집에서는 행사를 할 수 없었다. 마을 황토 찜질방을 통째로 빌어 월선리의 밤 행사를 이어갔다. 마당에서는 오늘 잡은 돼지가 구어지고 밤이 깊어져갔다. 달은 보름달을 향해 가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추위에 옹송그리고 있었다. 밤바람이 꽤 쌀쌀했다. 찜질방 마당에 있는 정자에서 달을 보며 오랜만에 만난 어느 시인에게 우리가 기다리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선문답 같은 질문을 하고 서로 대답을 주고받았다. 인간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피고 짐이 더욱 허망해지는 시간이었다. 허망할수록 누군가가 더욱 그리운 시간이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월선리 찜질방에 다시 모였다. 어디선가 교자상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장작불에 구운 돼지고기 안주, 된장 고추장이 나오고 다시 술과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한편에서는 ‘갯벌이 아니다’는 사람과 ‘갯벌이다‘는 사람의 언쟁도 일어나고, 문단의 애환과 숨은 이야기도 나누고, 중간에 순천작가회의 사람들이 한차로 떠난다고, 떠나지 않겠다고 승강이 하기도 하고 또한 형편에 따라 한두 사람씩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갔다. 나종영 선배를 중심으로 몇 몇 주당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밤을 새웠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월선리의 달이 취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과 ‘날이 밝으면 반딧불이도 한낱 벌레일 뿐이다’는 일본 시인 아온의 하이쿠가 자꾸 떠오른 것은 왜일까? 밤을 새우며 술잔이 나를 삼킬 때 까지 허락했던 길 위에서 다음날 아침 떠날 준비가 되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침상을 받고 일찍 일어서야 했는데 중간에 주인공이 사라지는 에피소드가 일어나 한참 소란을 떨며 주인공을 찾아서야 월선리를 떠날 수 있었다.
월선리 예술인촌은 승달산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도선 국사가 말한 ‘구름 속에 달을 가두고 신선은 독서를 한다’는 뜻의 ‘雲中水月 仙人讀書’에서 월(月)자와 선(仙)자를 따서 월선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보아야할 유. 무형문화재도 많다는데 머무는 동안 술독에 빠져서 자세히 살피지도 못하고 떠나는구나. 가야 할 길은 월선리 저수지 깊은 곳에서 출렁이는데 박관서 시인의 따뜻한 마음과 노래가 있어 쉬이 떠나지 못하고 자꾸 서성거렸다. “천 년 전에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천년 후에 누군가 그럴 것처럼/나는 나를 걸었네 내 몸을/내 몸에 걸었네 제 몸의 무늬로만/기적 소리 둥그렁 둥그렁 울리며 나아가는/종소리가 되었네 그래 미안하네/나는 너무 멀리 나와 버렸네.”―「기차 에밀레」부분. ‘제 몸의 무늬로만/기적 소리 울리겠다’는 시인의 말은 기차와 시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이 험한 세상을 건너가겠다는 아름답고 결연한 의지일 것이다.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순전히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이다’는 박관서 시인의 겸손과 너그러운 마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지역 문학예술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저녁 술자리, 아침식사를 넉넉하고 자상하게 챙겨준 제수씨에게 일행을 대표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이번 박관서 시집 출간 기념식에 함께한 모든 분들의 건승과 행운을 기원한다.
첫댓글 역 맞이방에서의 포엠콘서트라, 이색적인 듯도 해서 더욱 좋았었겠네.
철길을 지키는 시인이라면 더더욱!
어쨌거나 이튿날까지 이어졌으면 뻑적지근하기도 했겠네. 김 시인의 '기'를 읽으니 나도 어느새 목포역에 서 있는 느낌이라네.
명현이 형, 잘 지내시지요? 자주 만나 소주 라도 한잔 해야 하는데 사는 것이 늘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