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
조 성 순
봄이다. 바다에서 비가 온다. 그래서 비린내가 난다. 골목길에 새끼제비 주둥이 같은 노란 개나리가 입을 열고, 어젯밤 늦도록 달바라기 하던 목련이 고사리 손을 펼치고 있다. 목련이나 개나리는 꽃향기보다 비릿한 바다냄새를 풍긴다. 봄비는 가볍다. 깃털 같은 새싹도 밀어 올릴 만큼 부드럽다. 스산했던 산도 얼었던 들판도 비가 내리면 초록빛 바다가 된다. 봄비를 보면 난 멀미가 난다. 부풀대로 부푼 거리에서 속이 몽글거리고 몸은 저절로 떠오른다. 딱히 갈 곳도 없이 우산을 친구 삼아 길을 나선다.
꿈틀꿈틀 거릴 뒷동산으로 갈까, 근린공원 약수터 쪽으로 갈까, 넓은 잔디밭이 있는 갑천에 가서 빗방울이 그리는 동그라미나 볼까, 오늘 내리는 빗줄기로 보아 동그라미는 아마 동학사에서 파는 만 오천 원짜리 해물파전 만 할 거야. 아파트 담장 따라 피고 있는 개나리 꽃눈을 보며 심호흡을 한다. 통영 앞바다 비진도에서 나던 갯내가 난다. 마음은 바다로, 바다로 가고 있는 몸이 도착한 곳은 집 근처 작은 도서관이다. 옥상에 있는 하늘공원으로 간다. 키 작은 대나무가 간지럼을 타고 있다. 덤불속에서 콩알만 한 야생화 잎들이 오종종 돋아나고 있더라, 반짝거리며,
여름비는 땅에서 온다. 그래서 흙내가 난다. 흙탕물을 튕기며 빗속을 뛰어 다니던 날, 탱자만 하던 호박이 어른 주먹만큼 커지면 나도 한 뼘쯤 자랐다. 앞산에서 달려 내려온 비가 옥수수 밭을 휘 젖고 다니면 엄마는 호박부침개를 부쳤다. 마루 끝에 앉아 두 발을 달랑거리며 마당에서 튀어 오르는 흙비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 무렵 큰 비에 황토물이 넘실대던 개천이 바다인 줄 알았다. 여름비는 활기차고 청량하다. 그리고 치열하다. 용광로 같은 더위에 세찬 소낙비가 내리면 잠시나마 숨통이 트인다. 파라솔도 없는 도로가에 채소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도 잰 몸놀림으로 비설거지를 한다. 빗줄기는 땅바닥에 흙먼지만 일으킨다.
좌판 상추에 묻은 빗방울이 채 마르기 전에 아스팔트가 뜨거워진다. 날씨는 끈적거리고 세상살이는 숨이 턱턱 막히던 그해 여름도 땅에서 폭우가 왔다. 반 지하 거실바닥은 배수로에서 솟은 물로 무릎까지 차고 도로에 넘친 물이 현관문을 밀고 들어 왔다. 무리한 신도시 건설이 소통의 장애를 불러 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 더 이상 흙비를 볼 수 없었고 어쩌다 흙내를 그리워할 뿐이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물 폭탄이 쏟아진다. 자동차들도 놀라 비명을 지른다. 경적소리에 놀란 빗물이 와르르 길섶으로 달아난다. 장마가 시작되려나 보다.
가을비는 지친 아버지 어깨에서 온다. 그래서 설익은 두엄냄새가 난다. 커다란 느티나무에 단풍이 들면 가로등처럼 환하던 산골 외갓집에서도 그런 냄새가 났다. 아버지 땀내 같은 그 냄새는 아릿하다. 그 날은 어디로 갔을까. 가을비에 모든 생물이 옹송그리고 있는 저녁이 슬프다. '낙엽이 비처럼 내립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은 날이다. 시답잖은 내용으로 시시각각 카톡을 보내던 친구들도 조용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건배를 한다. 손에 잡히는 책을 펼친다. 하필이면 기형도의 시집이다.
펼쳐지는 장마다 울컥울컥 가슴이 뜨겁다. 내친 김에 최헌의 노래 <가을비 우산 속>을 좁은 거실에 흘러넘치게 틀어놓고 소리 없는 비를 바라본다. 도대체 내일이 열리기는 할까? 가을비는 무겁기도 하지. 열매를 떨어뜨리고 나뭇잎도 훑어 내리고 하늘을 끌어내리더니 급기야 땡땡한 나까지 빗속에 부려놓는다. 비는 창문에 빗금을 그으며 나를 가두고 또 하나의 나는 깨운다. 난 어딜 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둠이 깊어지자 비가 멎는다. 새벽까지 날 좌지우지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오래된 아파트 담장을 수리한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는 통장의 방문도 한몫했다. 그제야 게으른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겨울 아침 일곱 시는 깜깜하다. 휴일도 아닌 날 보너스처럼 주어진 하루, 출근할 때처럼 어슴푸레한 시간에 버스를 기다린다. 비가 내린다. 빗줄기도 추운지 가로등 곁에 모여 곁불을 쬐고 하얗게 흩어진다. 버스 창밖으로 회색거리가 빠르게 움직인다. 벼르던 영화를 놓칠세라 조조를 보려고 부지런을 떨었다. 극장 안은 조명이 반 만 깨어 있어 아침인지 밤중인 그 경계가 모호하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5일의 마중>은 상영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오늘이 아니면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최면유도자의 지시처럼 실내등이 꺼지면 화면이 살아난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간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가슴 아픈 이별을 겪은 가족이 등장한다. 대학교수 남편은 지식인이란 이유로 수용소로 가게 되고, 발레 하는 딸은 주인공 욕심에 탈출한 아버지를 고발하고…. 혁명이 끝나고 풀려난 남편은 5일에 집에 간다는 편지를 보낸 후 돌아온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리움보다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녀는 여전히 갇혀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는 시구만으로는 너무 가볍다. 커다란 우산을 받쳐 들고 애절한 눈빛으로 곁에 있는 남편을 찾는 그녀 모습이 먹먹하다. 영화 속에서 현실로 나오는 계단을 찾느라 더듬거린다. 마치 꿈속처럼 어렴풋하다.
극장을 나서자 여전히 비가 온다. 아무런 냄새도 없이.
첫댓글 이 글을 왜 많은 독자들이 조회(18일 오전 9:35 현재, 조회수 190회)하는지
글에서 어떤 부분이 좋은지 다양한 각도에서 해설을 듣고 싶어요.
이번에 새로 오신 조선생님은 등단 한지도 오래 되셨고
시집, 수필집도 내신 대전문단 중진이십니다.
신규로 가입해 주셔서 반가움에 작품 한편 소개 차 올렸습니다.
먼저 대전수필문학회 회원 가입을 축하합니다. 환영합니다.
<비 냄새>라는 작품은 비와 연관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를
각기 다른 풍경과 깊은 사유로 조화시킨 구성력이 돋보입니다.
문장은 전반적으로 섬세하나, 의미 전달이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30여년 골방 독학으로 수필문학을 공부해온 저의 좁은 시각으로는
독해력이 다소 부족한 소감일지도 모릅니다.
첫인사로 반가움이 앞서 무례한 소감 한 줄 적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 많은 가르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윤승원 선생님!
세심하게 살피고 평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신경을 더 써야할 부분을 짚어주셨어요.
산 속에 들어 있으면 산은 보이지 않죠. 산에서 내려와 산도, 숲도 보겠습니다.
의미있는 환영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조성순 드림
@조성순 시와 수필, 깊이 있는 훌륭한 글을 쓰시는 대가 앞에서 무례하고 죄송스러운 소감인데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살펴 주시고, 여유로운 미소로 답해 주시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차가워진 날씨에 이만큼 훌륭한 수필과 작가의 답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조선생님 따뜻한 마음이 전해 오는 귀한 답글로 인하여 카페 분위기도 난로에 장작을 지핀 것처럼
온화해집니다.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과분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오늘 바람이 제법 차더군요.
건강 챙기시기 바랍니다.
카페에 새로 오셔서 둘러보니 아직은 낮설지요.
시간이 지나면 덜 할 겁니다.
적극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채화 같은 글을 읽습니다.
비를 계절에 따라 표현하신 역량에 감탄사를 드립니다.
시어를 곁들인 좋은 작품 기다립니다.
우리 문학회에 참여해 주심에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계절의 비를 바라보면서 느낀 것을 표현해 주셨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