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이 출발하기로 한 광교산, 미금역 7번 출구에서는 새벽에 내리던 빗방울이 싸리눈으로 바뀌어 내리고 있습니다. 참 다행이죠? 겨울산행갈 때 비 내리는 것보다 눈이 내리면 그나마 나으니까요. 산행참여인원 부족으로 청양 칠갑산을 대신해서 광교산을 택한 것인데요. 아쉽긴하네요.
그래도 나무 위에 눈이 쌓여서 제법 눈산행하는 맛이 납니다. 9시 30분쯤 아파트 뒤쪽에 있는 등산로에 이르러 준비체조를 하는데 일요일이라고 마음껏 늦잠을 자는 주민들이 깰까봐 구령소리 내는데 조심스럽더라구요. 눈 쌓인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산행입구가 나왔습니다. 이젠 광교산 시루봉까지 일자로 쭉 걸어가니까 알바할 일도 없죠.
꿩(칠갑산)대신 선택한 닭이었기에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날씨도 도와주지 않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9시부터 빗방울이 눈송이로 바뀌어서 제대로된 겨울분위기가 났답니다. 평탄한 산길에는 야자매트까지 깔려있어 동네 뒷산 산책하듯 편했어요. 눈 밟는 소리도 뽀드득 들려오고 산새들도 여기저기서 지저귑니다.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있네요. 반가워!딱따구리야.
정자에 도착해 쉬면서 두부에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을 때 눈이 잘 뭉쳐지길래 후다닥 큰 눈사람을 만들어봅니다.
이 동네 주민이 깨끗이 쓸어놓은 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오래오래 녹지 않고 이곳에 남아 우리 뒤에 광교산에 오를 사람들을 맞아주면 좋겠네요.
발바닥에 눈이 달라붙어서 마치 하이힐을 신은 것처럼 등산화가 저절로 키높이 신발이 돼버렸어요. 지난 달 태백산처럼 손발이 꽁꽁 얼지도 않고 적당한 날씨라 산행이 즐겁습니다.
종손고개 쉼터와 성지바위 쉼터에 도착하니 솔잎에도 도토리나무 잎에도 상고대가 아름답게 붙었습니다.
소백산이나 태백산을 가야 운 좋을 때 만날 수 있었던 상고대 아닙니까? 뿌연 산안개가 낀 산길은 마치 동화속 세상을 걷고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산 안개속에 가려진 풍경들은 공룡능성도 되고 천불동계곡도 됐다가 지리산으로 변화무쌍한 요술을 부리고 있습니다.
산으로 고문님이 앞장서고 저는 맨 끝에 서서 상고대를 찍느라 정신이 없네요. 선두대장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모처럼 저도 사진찍기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땅에 떨어지지 않고 간신히 가지에 붙은 쪼글쪼글 단풍잎에도 하얀 물감이 칠해져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왕국이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순록 이름이 스벤~이죠.
암튼 그 순록의 머리에 난 뿔처럼 생긴 상고대의 모습은 예술작품 그 자체라고봐도 무방할 정도로 발길을 멈추게 만들더군요.
바람의언덕 쉼터는 시루봉에 오르기 전 마지막 계단이 있는 곳이죠. 우린 먹을 것을 남김없이 없애기로 했습니다. 남은 막걸리, 과자, 커피, 컵라면에 총각무김치까지 싹 먹어치웠네요.
아우성님이 셀터를 비상용으로 가져왔는데 한번도 안 펴게 됐네요. 저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지만 말 그대로 비상용이니까요.
물인줄 알고 보드카를 벌컥 마신 늘푸른 회장님의 모습,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ㅋㅋㅋ
총무님은 비올 때 입는 우비를 입었는데 가볍고 따뜻해서 산행내내 벗지 않으시네요. 겨울에는 보온효과를 갖춘 최고아이템으로 추천!! 핫팩 2개보다 더 따뜻하게 체온을 지켜줄겁니다.
산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앞사람들만 겨우 보일 정도인 구간도 지납니다. 나무데크 곳곳에 서리가 붙어있어 바닥도 조심해서 걸어야해요. 진달래나무에는 꽃눈이 맺혀 있었는데 온통 상고대로 꽁꽁 둘러싸여 있습니다.
광교산 시루봉으로 가는 마지막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 끝 돌무더기에 있는 장승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더군요.
올라갈수록 상고대는 더욱 멋지군요.
광교산 최고봉에 도착했습니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합쳐져 정상에는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한여름엔 주변 풍경을 배경 삼아 인증샷을 찍지만 오늘은 산안개 때문에 반경 10미터 정도만 잘 보인답니다.
용인시와 수원시에 걸쳐있는 광교산, 우린 의왕시에 속한 백운산까지 찍고 하산할 겁니다. 오싹한 바람이 불어와 아이젠이 필요해지는 내리막길입니다. 낙엽도 미끄럽고 돌멩이에도 서리가 내려 위험할 것 같았어요.
아이젠을 착용하고 백운산까지 걷는 동안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백운산 정상에 오니 또 상고대가 보여요.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찍어 휴대폰 배터리는 거의 사라졌네요. 우리가 예상했던 산행시간보다 1시간 정도 더 걸린 이유?
아마도 상고대의 아름다움에 반해 걸음을 중간중간 멈춘 것도 있지만 높지 않은 근교산행이라고 만만히 여기고 초반에 너무 여유를 부렸던게 가장 큰 원인같아요.
내려오니 관음사가 나옵니다. 밖이 너무 추워서 미금역으로 가는 마을버스에 미리 올라가서 몸을 녹였습니다. 겨울의 밤은 이른 시각에 찾아와 오래도록 머물죠. 우리가 미금역 흑돼지구이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나오니 주변이 온통 까맣게 변했어요.
잊지못할 광교산의 상고대~~ 비록 9명밖에 참여하지 않은 미니멈 산행이었지만 그 감동만큼은 맥시멈 산행이라 자신합니다. 2월 덕유산에서 뵙겠습니다.
♤1월말에는 매송님의 아드님, 2월말에는 단풍리님의 따님이 결혼식을 합니다. 예비 시아버지와 예비 장인어른이 되신 것 축하드려요.
♤ 3월 정기산행지인 무등산 국립공원은 2월 15일부터 4월말까지 입산통제기간입니다. 그래서 당초 4월이었던 시산제는 3월 정기산행일에 지냅니다.
첫댓글 오늘은 날씨가 포근하여
눈꽃과 상고대가 상상이 잘 안되는데
산행기 보면서 그 날의 감동을 되새겨 봅니다. ^&^
산속을 걷던 그 시간. 참 행복했어요.
저도 산행기와 사진을 보니 그날의 감동이 밀려오네요^^
맞아요. 정말 감동이었죠. 덕유산도 그럴거라 믿습니다.
멋진 산행이었어요~
올 겨울 눈 산행을 한번도 못했네요 함께 못해서 너무 아쉽고 부럽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