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덕수(德水)는 황해도 개풍군(開豊郡)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이다. 고구려 때는 덕물현(德勿縣) 또는 인물현(仁物縣)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덕수현(德水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강음(江陰)·정주(定州) 등과 함께 개성현으로 편입되었다. 1389년(공양왕 1)에 덕수현에 감무를 두었다. 1442년(세종 24)에는 해풍군(海豊郡)과 병합하여 풍덕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개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 개성군의 송도면이 개성부로 승격되면서 기존의 개성군 일부가 풍덕군과 통합되어 개풍군(開豊郡)으로 개편되었다.
성씨의 역사
덕수이씨(德水李氏)의 시조 이돈수(李敦守)는 고려 때 신호위중랑장(神虎衛中郞將)을 지냈으며, 1218년(고종 5) 거란이 고려에 침입했을 때 거란을 격파하였다고 《신유보(辛酉譜)》에 전한다. 그의 아들 이양준(李陽俊)은 조산대부(朝散大夫)로 흥위위보승장군(興威衛保勝將軍)을 역임하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어사대부(御史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에 추증되었다.
이돈수를 시조로 쓴 것은 《율곡가전세계(栗谷家傳世系)》에서 비롯되어 《택당수초종보(澤堂手草宗譜)》에 의해 확립되었다. 이전에는 《용재수초세계연보(容齋手草世系年譜)》나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에는 추밀공(樞密公) 이양준을 시조로 하고 있었다.
이양준의 아들 이소(李召)가 고려 고종 때 남성시(南省試)에 급제하여 통의대부(通議大夫)로 전법판서(典法判書)와 지삼사사(知三司事) 세자내직랑(世子內直郞) 등을 역임하였다.
그로부터 후손들은 중랑장(中郞將) 이돈수를 시조로 받들고 누대로 세거해온 덕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분적종 및 분파
감사공휘경용파(監司公諱景容派)
군수공휘양신파(郡守公諱良晨派)
문정공휘식파(文靖公諱植派)
문혜공휘안눌파(文惠公諱安訥派)
병사공휘권파(兵使公諱菤派)
부장공휘원순파(部長公諱元諄派)
북계공휘목파(北溪公諱穆派)
사의공휘원복파(司議公諱元福派)
사직공휘정철파(司直公諱廷喆派)
생원공휘의연파(生員公諱宜衍派)
승지공휘의영파(承旨公諱宜榮派)
어모공휘용파(禦侮公諱溶派)
옥산공휘우파(玉山公諱瑀派)
용재공휘행파(容齋公諱荇派)
우계공휘광파(雨溪公諱洸派)
율곡공휘이파(栗谷公諱珥派)
율리공휘요신파(栗里公諱曜臣派)
의정공휘경민파(議政公諱景閔派)
장령공휘인궤파(掌令公諱仁軌派)
적성공휘자하파(積城公諱自夏派)
정재공휘번파(定齋公諱璠派)
주부공휘찬파(主簿公諱𥡡派)
죽곡공휘선파(竹谷公諱璿派)
직장공휘원겸파(直長公諱元謙派)
집의공휘포파(執義公諱謩派)
참판공휘희신파(參判公諱羲臣派)
첨정공휘총파(僉正公諱叢派)
충무공휘순신파(忠武公諱舜臣派)
판서공휘경헌파(判書公諱景憲派)
하원군휘심파(河源君諱𦸂派)
학생공휘오파(學生公諱薁派)
함종공휘백복파(咸從公諱百福派)
해풍군휘함파(海豊君諱菡派)
현감공휘아파(縣監公諱莪派)
호군공휘명파(護軍公諱蓂派)
효정공휘경증파(孝貞公諱景曾派)
주요 세거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경기도 개풍군 일원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영덕리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읍 백암리(4백 여년)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완태리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용산리
황해도 신천군 일원
평안남도 용강군 금곡면 담부리
평안남도 순천군 밀전면 유상리
평안북도 귀성군 귀성면 하단동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덕수이씨는 15,711가구 총 50,48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