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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엔 자동차는 아무나 살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자동차 자체가 고급이긴 했지만, 굳이 대형차를 찾자면, 67년에 신진에서 나온 크라운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진은 도요타 최초의 자체개발이자 현재도 큰 인기를 누리는 대형차인 크라운의 3세대를 사와 조립해서 판매하였습니다.
소형차만 보던 사람들에겐 큰 화제거리가 되었으며, 집값의 4배가 넘는 310만원의 가격은 당시 국회위원정도 탈정도로 정말 최고의 부의 상징이였습니다.
크라운은 '남'의 차임에 불구하고, 생각보다 자주 모델변경을 하였는데, 신생회사들의 도전을 받으면서, 계속 도요타에게 헌차말고 새차를 달라고 때를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좌우간 2번째 디자인변경된 크라운의 사진은 안타깝게도 찾을수 없었지만 다행히 3번째 변경된 크라운의 사진은 구할수 있었습니다. 3번째 부분변경 모델은 디자인이 깔끔해졌습니다. 신진에선 새차이기 때문에 '뉴'크라운으로 판매되었습니다.
신진의 마지막 크라운인 4세대모델입니다.
뉴크라운S라는 명칭으로 71년에 생산되었으며, 당시 너무 미래적인 디자인으로 일본에서도 최악의 판매를 달성했던 모델입니다. 지나친건 부족한것 보다 못한가 봅니다.
이후 도요타가 중국진출을 선언하면서, 관계가 끊기고 72년에 크라운도 단종합니다. 기술력 없이 다른 메이커의 차량에 의존하는 회사의 참담한 모습을 여지 없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신진은 GM과 손을 잡습니다.
그당시 신생에 가까웠던 현대는 68년에 포드와 제휴하여 20m을 생산하게 됩니다. 국내 최초로 V6기통 2.0엔진을 장착하여 106마력을 내고 최고시속이 164km/h에 다달으는 고성능 고급차였습니다.
호화스러운 실내와 4단변속기, 2단조절와이퍼, 2중브레이크, 배럭제동장치, 퓨즈박스가 장착되어 있었으며, 라이트는 상하좌우 조절이 가능했습니다.
크라운이 나온지 1년만에 포드에서도 인기차종인 20m을 가져와 164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그래봤자 항상 남이야기죠.)에 판매하였지만, 당시 고위계층은 대부분 친일파(정말 친절한 대한민국)였기때문에, 일본차에 대한 악감정이 없을 뿐더러, 신진도 불구경만 하지 않고 그에 맞서 뉴크라운S를 내놓았기 때문에 현대의 무한도전만으로는 크라운을 꺽을순 없었습니다. 이후 계약기간이 지나 크라운단종 1년뒤엔 73년에 단종되었습니다.
(사진은 오펠 레코드 디젤)
이당시엔 타사들은 오일파동에다 뭐다 하며 은근슬쩍 공백기간을 갖는 사이 크라운 팔면서 대형차에 자존심이 강했던 신진은 도요타와의 결별이후 GM과 손을 잡고 GM코리아로 명칭이 바뀝니다. 아무리 망하는 일이 있어도 메이커명이 마치 무슨 수입업체처럼 대놓고 바뀌는 경우는 없는데, 이때는 신진이 대형차의 자존심만은 강했어도, 회사에 대한 자존심은 쓰레기통에 버렸나봅니다. 딴이야기로 샜네요. 어쨌든 이때부터 크라운을 바로 대타하여 레코드1900가 생산됩니다.
레코드1900는 오펠에서 가져온 차로 벤츠를 닮은 모습으로 인기를 누리던 모델입니다. 엔진은 4기통 2.0 수냉식 엔진으로 120마력을 내고 161km/h의 최고속력을 낼수 있어, 안그래도 경쟁력이 부족했던 현대 포드 20m을 마저 견재하기 충분했습니다.
75년에는 정말 다행히 새한자동차로 바뀌면서 개선된 레코드로얄을 생산합니다. 이후 85년까지 장수합니다.
현대는 이명박(퍽! ->시장)이 다시 대형차를 요구함에 따라 78년 독일포드와 제휴하여, 그라나다를 생산합니다.
20m처럼 V6기통 2.0 수냉식 오버헤드엔진을 사용하여 최고 출력은 5700알피엠에서 102마력, 최대토크는 3500알피엠에서 16.9 최고시속 165km/h을 내어 여전한 고성능(지금은?)을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또한 4단 수동, 오토쵸크, 2벤추리 수직형 기화기, 흡기온도자동조절장치, 모두 코일스프링과 복동식 쇽업저버로 이루워진 4륜독립현가장치, 인체공학형 시트, 랙 앤 피니언 조향장치, 이중유압제동장치를 젹용하여 당시엔 최첨단 제품을 대거 적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포드의 힘을 빌려 주행성능이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80년엔 4기통엔진을 장착한 뉴그라나다도 나왔습니다. 오바해서 말하지면 현재의 TG그랜져에 Q240모델 나온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현대에선 만들기 어려운 포드산 첨단장비 덕분에 국산화율이 매우 낮아 정부의 압박을 받을수 밖에 없었고, 그에 비례하여 유가는 날로 상승하였기에 단종의 유혹이 있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쟁차들의 도전에 인기 한번 제대로 누리지못하고 85년에 단종되었습니다.
79년엔 신생아 기아도 대형차 시장에 뛰어듭니다. 피아트를 수입해와서 이미지를 구축했던 기아는 이번엔 푸조 604를 수입해 와서 판매를 시작합니다. (유럽산 좋은 차만 가져오는 기아는 쎈스쟁이)
디자인은 피닌파리나의 작품답게 신선했으며, 2.6엔진에서 나오는 140마력, 최고 시속 182km/h의 출력은 당시 차중에서 가장 최대 배기량일 뿐만 아니라, 포드도 뭐시기고 비교도 안되는 최고성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동안 미국차와 일본차에만 맛보던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차의 진맛을 보여주므로써, 상당한 반응만큼은 얻었지만. 그동안 대형차를 생산하지 않았던 기아에게 6/15조치로 대형차생산이 금지되면서 81년 12월 아쉽게 단종되는 불운의 차종입니다.
80년엔 새한에서 대우로 바꾸고 레코드 스리즈에 이어 홀덴의 베스트셀러 코모도어를 가져와 로얄스리즈가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대형차는 로얄살롱이였으니 로얄살롱만 잘 발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헛기름괴물 레코드론 경쟁사를 상대하기엔 부족함이 컸었기에 자칫 잘못했다간 현대에게 남은 대형차의 자존심마저 빼길 위협을 느낀 대우는 로얄살롱을 생산함으로써 그라나다를 몰아내고, 대형차 방어전에 성공합니다.
엔진은 2.0 4기통엔진으로 119마력, 18토크, 178km/h를 내어, 경쟁사의 그라나다보다 더 강력했고, 최초로 3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하여, 운전의 편의성도 극대화시켰습니다.
또한 배기 정화장치, 2중매니폴드로 환경기준을 만족시켰으며, 에어클리너에는 자동온도조절장치가 장착되었으며, 현가장치엔 전륜맥퍼슨방식의 독립현가장치가 달렸습니다.
현대도 국내 최초 포니의 독자개발과 그라나다의 실패 이후 거의 100%수입차에 의존했다가 않좋은 꼴을 구경하고 직접 맛본 현대는, 대형차에 대해 고심하던 중 당시 손을 잡았던 미쯔비씨에게서 낡고 낡은 데보네어 대신할 2세대 데보네어 개발추진소식을 듣고 L카프로젝트라는 공동개발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86년 그랜져가 탄생하게 됩니다. 비록 일본에서는 강력한 경쟁차때문에 별 인기를 못잡았지만, 비교적 경쟁상대가 만만했던 현대는 최초로 후드탑 엠플럼을 장착하는 등 고급스럽고 위풍당당한 모습덕분에 정말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다만 너무 각진 디자인때문에 '각그랜저'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조폭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생기지는 해프닝도 생깁니다.
좌우간 그랜저의 특징은 지금봐도 고급차라고 느낄정도의 디자인에도 있었지만, 그에 비례할 수 있는 탄탄한 옵션과 기술력있는 엔진에도 있었습니다. 초기에 생산된 2.0엔진은 최초로 전자연료분사식이였고, 최대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16.2토크, 최대시속 162km/h에 이르는 엔진이였습니다.
그랜저는 부드러운 승차감도 제공해줬지만, 주행안정성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대형차 최초로 앞바퀴굴림을 선택하여, 눈길등에서 주행안정성을 제공해줬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실내디자인도 당시 파격에 가까웠습니다. 약간의 우드로 마무리하고, 헤드램프는 와이퍼방식이 아닌 워셔방식세척장치가 달려있었고, 크루즈컨트롤, 핸들리모콘과 파워시트를 장착하는 등 상당한 옵션장비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쓸때없다고 생각하면서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대우도 반격에 들어갔습니다. 87년 대우는 로얄살롱을 자체적으로 페이스리프트하여 출시하였습니다. 파워원도우, 파워스티어링, 자동파워안테나, 중앙자동잠금장치, 뒷열선유리, 트립컴퓨터가 내장된 LCD계기판으로 첨단장비를 자랑했습니다.
엔진도 똑똑한 전자 EFI식으로 바꿔서 112마력을 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구 이걸로 대충 얼렁뚱땅 고급차의 자존심을 되찾기엔 2%부족 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대우는 로얄살롱을 살짝꾸며 수퍼살롱을 출시하여, 그랜저에 대항하였습니다. 수퍼살롱에는 붉은색 가죽시트, 후석에어밴트등을 장착하여 고급화를 꾀한 모습이 엿보입니다. 수퍼살롱은 이름과 달리 로얄살롱에서 살짝 꾸몄기때문에, 쏘나타 F24와 F24S와 약간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무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상품성의 그랜저하고 승부에서 이기는건 이젠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대우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89년에 이번엔 수퍼살롱을 개조하여 임페리얼을 출시합니다. 슬슬 우려먹는 기분도 듭니다. 승차감도 미국스러운 차에 이젠 아주 내놓고 C필러에 랜도우탑을 장착하여 완전 미국차스럽게 꾸민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크롬등 많은 지장으로 차가 휠씬 고급스러워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임페리얼에겐 국내최초로 직렬6기통 3000cc엔진을 장착하여 고급차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랜져와의 판매는 몰라도 이미지는 승리하였습니다. 또한 자동변속기를 기본적용하고, 보쉬제 후륜 ABS를 갖추는 등, 고급차로써 옵션을 더욱 충실히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대빵 엔진에 걸맞지 않게 오버히트가 자주 일어나는 등 별로 품질이 좋지 않았고, 3천만원이라는 비싼가격은 이 차를 구입하기엔 다소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등장한 기아 머큐리세이블과 그랜저의 또다시 반격으로 대우의 고급차에 대한 자존심과 입지는 어느순간 빼앗기게 되고 이름만 바꿔서 다른차처럼 하면서 우려먹기에 대한 교훈도 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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