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펜로제
(alpine rose, Rhododendron ferrugineum)
지상에서 처음 만나는,
낯 선 풍경.
고산증으로 머리는 멍하고,
몸은 떠있는 듯하고,
주변엔 아무도 없는.
까마귀 깍깍 대고,
신비로운 새('흰귀꿩')가
바쁘게 지나가고,
들판에 돼지가 거닐고...
여기가 선계인가,
아니면, 다른 행성인가 ?
어느 날,
설악산에서,
그리고, 에베레스트 BC에서 경험했던 감동을,
여기서 다시 느낀다.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2 op.18
Anna Fedorova
선계로 들어서는 길.
오토바이 타고 오는 분이,
살짝 분위기 깬다...^^
동충하초나 버섯을 채취하며 사는 분들.
동충하초
꼬리를 아래 위로 흔들던,
귀여운 새
집시 여인
초원에서 시작한 길
조금 올라가니,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 덮인 숲과 산이 장관이다.
야라버들..^^
야라괭이눈
5월의 눈이,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
흰색과 초록이 공존하는...
올해는 설중화를 많이 본다.
설중화를 만나는 것은
'운칠기삼(運七技三)'도 아니고,
'운구기일(運九技一)'쯤 된다.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양의 눈이 와야 한다.
눈이 너무 오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 날도 아침에 잠깐 내린 눈이,
이런 풍경을 만들었다.
내려올 때는 눈이 사라졌다.
역시 봄 눈이다...
자연 속에,
점 하나로 보이는 미약한 나를 보는 듯하다.
3,000m을 넘어서면 힘들어 하는 후배.
매번 겪는 고통이지만,
고통에 중독된 것인지,
매번 기를 쓰고 올라간다...^^
자매호가 보인다.
남편은 습지에서 설중화에 빠져있고,
홀로 올라온 여인.
혼자 내려가며 무서움을 느꼈고,
남편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에이, 괜히 들었네.
닭살 돋는 멘트지만,
여운이 남네요...ㅋㅋ
Are you Madam Butterfly ?...^^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일본 나가사키.
집안이 몰락하고 아버지는 할복자살하고
게이샤가 된 열다섯 살의 초초상(나비부인).
일본 주둔군 장교 핑커튼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핑커튼에겐 장난에 불과했지만,
초초상은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건다.
얼마 후에 핑커튼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케이트라는 여인과 결혼한다.
주변에선 남편을 단념하라고 권하지만,
초초상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어느 갠 날'을 부른다.
어느 갠 날 (Un bel di vedremo)
Angela Gheorghiu
3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오는 핑커튼이 탄 군함이
예포 소리와 함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초초상은 집안을 꽃으로 꾸며놓고 밤새 남편을 기다린다.
이 때 '허밍 코러스'가 들려온다.
Humming Chorus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케이트와 함께 나타난 핑커튼.
집안에 가득한 꽃을 보고 괴로워서 몸을 숨기고,
케이트는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약속한다.
핑커튼의 진심을 알게된 초초상은
아이에게 작별을 고한 뒤,
병풍 뒤로 가서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라'는
문구가 새겨진,
아버지의 칼로 자결한다.
두번째 자매호로 가는 길.
잠깐 멈추고 생각을 했다.
올라오며 봤던 꽃들이 눈에 선했다.
그들과 함께 할 시간이 모자랐다.
아내를 불러 여기서 돌아섰다.
Good job~~^^
후배가 보여준 2번째 자매호, 진랑조(镇朗措)
아일아조( 垭日阿措)->진랑조(镇朗措)->우조(友措)
세 개의 호수에 갈 계획이었으나,
나는 트랙에 보이는 바와 같이,
한 곳만 보고 내려왔다...^^
이렇게 절묘한 타이밍이 만든 풍경은
다시 보기 힘들 것 같다.
언덕 위에서 숨을 돌리던 후배도,
우릴 반갑게 맞으며 함께 내려간다.
너는 이런 모습으로,
누굴 기다린거야 ?
나 ?
난 안돼.
옆에 계신 분께 맞아 죽을거야...^^
여긴 지구가 아닐거야...^^
한참을 꽃과 놀다가 내려갔는데,
아내가 따뜻한 물과 간식을 주려고 기다리고있었다.
몇십 분을 떨면서...ㅠ.ㅠ
고산 벌노랑이
(alpine bird's-foot trefoil, Lotus alpinus)
엘비라 마디간처럼
꽃밭을 휘젓고 다녔는데,
영화처럼 '탕'소리가 나더니,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러다가 야라설산도 열리는 것인가 ?...^^
'탕'소리는,
두번째 자매호에 가서 정상주를 마시고
돌아오던 삼총사가,
야라우조에 가자고 부른 소리였다...^^
그런데, 여길 떠날 수가 없었다.
후배가 보여준 야라우조...^^
오를 때 습지를 덮었던 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무를 덮었던 눈꽃도 모두 사라지고.
장족 여인의 생활력이 보인다.
일처다부제가 존재하는 장족.
형제가 한 여자와 한 집에서 부부로 살아간다.
여자가 부족하거나,
여자를 맞을 돈이 부족해서 생긴 풍습 같다.
여기서 야라설산이 열리기를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서,
계속 걷는다.
잉꼬부부 인증샷...^^
바람이 구름을 조금씩 밀어낸다.
모두 수고했어요..^^
드디어 야라설산이 열리고 정상이 보인다.
정말 고산의 날씨는 예측할 수가 없다.
구글 날씨 예보는 엉터리다.
우리 버스 기사는,
기다리는 동안에,
땅바닥에 엎드려 이런 영상을 담아줬다.
엽기적인 하루가 끝났다.
햇살 좋은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는데,
다행히 늦지 않았다...^^
단바의 숙소에 도착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은 장평구 트레킹으로 몸을 풀고,
마지막 목적지인 따구냥봉을 향한다.
2019.05.22 야라설산
첫댓글 잊지 못할 순간!!!
맞아, 운이 좋은 날이었어. 고마워~~^^
와우 정말 멋지네요..역시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칭찬, 고마워~~^^
험지에서 느끼는 따듯한 부부애.
어쩌다 보니...^^
지상에서 낙원으로
낙원에서 지상으로
하루는 긴긴 날이였어
맞아, 그런 기분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