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사변 전후, 아무리 가난해도 설날과 추석이 오면 반드시 이발과 목욕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이발소 풍경이 그림처럼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말띠 설날, 아침입니다.
[꽁트] 어릴적 동네 이발소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가지 손질 가운데 이발이 있다.
그래서 이발소에 얽힌 토막 이야기는 누구나 공감하는 대화거리다.
그중에 초등학교 다닐때 까지 동네 이발소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의 한부분이다.
그야말로 꾀죄죄한 방구석에 세면대 수채에서 나는 비린내는 후각마저 들쑤신다.
의자가 낮아 나무판을 하나 걸치고 그 위에 앉으면 사흘에 핏죽도 못먹은 듯
노리끼리한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고개를 들면 노을에 기도하는 농부 부부, 밀레의 만종 그림이 천정 가까이 생각보다
높이 걸려있다. 그 옆에는 '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라는 금언이 무심코
내려다 보고있다. 곧 눈을 감고 머리깎을 채비를 한다.
이발사 아저씨는 바리캉으로 완전 삭발을 끝내고 솔로 비누거품을
얼굴 앞뒤로 능숙하게 칠한다. 그 부드러운 감촉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면도날을 가죽벨트에 썩썩 문질러 앞뒤 경계선까지 분명하게 밀어준다.
그 시절은 '동전형 머리버짐'이 유행처럼 많아 보라 잉크빛 소독약을 발라 준다.
귀후비기는 그 순간, 손톱깍기는 반나절, 목욕은 하루종일 기분이 상쾌하다.
그러나 이발은 싫었다. 모습이 예전같지 않고 썰렁하다. 며칠이 지날때 까지
영 어색하다. 머리감을 때 특히 안좋다. 귀에 물이 들어 가 멍멍하기도 하고
코구멍을 막아 숨이 막혀 죽을것만 같은 어릴적 공포감도 깔려있다.
요즘 가는 이발소는 Blue Club 보다 가까운 Nice Guy 로 간다.
이름들은 호화 찬란하지만 면도없이 머리털만 잘라주는 저렴형 이발소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곳이라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5년 단골이 되다보니
이발사 아가씨들 인사가 요란하다. 컷하는데 10분이면 족하다.
세발도 집에 와서 하는 편이다. 그것도 두달에 한번 정도다.
옛날 그 옛날 누추한 동네 이발소, 거기에는 우리들의 따뜻한 정이 베여 있었다.
겨울이면 메케한 조개탄 냄새도 그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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