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후 잠시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간단한 산책을 한 다음 아침 식사를 했는데 전날의 시행착오를 생각하며 빵과 만두종류를 몇 개 접시에 덜어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접시의 귀가 떨어진 부분이 있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중국에서는 그런 것을 오히려 오래된 전통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화를 내겠지만 중국의 풍습이 그러니 할 수 없었다.
우리들은 북경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만리장성으로 떠났다. 세계 7대 불가사이에 속한다는 만리장성은 달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지구 유일의 인조건축물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만리장성을 보기 위하여 출발했는데 날씨가 다른 날보다 좋았으나 춥고 바람이 불어 케이블카를 탈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었다. 만리장성에 도착을 해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섰다. 케이블카는 6인승 으로 앞뒤로 앉도록 되어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기 보다는 앞의 유리창을 통해서 멀리의 장성을 보았다. 5분 정도 오른 후에 우리들은 케이블카 정거장(?)에 도착했다.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가 변경을 방위하기 위해 축조한 큰 성벽으로써 보하이 만(渤海灣)에서 중앙 아시아까지 지도상의 총 연장은 약 2,700km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이라고 한다.
만리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고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으니 일석이조의 역할을 했고 지금은 중국의 제일 큰 관광자원이 되어서 전 세계인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만리장성을 관람하면서 다시 한번 중국의 힘을 느끼고 다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그 곳을 떠나 식당으로 갔다. 오후 1시 즈음해서 식당에 도착했는데 그 식당은 국영백화점을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우리들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식당으로 먼저 향했다. 식당에 들어가자 그 규모에 놀랐다. 2,000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식사를 한 후에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가족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일반 시장과는 달리 할인을 해 주지 않았고 대신 열쇠 고리나 핸드폰 고리를 10개를 사면 하나를 더 주었다. 칠보를 직접 세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품질을 제법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중국을 여행하려면 하루에 두 군데의 상점을 들려야 한다고 하는데 파스공장도 그런 이유로 들렸다. 연구원이라는 젊은이가 세 가지 파스를 설명해주었고 현지에서 아픈 사람에게 파스를 붙여주기도 했다. 연구원은 제품에 자신감이 있는지 아니면 국가에서 100번의 실험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쇠 체인에 빨갛게 불을 달구고 그 곳을 맨손으로 만졌다. 그것을 지켜 본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는데 그 연구원은 그 곳에서 만든 연고를 발랐다. 자신감에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 곳을 나온 우리들은 명13릉으로 향했다. 명 13릉은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약 50k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황릉 구역은 장릉이 있는 천수산을 주봉으로 동,서,남,북 삼면이 뭇 산들에 둘러싸여 천연적인 대정원을 구성하며 정원 문은 남쪽에 있고, 그 양쪽에 망산과 호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마친 용과 범이 대문을 지키고 서 있는 듯 하여 풍수지리설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치고 있다고 한다.
명나라 성조 주태로부터 사종 주유검 등에 이르기까지의 13명 황제가 모두 이 군산이 둘러싸고 송백이 무성한 구역 내에 매장되었는데 명13릉은 영락 7년(1409년)에 장릉을 건조하기 시작해서부터 숭정 17년 (1644년)에 사릉을 수축하기까지 200여년을 경과하였다. 1956년 중국 문화재 고고학자들이 명나라 만력 황제 주익균의 능묘 - 정릉을 발굴하고 지하궁전을 발견하였는데 관 이외에도 금, 은, 진주, 보석, 복식, 옥기 등 보물 3,000여점의 보물이 출토되면서 정릉의 비밀이 밝혀졌다고 한다.
13릉의 정문인 대홍문에 들어가면 양쪽으로 돌물석상이 늘어서있는데, 이것들은 단순한 능묘의 장식이 아니고 사후에도 황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지하 27미터로 계단을 걸어서 내려갔고 그 곳에서 여러 유물을 만나며 중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그 곳을 출발해서 5시쯤에 식당에 도착했고 식사를 한 후 호텔로 돌아가는데 가이드의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그것은 발 마사지를 받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태국을 여행했을 때 사마지는 받아보았을 때 느낌이 좋았기에 이번에도 받아보기로 했는데 동생이 호텔에 들르기로 했기에 그 이후로 시간을 정했다.
호텔에 도착한 후 잠시 방에서 머물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호텔에 도착을 했다는 것이었다. 로비로 내려가 보니 생수와 음료수 그리고 맥주와 안주까지 또 사왔다.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가족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동생과 아쉬운 헤어짐의 시간을 가진 다음 삼 학년 학생들 12명과 교사 두 명이 가이드들과 함께 마사지를 받을 곳으로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기본요금이 10원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1,300원 정도인데 30분은 달렸다고 생각되는데 2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우선 마사지를 받기 전에 녹차와 따듯한 물을 넣은 나무통에 발을 담갔는데 느낌이 아주 좋았다. 십분 정도 지나자 제복을 입은 마사지 소녀들이 들어와 마사지를 받기 위하여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앉았다. 잠시 후 발을 닦아준 후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해 주고 크림을 발에 바르고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따스한 물에 발의 상태를 좋게 했기에 마사지를 받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마사지를 하는 소녀들의 나이나 마사지를 받는 학생들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지방에서 북경으로 올라와 자격증을 따서 마사지 걸이 된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마사지를 받고 나서 우리들은 다시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갈 때도 택시를 탔는데 올 때와는 다른 길을 이용하는 것 같았는데 요금이 40원 가까이 나와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같은 거리인데 두 배의 요금이니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할증 요금과 택시의 종류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첫댓글 윗 사진은 만리장성 아래는 명 13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