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는 죽음을 앞둔 소와 노부부에게 남겨진 2년(2005-2007)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의 주인공과 무대는 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맥 산기슭 오지 어느 산골마을에 사는 한 노부부와 마흔 살 먹은 소를 주재로 하여 삶을 살아가는 우리농촌의 현주소를 말하는 가슴 찡한 메시지이기도하다.
여든에 가까운 할아버지 농부와 그의 부인 그리고 부부가 40년을 키워온 마흔살 된 늙은 소를 담담히 바라보며 나이 덤과 죽음에 대한 이별을 엮어간다. 내레이션도 없고 배경 음악도 많지 않으며 굴곡이 심한 이야기가 없으며 '유기농업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이충열 감독은 "삶의 내리막길에서 소와 아버지가 빚어낸 아름다운 교감과 눈물겨운 헌신을 그리고 있다“했다.
영화 스토리는 말 못하는 소에 대하여 인간이 받치는 78분 자리 서사시 이기도하다.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 삶의 모든 것이 기적 이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농부 최노인에겐 30년을 같이 농사지어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그런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로 동물과 사람이 친구 같아 보이기도 하고, 연인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할머니는 질투 아닌 질투심이 유발하기도 한다.
소는 말이 아닌 워낭소리, 울음으로 제 자신을 표현하며 그 소가 느끼는 모든 것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반응하는 귀가 먼 할아버지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듣지 못해도 소가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무섭게 돌아보는 그 눈빛. 그 눈빛이 소와 무척 닮아 있었다.
소름끼치게 닮은 소와 할아버지의 모습은 한낱 인간과 동물의 관계로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남매를 길어낸 부부 사이 이건만 할아버지는 할머니 사이 일상 대화에서 단절과 삶의 대한 견해 차이가 때때로 보여지지만 할아버지와 소 사이에는 30년 동안 주종의 위치를 굳굳이 지키면서 일하는 것을 보람으로 서로가 의지하며 살어온 길이 같기에 말은못하는 동물이지만 할아버지한테는 친구이며 동반자로 보여진다. 이런 감정은 무엇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 침구 시술 잘못으로 다리 한 쪽을 쓰지 못하는 불구의 몸으로 논밭을 기어단니면서 농사를 짓는다.
노인의 부자유한 활동의 모든것을 소에게 의지하여 생활하지만 소도 40년을 넘긴 늙은 나이가 되어 야위고 너덜너덜해진 다리로 달구지를 끌고 단닌다.
소와 할아버지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함께 논밭과 들길을 오고 가며 같이 살아가야 하는 전생에 어떤 기구한 인연을 실천하는 무언의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며, 소는 죽기 직전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발짝 한발작 띠는 노쇠한 소 앞에 생명의 경외심 을 느끼기 족하였다.
삶보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오는 예감 앞에 할아버지와 소는 서로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떨치지 못해 보였다. 소에게 닦쳐 올 제 죽음이라는 사실앞에 마음 편치 않았는지 눈물 흘리는 모습이 영상에 크로즈읍 될 때 관객들 마음을 한없이 울려준다. 어떤 의미에서 든지 살아있는 것은 승자이며 죽음은 실패이고 슬픔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같다.
할아버지가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읍내 병원을 찾아 건강검진을 마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거리를 자기의 자가용인 소달구지를 타고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농민들이 시장터에 나와 <미친 소가 웬 말이냐! 한미 F.TA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스친다.
사람과 소의 관계를 넘어서 F.T.A 협상을 앞두고 우리 농업의 실상을 말하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 아프다
노쇠하여 활동력이 줄어든 소를 대비하여 사육한 소가 암 송아지를 생산하여 키우는데 늙고 병든 할머님에게는 너무나 큰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노인을 향하여 "소 팔아" "안팔아"를 되풀이 하다가 어느날 미국산 광우병 소가 수입돼서 들어온다면 농가에서 피해가 크다라는 라디오로방송을 통하여 뉴스를 접하고는 말썽부리는 암 송아지를 팔기로 결정하는데 시장에서는벌써 먼저 하락가격이 왔다. 그것을 모르는 노인은 너무 가격에 차이가 나서 제값에 받겠다고 티격태격하다 앞으로 가격이더 떨어질 거라는 소식에 어쩔수 없이 송아지를 판다.
젊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는 산골 마을 노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지켜가고 있는 농촌은 모두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며 우리 농촌의 미래도 촛불처럼 타들어가고 있는 무언의 메세지를 보게 된다. 수지맞지 아니하는 농사일에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 늙고 병든 노인들이 맡아서 일하다보니 일손이 부족한 현상이 늘어가고 있다. 일부 기계화 영농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이를 해결해 보겠다고 힘이 붙이어지지만 더 크게 농사를 짓다보니 그 밭을 손으로 다 맬 수도 없고 그 논을 다 소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 지금농촌 사정이다.
농사 일로 생업을 하며 살아온 최 노인은 농사를 위해서라며 자기방식의 철학을 가지고 영농을 해나가고 있다. 할머니가 잡초 제거와 해충 방지를 위해 농약사용을 주장하지만 아량 곳 하지 아니하고 무 농약 재배 고집과 기계 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익힌 방식데로 손수 땅을 일구고 밭을 매는 모습이 비쳐진다.
논밭에 간단하게 농약을 사용하면 병충해가 예방이 되지만 그 풀을 먹고 살아야할 소에게 해가 될가봐서 할아버지는 농약을 치기를 끝까지 거부한다.한 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른다. 결국 안전한 먹을거리는 저렇게 힘들인 농부들의 손끝에 나오지 아니하는가?
소를 향한 최노인의 심중을 알고라도 있는 것인지 소 역시 제대로 서지도 못 하면서 최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산 같은 나뭇짐도 마다 않고 나른다. 무뚝뚝한 노인과 무덤덤한 소와 관계는 서로가 이심전심하는 친구이다.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소 이지만 최 노인에게는 일생을 동행한 최고의 친구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최노인이지만 희미한 소의 워낭 소리와 행동을 보고 소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 체린다.
화면 중간 중간 노쇠한 소가 느린 걸음으로 수레를 몬다. 수레에 탄 노인은 때로는 잠에 빠져 휴식을 찾는다. 노인은 쇠똥이 덕지덕지 붙은 소가 수레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관여치 않는 듯하다. 밭에 도착하면 노인이 일을 시작하는동안 소는 눈을 감고 휴식한다. 거동이 불편하여 힘든 걸음로 할머니가 나타나 머리에 이고 온 새참을 내려놓는 정경과 멀리서 산새가 울고 언덕엔 진달래가 핀 겉모습만 보면 너무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속에 삶을 살아가는 생활은 결코 생각 만큼 수월한 삶이 아니다.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30년 동안 태우고 다녔고 논밭을 함께 일군 소의 도움으로 부부는 아홉 남매를 키웠다
노인은“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봄, 최노인은 수의사에게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을 거라는 선고를 듣는다. 애써 웃는 노인은 수의사의 말을 안 믿는 척한다. ‘워낭소리’의 홍보 포인트는 소와 노인의 40년 묵은 교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거리다.
명절을 맞이하여 도시에 있는 9남매 자녀들이 모처럼 시골집을 찾아온 기회에 가족회의를 하여 두 마리 소를 기르기가 벅차기에 팔기를 결정하고 최 노인에게 간청하지만 절대 팔지 않겠다던 노인이 드디어 소를 우시장에 내놓은 날, 카메라는 소의 눈을 포착한다. 살집 좋은 비육우 사이로 마른 몸을 드러낸 소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가격 폭락에 소를 팔지 못하는 노인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가 죽음에 이를 즈음에 노인은 쇠코뚜레를 풀어 주면서 자유의 몸을 허락하는 장면은 너무도 감상적이고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워낭소리’가 우리에게 전하는 감동은 쓸모없다고 판정 받은 존재에 대한 가치와 삶을 살아가는 참 자세에 있다고 보여진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늙은 소는 간혹 걸음을 멈추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거리들을 모두 해낸다. 일생을 일하는것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노인은 발가락뼈가 이탈하고 발가락이 곪아 터져도 그 앙상한 다리로 노동을 계속해 나간다. 타인의 시야에서는 소와 노인은 무용지물로 취급되어 질 수도 있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고된 생활의 연속일찌라도 우직한 자세로 생활을 포기하지아니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워낭소리’는 삶과 죽음에 틈바꾸니에서 죽음을 거부하는 소와 노인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목숨을 연명해나가는 두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관람객들은 여기에서 ‘불굴’의 주제를 읽게 된다.
‘워낭소리’는 안일하고 나약한 삶, 노동의 가치를 빼앗긴 삶, 원칙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향한 근엄한 목소리이자, 죽음에 맞서 삶을 멈추지 않는 존재에게 바치는 속 깊은 헌사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농촌에 대하여 뒤돌아 보게 된다. 저 화면 속에서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비춰지는 농촌을 지켜주고 눈물겹도록 힘겨운 농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윤택해지고 보람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제도적 뒷받침을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모든 작업을 기계로 할 수 있는 날이 오지마을 산골까지 시행되기는 아직 요원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농업은 우리 모두가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미래 산업이 되어야한다.
진정 인간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산업은 우리 농업이다. 5천년 그렇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미래의 산업이 농업이기 때문이다. 우리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류는 행.불 행은 종국엔 무엇을 먹고 살것인가에 관심이 쏠릴 날이 온다고 한다.
◇ 감동의 다큐 '워낭소리'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던 이충렬 감독의 첫번째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로, 노년의 부부와 나이 든 소 사이의 교감을 담아낸 감독의 진중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워낭소리’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최우수 다큐멘터리에 주어지는 피프메세나상을 탔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독립영화의 축제 선댄스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한국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영화 감상 평 한마디
가족과 함께 인근 월드컵 주경기장 상영관에서 심야에 상영되는「워낭소리」를 관람하고 영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의 감명은 너무도 크고 아름다운 우리영화 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감상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본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하신 이 충열 감독님에게 감사함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