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사상, 독창성에 문제있다
조선을 설계한 사상가 정도전(鄭道傳·1342~1398)연구는 1935년 사회사학자 이상백의 논문 '삼봉인물고(三峯人物考)'가 처음이다. 이후 1950~60년대 신석호·이병도·이우성 등 역사학자들이 정도전의 유교·불교에 대한 관점 등을 연구했다. 본격 연구서로는 1973년 한영우 서울대 교수가 출간한 '정도전 사상의 연구'가 꼽힌다. 한 교수는 정도전을 조선의 설계자, 재상 중심 정치를 주창한 사상가로 파악했다. 한 교수의 연구는 조선 건국에 기여한 정도전의 위상을 처음 정립한 것으로 현재 학계의 통설(通說)을 제공한 연구로 평가된다.
역사학자들이 주도해 온 정도전 연구는 1990~2000년대 정치학자들이 당대 정치의 역동성에 주목하면서 활발한 연구가 이뤄졌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 최연식 연세대 교수, 김석근 아산정책연구원 아산서원 부원장, 박홍규 고려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영수 교수가 2006년 출간한 '건국의 정치'는 드라마 '정도전'의 토대가 된 연구서로 꼽힌다.
드라마 '정도전' 연출·제작을 총괄하는 KBS 김형일 CP(책임프로듀서)는 기획 단계에서 김 교수와 만나 드라마에 대해 자문했고, 주요 장면을 설정하는 데 참고 텍스트로 책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뼈대를 이룬 고려 말 우왕 시기의 폭정과 권신 이인임의 전횡 등은 김 교수의 책에 자세하다. 김 교수는 정도전은 조선의 정치적 건국자로서 백성을 정치의 목적으로 재발견하고 조선 정치제도의 모범을 제시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조선의 설계자라는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도전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조선 후기에 겨우 복권되지만 재상 중심 정치를 주창한 그의 정치체제 설계는 신권(臣權)이 강했던 조선 사회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를 유보하는 견해도 있다. 정재훈 경북대 교수는 정도전이 구상한 재상 중심 체제가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으로 제도화됐다는 점에서 기존 평가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면서도 조선 초기 재상 중심인 의정부서사제와 국왕 중심의 육조직계제가 끊임없이 갈등한 점을 고려할 때 이를 재검토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정도전 사상의 독창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정도전이 조선의 정치체제 구상을 밝힌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문감(經濟文鑑)' 같은 저술은 '주례정의(周禮訂義)' '산당고색(山堂考索)' '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 등 중국의 주자학과 사공학(事功學·정치적 실제 효과를 중시하는 학문) 계열의 저작을 상당 부분 그대로 옮겨 썼다는 것이다. 도현철 연세대 교수는 정도전은 인용 전거를 밝히지 않고 자신의 의견처럼 기술하기도 했는데 이는 당대의 기준으로 볼 때도 학문적 엄밀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