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을지로에 나갔었답니다.
살균소독기랑 아이들 식판을 좀 보려구요.
동대문운동장 역에 내렸는데 나가는 곳 팻말에 '오장동'이란 말이 보이더군요.
'오장동'이란 말을 보는순간 제 발길은 그 '오장동'으로 향했습니다.
하도 오랫만에 가보는 곳이라 좀 해매다가 찾았습니다.
오장동 '함흥냉면' 집을 말이지요.
여기를 왜 찾아갔었냐면 말이지요.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랍니다.
'김봉해 아저씨'...
오늘따라 얼굴까지 아주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아저씨랑 그 집에 처음 갔었답니다.
그리곤 10년이 훨씬 더 지난 어제 다시 갔었는데 변한게 없네요...
길게 가로로 뻗은 좁은 식탁...
둘이 마주 앉아서 냉면을 먹으려면 입구에서부터 갈라져서 들어가야 하는
그 익숙하지 않은 자리배치...
앉으면 바로 나오는 냉면...
육수는 색깔이 변했더군요. 곰국을 닮은 흰색에서 보리차를 닮은 고동색으로...^^
자리에 앉아서 항상 그랬듯이 회냉면을 시켰습니다.
(이날까지 다른 냉면은 거의 시켜본 일이 없답니다.)
먹고있자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아저씨와 제가 처음 만났건 병원 복도에서였습니다.
이미 병원생활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저는 병실에 있던 시간이 잠잘때
빼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주로 각 층의 간호사실에서 놀았지요.
10층서병동, 9층동병동, 8층동병동, 4층 동병동, 4층 중환자실.....
심지어는 외래 X선실에서도 놀았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
암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간호사실 앞에 앉아 있었는데 아저씨가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씩씩하게도 들어오시더군요.
그리고는 환의랑 침대시트를 받아서 가시는데 그걸 보고 제가 한마디 했지요.
'저 아저씨도 금방 다 빠지겠네...(머리카락^^)'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저씨가 저보다 한참 선배시더군요.
아저씨는 재발해서 다시 들어오신거였어요.
병명은 저랑 같은 '악성임파종'이셨지요.
어쩐지 시트를 새로 까는 폼이며 행동이 익숙해 보인다 했더니...
우린 그날로 바로 친구가 됐답니다.
그리곤 아저씨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가장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가족보다도 더...
아저씨는 굉장히 재밌는 분이셨지요.
장난도 엄청 심하셨고...
찍지도 않는 CT(그때는 CT촬영이 제일 좋고 비싼 검사였답니다.) 찍는다고
집에 거짓말 하고서는 병원비 타다 저랑 고기사먹고 놀러다니고 그랬답니다.
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면서 전국은 좀 무리였고 적어도 서울시내에
맛있다는 집은 골라서 찾아다녔습니다.
오장동에도 그때 아저씨하고 갔었지요...
가짜 병원비타러 아저씨 어머님되시는 분한테 같이 갔었는데 오장동 근처였거든요.
물론 집에서도 그 병원비가 다 뻥이란걸 알고 계셨겠지만...^^
둘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같이 어울려 다녔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잠시 퇴원해 있는 동안에도, 그리고 서로
입원 날짜가 다를 때는 자기가 입원한 것처럼 병원에서 같이 지냈었지요...
아저씨가 돌아가시던 날도 아저씨 집에 같이 있었는데
아마 그게 마지막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돌아가시게 하지 않았을겁니다...
아저씨는 그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목소리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제게
아저씨 방 책장에 꽂혀있는 책 한권을 말씀하시며 그 책속에 비상금 들어있으니까
가져가서 쓰라고..
그리고 다른 비상금 숨겨놓은 곳을 일일이 다 알려주셨었지요.
그 얘기들을 들으며 알았다고... 내가 다 챙길테니까 걱정말라고...
그러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군요.
결국 제가 기억하는 아저씨의 마지막 말씀은 '시욱아... 울지마...'였답니다.
그리고는 잠시후에 부모님과 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아가셨지요.
거기까지가 제가 아저씨와 같이 했던 마지막이었습니다.
기가막힌 일은 누구보다도 더 각별한 사이였는데(적어도 내가 믿기에는)
막상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심지어 운구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가족은 아니었으니까...
냉면을 먹는 그 길지 않은 시간동안 아저씨와의 몇 년의 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더군요.
그 웃음, 그 몸짓, 그 말투...
하늘에서도 그대로시겠지요...
다른 건 어울리지 않아서도 못하실테고...^^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사람이 많아서 바쁠 것 같아요.
다들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좀 수월할텐데...^^
음....
이제 그 '오장동 함흥냉면'집에는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어제는 맛이 별로였던것 같아요.
첫댓글 나도 기억나. 김봉해 아저씨.. 아프면서도 항상 얼굴에서 웃음과 장난기가 떠나지 않던 분. 네 글을 읽으니 새삼 지금 너의 건강이 감사해진다.
그러게... 아마 올림픽에 '장난'이란 종목있었으면 양궁보다 더 메달 많이 땄을 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