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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원문보기 글쓴이: Uof M
세계일보 | 입력 2008.07.03 10:56
[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3>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의 글을 읽으면 자주 눈물이 난다. 순간이나마 착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가슴은 벅차다.
솔직하게 내면을 드러내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글이 갖는 힘이다.
불편한 몸이지만 스스로 그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유쾌하게 살아 온 그의 태도가 주는 힘이기도 하다.
장 교수는 어렵고 딱딱한 영미시를 신문과 책을 통해 쉽게 풀이하고 있다.
영미시의 높은 턱을 낮추며 대중과 소통에 나서자 독자들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영문학자로 꼽길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가 20년 전 집필한 영어 교과서로 공부한 이들이 성인 독자가 돼 그를 찾기도 한다.
이번 여름에 신간을 내놓을 장 교수를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며칠 전에 퇴원한 사람 같지 않다.
그는 수년 전 항암치료를 받고 한동안 잘 생활하다가 최근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때문에 입원했다.
올해 54세이지만 20대 초반의 아가씨처럼 생기발랄하다. 책과 글로는 수십번 만났지만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다.
기자라는 사실이 고맙다. 이렇게 맑은 감성을 지닌 이를 쉽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연구실 책상에 '야근 금지' 문구가 적힌 공예품이 눈에 띈다. 2년 전 졸업생이 스승의 건강을 염려해 선물했다고 한다.
기억하는 생의 첫 순간부터 중증 장애인이었던 장 교수는 부모의 등에 업혀 통학하고, 어머니는 화장실에 가는 딸을 위해 2시간마다 학교를 들락거려야 했을 만큼 힘든 과정을 거쳤다.
지금까지 15번이나 수술을 받은 스승의 건강을 생각하는 제자의 마음이 고맙다.
"저는 밤중에 일하는 '올빼미'예요. 새벽 4시까지 일을 하곤 합니다. 수업은 오후 2시가 넘어야 시작해요."
주변의 걱정보다는 건강하지만 듣기 싫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 장영희더러 '치열하게 살아왔다'거나 '억척스럽다'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즐겁게 일할 뿐이에요."
즐겁게 사는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다. 부친인 장왕록 전 한림대 명예교수는 '결국 착한 것이 이긴다'는 정도의 뜻을 담은 '선래보'(善來寶)를 가훈으로 삼았다.
국내 영문학의 거목으로 서울대에서 정년을 마치고 한림대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아버지의 직업과 철학을 빼닮은 원칙주의자다. '장영희의 영미 시 산책 생일'(비채)에 그림을 그린 화가 김점선은 언젠가 "장영희는 원칙주의자이지만, 김점선은 일탈주의자며 파괴주의자"라고 했다.
원칙을 지켜 온 삶은 그에게는 '슬픈 일'이기도 하다.
"김점선씨가 '자유로운 영혼'을 말하고 끼를 발산하는 게 부러웠어요. 저는 몸이 불편해 주류를 벗어난 사람이기에 교육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 때 하루도 결석하지 않은 것은 자랑이기도 하지만 아픈 추억도 된다. 원칙은 글을 쓸 때도 이어진다. 교훈을 주려 하지 않고 체면을 차리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으로 보이거나 노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계산 없이 '독자에 대한 믿음'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이나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대로 타인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세상은 싸움터로만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에게 그 연민은 문학적 힘을 통해 표현된다.
"문학은 삶의 용기와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 줍니다. 전 기동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문학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 인제 보니 제가 문학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솔직함과 문학적 힘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는 평가에 덧붙여 장 교수는 자신의 강점을 '수다'와 '산문적인 글쓰기'라고 여긴다.
"저는 시 전문가가 아니에요. 그저 한 사람의 독자로서 글을 해석합니다."
전공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을 두는 장 교수의 태도는 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신수정 서울대 음대 학장, 화가 김점선, 탤런트 윤여정, 이해인 수녀, 시인 정호승, 소설가 이청준 등은 그와 편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착한' 장 교수이지만 최근 괘씸하게 여기는 일을 겪었다. 1986년부터 두산동아에서 영어 교과서를 집필했지만 책임자가 바뀌면서 연락도 못 받고 집필진에서 제외된 일이다.
"정상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20년 넘게 일해 온 사람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같아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게 어색한 듯, 이내 가족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꾼다.
"가족 특히, 자매를 가진 것은 큰 축복입니다. 나는 결혼했으면 아이는 10명을 낳았을지도 몰라요.
박 기자님도 아이 셋은 더 낳으세요."
장 교수는 어머니와 여동생 부부, 조카들과 함께 학교 근처에서 같이 산다.
어느 시인은 "살아 온 기억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했다. 이 시어가 그처럼 잘 들어맞는 사람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름에 내놓을 신간의 제목 후보들이 그의 삶과 생각을 보여준다. 후보들은 이렇다.
'살아 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영희야, 뼈만 추리면 산단다' '나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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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몇 년 전인가 십대들이 즐겨 부르던 유행가 중에 ‘ 머피의 법칙’ 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사가 대충 이랬다.
“화장실이 있으면 휴지가 없고, 휴지가 있으면 화장실이 없고, 미팅에 가도 하필이면 제일 맘에 안 드는 애랑 파트너가 되고,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도 하필이면 그날이 정기 휴일이고” 등등 “무슨 일이든 어차피 잘못되게 마련이다” 라는 ‘
머피의 법칙’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하필이면’이란 말은 분명히 ‘왜 나만? ’이라는 의문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남의 인생은 별로 큰 노력 없어도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갈 뿐더러 가끔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것 같은데,
왜‘하필이면’ 내 인생만은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걸핏하면 일이 꼬이고, 그래서 공짜 호박은커녕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겨 먹기 일쑤냐는 것이다.
그런데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은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거다. 순전히 운명적인 불공평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벤츠 타고 탄탄 대로를 가는데, 나는 펑크난 딸딸이 고물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도‘머피의 법칙’을 생각할 때가 많다. 한 예로 내 열쇠 고리에는 겉으로는 구별이 안 되는 열쇠가 두 개 달려 있는데, 하나는 연구실, 또 하나는 과 사무실 열쇠이다.
열쇠에 유성 펜으로 방 번호를 표시해 놓으면 그만이지만, 그러기도 귀찮고 또 그냥 재미도 있고 해서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둘 중 아무거나 꽂아 본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수학적으로 따져 볼 때 확률은 분명히 반반인데, ‘ 하필이면 ’ 연구실 열쇠가 아니라 거의 과 사무실 열쇠가 먼저 손에 잡혀 두 번씩 열쇠를 돌려야 하는 일이 열이면 아홉이다.
그뿐인가, ‘하필이면’ 큰 맘 먹고 세차한 날은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고, 무엇을 사기 위해서 줄을 서면 바로 내 앞에서 매진되고, 더욱이 얼마 전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내 어깨에 새똥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 한동안 서서 나의 ‘하필이면’의 운명에 경악했다. 1천만 서울 인구 중에 새똥 맞아 본 사람은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텐데 ‘하필이면’ 그게 나라니!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하필이면’도 있다. 남들은 멀쩡히 잘도 걸어 다니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목발에 의지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펜만 잡으면 멋진 글이 술술 잘도 나오는데 왜 하필이면 나만
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도 머리를 벽에 박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다른 재주가 있느냐 하면 노래, 그림, 손재주 그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재능을 골고루 나눠주신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하필이면’ 나만 깜빡하신 듯하다.
언젠가 치과에서 본 여성지에는 모 배우가 화장품 광고 출연료로 3억 원을 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3억이면 내가 목이 쉬어라 가르치고 밤 새워 페이퍼 읽으며 10년쯤 일해야 버는 액수인데,
여배우는 그 돈을 하루만에 벌었다는 것이다. 그건 재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타고난 생김새 때문인데,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한 일이다.
나는 내가 잘빠진 육체는 가지지 못했어도 그런 대로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내 아름다운 영혼에는 3억원은커녕 3백원도 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차피 둘 다 못 가지고 태어날 바에야 아름다운 몸뚱이를 갖고 태어날 일이지 왜 ‘하필이면’ 3백원도 못받는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태어났는가 말이다.
그래서 ‘ 하필이면’ 이라는 말은 내게 한심하고 슬픈 말이다.
그런데 어제 저녁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조카 아름이가 내게 던진 ‘하필이면’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길거리에서 귀여운 팬더 곰 인형을 하나 사서 아름이에게 갖다 주자 아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이모,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는 것이었다.
다른 형제나 사촌들도 많고, 암만 생각해도 특별히 자기가 받을 자격도 없는 듯한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는 아름이 나름대로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외국에서 살다 와 우리말이 아직 서투른 아름이가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부적합하게 쓴 예였지만, 아름이 처럼 ‘하필이면’ 을 좋은 상황에 갖다 붙이자 나의 ‘하필이면’ 운명도 갑자기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누리는 많은 행복이 참으로 가당찮고 놀라운 것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훌륭한 부모님 밑에 태어나 좋은 형제들과 인연 맺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무슨 권리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가.
또 나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내가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게다가 실수 투성이 안하무인인데다가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장영희를 ‘하필이면’ 왜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사랑해 주는가 ( 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양순하고 웃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 때문이라는데, 그렇다면 잘빠진 육체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타고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하필이면’ 의 이중적 의미를 생각하니 내가 지고 가는 인생의 짐이 남의 짐보다 무겁다고 아우성쳤던 좁은 소견이 새삼 부끄럽다.
창문을 여니, 우리 학생들이랑 일산 호수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 오늘, ‘하필이면’ 날씨가 유난히 청명하고 따뜻하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 / 영문학
'하필이면' <내생애 단 한번 P.11-에 수록>
보통이 최고다.
" 우리 집에는 딱히 '가훈'이라고 정해 놓은 것이 없었지만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 오라면
그래도 항상 아버지 서재에 붙어 있는
'선내보(善內寶); 착한 것 속에 보물이 있다.'라는
말을 적어 가곤 했다.
부모님의 교육관은
우리를 '착하고 건강하고, 보통인 사람들로' 키우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우리 모두 착하고 건강하고 보통으로
잘 자랐다.
장영희(2001), 내생애 단 한번, 샘터
끝까지 해 보라 See It Through
- 에드거 A. 게스트
네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주보고 당당하게 맞서라 (…)
실패할 수 있지만, 승리할 수도 있다.
한번 끝까지 해 보라! (…)
네가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을 때
희망조차 소용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
다른 이들도 모두 겪은 일일 뿐임을 기억하라.
실패한다면, 넘어지면서도 싸워라.
무슨 일을 해도 포기하지 마라;
마지막까지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쳐들고
한번 끝까지 해 보라!
장영희< 영미시 산책> 에서
SBS | 입력 2009.05.10 07:27
첫댓글 매일의 삶이 감사의 뜻에서 "하필이면"이 되도록 오늘부터 노력해 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