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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 (신주,위패, 지방,축문쓰기)
근세에 와서는 유교사상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표시로 변하게 되어 가장마다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사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공민왕 이년에 포은 정몽주 선생이 제정한 제례규정에는
대부 이상의 관원은 삼대 봉사(三代奉祀)로 하고
육품이하의 신문을 가진 사람은 이대봉사이고,
칠품이하의 하급관원과 서민들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후 조선시대 경국대전 예전편에 기록된 제례의 봉사대상을 보면
사대부이상은 사대봉사,
육품이상은 삼대봉사,
칠품이하는 이대봉사
일반서인(一般庶人)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칠품 이상의 관원은 불과 20% 미만으로 일반국민의 80% 상당의 인원이 칠품이하의 관원이나 서인이었기 때문에 전국민 중 대부분이 부모제사만 지낸 셈이다.
그러하던 것이 한말 갑오경장(고종 21년)이후로 구시대의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반상의 구별없이 사대부의 예절을 따라 사대봉사를 해왔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1969년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되었는데 기제는 조부모까지만 봉사한다고 하였는데, 1973년 가정의례준칙을 전면개편하여 6월 1일부터 시행되다가 1999년 규제개혁철폐에 의하여 가정의례준칙은 폐지되고,
1999년에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새로 제정하였는데 제례는 기제 및 명절차례로 구분되고 봉사는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 되었다.
◆신주.위패.지방 |
★ 지방 쓰는 방법 ☆ 신위(神位)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되 사진이 없으면 지방(紙榜)으로 대신합니다. ☆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쓰며 그 크기는 길이 22㎝폭 6㎝ 정도가 적당합니다. ★ 지방(紙榜) ☆ 신위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고 사진이 없으면 지방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진묵으로 정성 들여 쓰며 길이는 22Cm, 넓이는 6Cm정도로 한다. ☆ 지방의 내용은 생전에 관직이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쓰고, 관직을 지냈으면 그 관직 그대로 씁니다. ☆ 그 부인의 경우는 유인(孺人)대신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씁니다. ☆ 남자 지방의 고(考)는 부(父)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고 하고 사후에는 考라고 합니다. ☆ 비(女比)는 모(母)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母라고 하며 사후에는 비라고 합니다. ☆ 女子의 경우에는 孺人 다음에 본관 성씨를 쓰며 아내의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주제가 됩니다. ☆ 자식의 경우에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주제가 됩니다. ☆ 재취로 인하여 삼위 지방일 경우는 왼쪽에 男子, 중간에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씁니다. ★ 지방 쓸때 알아 둘 점 ☆ 시제지방을 쓸 때는 몸을 청결하게 합니다. ☆ 고(考)는 부(父)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 하나 사후에는 考라합니다. ☆ 비(女比)는 모와 같아 생전에는 母라 하고 사후에는 비(女比)라 합니다. ☆ 남자의 지방을 쓸 때 벼슬이 없으면 學生으로 씁니다. ☆ 벼슬이 양천부원군(陽川府院郡)이라면 그 관직을 그대로 씁니다. ☆ 따라서 그 배위(配位아내)도 유인(孺人)대신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씁니다. ☆ 여자의 경우 유인(孺人) 다음에는 본관과 성씨를 씁니다. ☆ 아내의 제사인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祭主)가 됩니다. ☆ 자식의 경우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주가 됩니다. ☆ 만약 재취(再娶)로 인하여 지방이 삼위(三位)일 경우는 왼쪽에 남자의 지방을 약간 높게 붙입니다. ☆ 중간에 본비(本쯼)의 지방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입니다. ★ 지방쓰기 참고 ☆ 모관부군(某官府君)은 벼슬이 있을 경우 해당 관직을 그대로 씁니다. ☆ 벼슬이 없으면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 씁니다. ☆ 여자의 경우 모봉(某封)은 남편의 직품에 따라 씁니다. ☆ 一品은 정경부인(貞敬夫人), 二品은 정부인(貞夫人), 3品은 숙부인(淑夫人)으로 씁니다. ☆ 四品은 숙인(淑人), 五·六品은 공인(恭人), 벼슬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씁니다. ☆ 여자의 모관모씨(某貫某氏)는 본관 성씨를 씁니다. ☆ 한글의 경우도 한자 지방에 준하여 씁니다. ★ 지방에 대한 解 說 ☆ 顯: 일반적으로 (나타날 현)이라 읽지만 지방[紙榜]에서 顯자는 높을 현 으로 읽어야 합니다. ☆ [書經]에서 天有顯道라 했습니다. ☆ 亡: 처(妻)는 顯子를 쓰지 않고 망실(亡室)이라 씁니다. ☆ 동생(同生)은 顯자를 고쳐 망(亡)자로 하고 府君을 쓰지 않습니다. ☆ 學生을 처사(處士)로 쓰는 가문도 있습니다. ☆ 孺人: 생전에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 아내의 신주(神主)나 명정(銘禎)에 쓰는 존칭을 말합니다. 辟 물리칠 벽 이 글자는 임금이라는 뜻도 있고 허물, 벽, 물러나다, 떠나다 등의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譬(비유할 비)나 避(피할 피)와 통하여 쓰인 기록도 있습니다. |
흰색 한지에 기록하며 해서체를 원칙으로 한다.
위쪽을 둥글게 하고 아래쪽을 평평하게 하는 까닭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징한다. (천원지방 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
관직(官職)이 있을 때는 그 품계(品階)와 관직(官職)을 함께 쓴다.
모두 합설을 원칙으로 작성된 것으로 단위(單位)로 모실 때는 중앙에 한 신위만 기록한다.
서쪽은 고위(考位)이고 동쪽은 비위(卑位)이므로 좌편에 남자의 신위를 쓴다.
(서고동비 西考東妣)
청색 글씨는 고쳐 써야 할 부분을 나타낸다.
남자의 경우 벼슬이 없을 때 학생(學生) 또는 처사(處士), 수사(秀士)또는 수재(秀才)라고 쓰고, 여자는 유인(孺人), 여사(女士)라 쓴다.
※ 아내의 제사에는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祭主)가 되고
장자(長子)의 제사에는 손자(孫子)가 있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제주가 되며,
남편의 제사일 때는 자손(子孫)이 없을때에만 아내(妻)가 제주가 된다.
한글 지방 요즘은 한글로 지방이나 축문을 쓰는 가정도 적지 않다. 한글로 쓸 경우에는 한자 문구를 그냥 한글로 표기 하기도 하고 그 뜻을 풀이하여 쓰기도 한다. |
◈ 신위의 의미
모든 사람은 사후 신위를 모시게 되는데 이는 돌아가신분의 형체를 표상한 것으로 제사를 지낼 때 제사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이 신위에는 돌아가신분의 혼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하며 종교적 의미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신위에는 예로부터 시동,신주,위패,사판,소상,동상,초상화,지방 등이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사진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사 중에는 이들 신위에 신이 깃들이는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 신주
흔히 우리가 무언인가 귀중하게 여길 때 신주 모시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만큼 신주는 조상의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주는 나무 위를 둥근 직육면체로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 관계, 관작과 봉사자의 이름 등을 쓴 것으로 중국 고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위의 상징입니다.
신주에 사용되는 나무는 중국의 한나라 때는 소나무를, 은나라 때는 잣나무를, 주나라부터는 밤나무를 사용하였다 합니다.
이들 나무는 각기 그 나라의 사당이 있던 지역의 토양에서 잘 자라던 나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주는 두 쪽의 나무판을 맞대어 제작하는데 앞판에는 한 가운데에 죽은 이의 친속,관작,시호 등을 쓰고 그 왼쪽에 봉사자의 친속과 이름을 씁니다.
뒤판에는 한 가운데 아래로 길게 홈을 파고 거기에 죽은 이의 관작과 성명을 씁니다.
뒤판의 좌우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둥글게 구멍을 뚫어 둡니다.
신주는 이 두 판을 맞붙여 받침대에 꽂아 세워 나무 상자 속에 담아 보존합니다.
신주는 장례식 때 묘지에서 제작되어 3년간 빈소에 모셨다가 담제를 지낸 후 사당에 모십니다.
◈ 위패
신주(神主) 또는 목주(木主)라고도 합니다.
주로 밤나무를 깎아 만들며 본신(本身)의 규격은 높이 1자[尺] 2치[寸], 너비 3치, 두께 1치 2푼[分]이며, 머리 부분의 5치 정도를 깎아서 둥글게 만듭니다.
앞면은 분(粉)가루에 아교를 섞어 발라 희게 만들어 이것을 분면(粉面)이라 하고, 뒷면은 한가운데에 길이 6치, 너비 1치 정도를 4푼 깊이로 파서 이것을 함중(陷中)이라고 합니다.
받침은 사방 4치에, 두께를 1치 2푼으로 하고 위에 홈을 파서 신주를 세워 받칩니다.
그리고 독(왑:함과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안에 넣는데 이는 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나서 붓으로 써서 작성하는데, 이것을 제주(題主:신주를 쓴다는 뜻)라고 합니다.
신주는 받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궤연(机筵)에 모셨다가 3년상을 마친 뒤에 사당(祠堂)에 봉안합니다.
가묘(家廟) 이외의 단(壇)·묘(廟)·서원 같은 곳에도 패를 봉안하는데, 예를 들면 사직단(社稷壇)에는 사신(社神)과 직신(稷神), 공자묘에는 공자를 비롯한 많은 성현을, 각 서원에는 명신(名臣)·의사(義士)의 위패를 봉안합니다.
◈ 지방
지방은 중국의 송나파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습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습니다.
◆위패의 서식 1) 신주의 서식 (1) 신주 한 위(位)에 한 분의 조상을 신주 중앙에 붓글씨로 내려쓰고, 서쪽(향해서 외쪽) 하단에 봉사자를 쓴다. (2) 신주는 한 번 글씨를 쓰면 오래 모실 뿐아니라 항상 가묘에 모시기 때문에 신주(神主)라 명기한다. (3) 신주 서식은 다음과 같다. ▣ 신주의 양식 ·주①:'고(考)'는 돌아가신 아버지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비()', 돌아가신 조부모는 '조고(祖考)', '조비(祖)', 돌아가신 증조부모는 '증조고(曾祖考)', '증조비(曾祖)', 돌아가신 고조부모는 '고조 고(高祖考)', '고조비(高祖)', 아내는 '현(顯)'을 쓰지 않고 '망실(亡室)' 또는 '고실(故室)'이라 쓴다. ·주②: 직명과 직급은 사실대로 쓰고, 만일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쓴다. 여자 조상으로서 남편의 신주에 벼슬(직명·직급)을 쓸 때는 '숙인(淑人)'이라 쓰고 남편이 벼슬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쓰며 여자 조상이 자신의 직명·직급이 있으면 그것을 사실대로 쓴다. ·주③:'부군(府君)'은 남자 조상의 경우이고, 여자 조상이나 아내는 본관과 성씨를 '全州李氏'와 같이 쓴다. ·주④:'효자(孝子)'는 큰아들이 위패를 받드는 경우이고, 작은아들이면 '자(子)', 큰손자면 '효손(孝孫)', 큰증손자는 '효증손(孝曾孫)', 큰현(玄)손자는 '효현손(孝玄孫)'이라 쓰며 남편이면 '부(夫)'라 쓴다. ·주⑤: 이름은 사실대로 쓴다. ·주⑥:'봉사(奉祀)'는 어른의 경우이고 아내의 경우는 '행사(行祀)'라 쓴다. 2) 지방의 서식 (1) 지방을 쓸 때는 임시로 만드는 위패이기 때문에 '신주(神主)'라 하지 않고 '신위(神位)'라고 쓴다. (2) 지방은 각각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부득이 같이 모실 경우에는 남자 조상을 서쪽(보아서 왼쪽)에 쓰고 여자 조상은 그 동쪽(보아서 오른쪽) 에 쓴다. (3) 기타의 지방 서식은 신주 서식과 같다. 위패 위패는 그 형태가 신주와 비슷하지만 제작법은 간단하다. 단순히 한 토막의 직육면체 나무를 다듬어서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과 관작 등을 쓴 것으로 약식 신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판이라고도 하는 사판은 신주 형태의 넓적한 목판에 죽은 이의 관작이나 호 등을 쓴 것으로 성균관, 향교, 서원, 사우 등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 지방은 중국의 송나파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다. 위패쓰는법... 망 (亡) ..윗머리에쓴다 ...........顯 (현)존칭 先(선) 엄 (嚴) 격식을 높여서 아버지를 부르는말 또한. 어머니를(亡 慈 母)망사모 부 (父 ) 고조 할아버지할머니 (亡高組父.母) 망고조부.모 증조할아버지 할머니(亡曾組父.母) 망증조부.모 작은 아버지 어머니 (亡灼父.母) 망작부,모 김 (金) 해 (海)....本 (본)을쓴다 후(后) ..남자는 후인 인 (人) ..여자는 유인 (孺人) 김 동 길 靈 영 駕 가 ■ 지방쓰는법 ;;;;;;;;;;;;;;;;;; 顯 考 學 生 府 君 神 位 현 고 학 생 부 근 신 위 복위(伏爲)는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지내는 사람이 아들이면(行孝子)딸(行孝女)손자이면 (行孝孫) 자식이나 손자가 아닌 다른사람이나 아내 남편이 재사를 지낼때는 기부 (記付) 예~행효손자 (行孝孫子) 김말동 복위 (伏爲) 선사전(대성전)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선사전. 선사전은 달리 대성전이라 불리는데, 공자 뿐만 아니라 유학 성현을 모시는 곳이다. 선사전 중앙에 있는 공자상과 위패.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래 철거된 것을 1990년대 초에 다시 모셔졌다 ■ 축문(祝文) 쓰기 부모 축문 예시 녹색부분은 고쳐 쓰도록 합니다. ◎ 유 세차(維 歲次) : 세월은 흘러 올해가...(ㅇㅇ년입니다) 의 뜻. ◎ 유 세차 ㅇㅇ(간지) : 干支(간지)는 천간지지 육십갑자의 그해의 태세를 쓴 것. ㅇㅇ는 제사 지내는 그 해의 간지. ⇒ 2011년은 辛卯(신묘) ◎ ㅇ월(月) : 某月(모월)은 제사 날을 따라 쓰며 제사달이 정월이면 正月, 8월이면 八月(팔월)로 쓴다. ◎ ㅇㅇ삭(朔) : 干支朔(간지삭)은 제사달의 초하루라는 뜻으로 제사 달 초하루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초하루 일진이 丁亥 (정해)이면 丁亥朔 (정해삭)이라 씁니다. 축문에 月을 표시하는 글자(간지)로는 그 달의 월건(月建)을 쓰지 않고 관례적으로 삭(朔, 1일의 간지)를 쓴다. ◎ 삭(朔) : 초하루(1일)를 뜻하는 漢字. ◎ ㅇㅇ일(日) : 某日(모일)은 제사 날을 쓴 것이며, 제사 날이 15일이면 그대로 十五日(십오일)로 씁니다. ◎ 일(日) ㅇㅇ : 干支(간지)는 그 제사 날의 일진을 씁니다. 예를 들면 15일이 제사 날이고 15일의 일진이 甲子(갑자)이면 甲子(갑자)라고 씁니다. ◎ 효자(孝子) : 장자(큰아들)를 뜻함. 혹은 상례 절차를 잘 마쳤으므로 효자로 본다는 뜻. ◎ 효자ㅇㅇ : ㅇㅇ는 제주(큰아들)의 이름. ◎ 감소고우(敢昭告于) : 삼가 밝게 아뢰다. 妻喪 (처상)에는 敢(감)자를 버리고 昭告于(소고우)만 쓰며, 아우 이하는 다만 告于(고우)만 씁니다. ※ 여자 위의 경우 본관 성씨를 쓰며 남자 위의 경우 학생(學生)을 쓰나, 만약의 경우 남자가 벼슬을 했을 때 학생 대신에 그 벼슬의 관직을 쓰며, 그의 부인은 남편의 관직명을 따라서 유인(孺人) 대신 관명을 씁니다. ◎ ㅇㅇㅇ씨(氏) : '김해 김'씨 식으로 씁니다.(본관과 성씨) ◎ 세서천역(歲序遷易) : 세월이 흘러 때가 바뀌다. ◎ 휘일부림(諱日復臨) 앞의 '현고(顯考)' : 가문에 따라서는 '현고학생부군' 으로 쓰기도 한다. ◎ 휘일부림(諱日復臨) :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다. ◎ 추원감시(追遠感時) : 돌아가신 때를 맞이하여 진정한 마음으로 감동하다. ◎ 호천망극(昊天罔極) : '하늘이 넓고 끝이 없다' 는 뜻으로 '부모의 은혜가 크고 끝이 없음' 을 이르는 말. ◎ 청작서수(淸酌庶羞) :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 ◎ 공신전헌(恭伸奠獻) : 공손히 제물(祭物)을 올리다. 제사를 지내다. ◎ 상(尙)향(饗) : 흠향하시옵소서. ◎ 조부모제사의 경우는 顯考(현고)를 顯祖考(현조고), 顯妣(현비)를 顯祖妣(현조비)로 고쳐 씁니다. ◎ 증조부모 제사의 경우는 顯考(현고)를 顯曾祖考(현증조고), 顯妣 (현비)를 顯曾祖妣(현증조비)로 고쳐 씁니다. ◎ 고조부모 제사의 경우 顯考(현고)를 顯高祖考(현고조고), 顯妣 (현비)를 顯高祖妣(현고조비)로 고쳐 씁니다. ◎ 孝子이름은 겸양의 표현으로 조금 작게 씁니다. ※ 축문은 옛날의 한문 문서 쓰는 방식(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으로 쓰고, 가문에 따라서 '顯'(현)자와 '饗'(향)자 혹은 '維'(유)자와 '饗'(향)자, 또는 세 글자 다 다른 글자(다른 줄)보다 한두 칸 올려 더 높게 씁니다. ◇ 어머니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생존해 계신 경우 축문 ◇ 아버지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생존해 계신 경우 축문 ◇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모두 돌아가신 경우 축문 ○ 축문에 필요한 간지(干支) 찾기 1. 종전의 달력에는 양력 일자 아래에 붉은 글씨로 작게 음력 일자와 간지["일진" 이라고도 함]를 표기. 최근의 달력에서는 보기 힘이 들다. 불교 계통의 달력 이나 만세력에서 찾을 수 있다. 2. 인터넷을 이용하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 ☆ "한국천문 연구원") ☆ http://www.kasi.re.kr ("한국 천문 연구원" 음양력변환계산) 아래주소 클릭하여 음양력 변환하여 간지 확인하시면 됩니다. http://astro.kasi.re.kr/Life/ConvertSolarLunarForm.aspx?MenuID=115 예 : 2010년 음력 2월 28일자 축문에 필요한 간지를 찾는 방법 1) http://www.kasi.re.kr 의 "한국천문 연구원" 사이트를 찾는다. http://astro.kasi.re.kr/Life/ConvertSolarLunarForm.aspx?MenuID=115 2) 천문우주지식정보/생활천문/"음양력변환계산"을 선택한다. 3) "음력을 양력으로"난을 선택한 다음 4) 2010년 02월 28일을 입력하고 [변환]을 누른다. 5) [오늘의 날짜정보]아래 "음력간지"의 난에서 아래와 같이 해의 간지(1)과 기일의 간지(3)을 구할 수 있다. 경인(庚寅)년기묘(己卯)월임진(壬辰)일 ↓ ↓ 간지(1) 간지(3) 6) 다시 2010년 02월 01일을 입력하고 [변환]을 누른다. 7) [오늘의 날짜정보]아래 "음력간지"의 난에서 아래와 같이 간지(1)과 더불어 초하룻날 간지(2)를 구할 수 있다. 경인(庚寅)년기묘(己卯)월을축(乙丑)일 ↓ ↓ 간지(1) 간지(2) 8) 위의 5)항과 7)항에서 해의 간지인 간지(1) 경인(庚寅)과 초하룻날의 삭일 간지인 간지(2) 을축(乙丑)을 기일의 간지인 간지(3) 임진(壬辰)을 구할 수 있다. 9) 따라서 축문에 적용해 보면 아래와 같다. 維 歲次 庚寅 二月乙丑朔 二十八日壬辰 ◆신위 1. 신위 모든 제사에는 향사 대상자를 상징하는 신위를 설치하게 된다. 신위는 돌아가신 조상의 형체를 표상 한 것이다. 신위에는 예로부터 시동,신주,위패,사판,소상,동상,초상화,지방 등이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사진도 사용되고 있다. 제사 중에는 이들 신위에 신이 깃들이는 것으로 믿어졌다. 【1.신주】 신주는 나무 위를 둥근 직육면체로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 관계, 관작과 봉사자의 이름 등을 쓴 것으로 중국 고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위의 상징이다. 신주에 사용되는 나무는 중국의 하나라 때는 소나무를, 은나라 때는 잣나무를, 주나라부터는 밤나무를 사용하였다. 이들 나무는 각기 그 나라의 사당이 있던 지역의 토양에서 잘 자라던 나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신주는 두 쪽의 나무판을 맞대어 제작하는데 앞판에는 한 가운데에 죽은 이의 친속, 관작, 시호 등을 쓰고 그 왼쪽에 봉사자의 친속과 이름을 쓴다. 뒤판에는 한 가운데 아래로 길게 홈을 파고 거기에 죽은 이의 관작과 성명을 쓴다. 뒤판의 좌우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둥글게 구멍을 뚫어 둔다. 신주는 이 두 판을 맞붙여 받침대에 꽂아 세워 나무 상자 속에 담아 보존한다. 신주는 장례식 때 묘지에서 제작되어 3년간 빈소에 모셨다가 담제를 지낸 후 사당에 모신다. 【2.시동】 신주나 위패를 봉안하는 의자로서 제상이 높으면 교의도 높아야 하고 제상이 낮으면 교의도 낮아야 한다. 요즈음에는 신위를 보통 제상 위에 봉안하고 있으므로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 【3.위패】 위패는 그 형태가 신주와 비슷하지만 제작법은 간단하다. 단순히 한 토막의 직육면체 나무를 다듬 어서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과 관작 등을 쓴 것으로 약식 신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불교 사찰 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판이라고도 하는 사판은 신주 형태의 넓적한 목판에 죽은 이의 관작이나 호 등을 쓴 것으로 성균관,향교,서원,사우 등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4.지방】 지방은 중국의 송나파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다. 2. 축문 축문이란 제사를 받드는 자손이 제사를 받는 조상에게 제사의 연유와 정성스러운 감회,그리고 간략 하나마 마련한 제수를 권하는 글이다. 특히 기제사에서 지방을 붙이면 축문을 읽는것이 원칙이다. 살아 계신 어른에게 색다른 음식을 올릴 때 의당 권하는 말씀을 올리는 것처럼 조상에게도 제수를 올리면서 그 연유를 고하는 축문을 작성한다. 축문의 내용은 그 제사를 지내게 된 연유를 '언제'-'누가'-'누구에게'-'무슨일로'-'무엇을'의 형식으로 고하고 제사를 받으시라는 줄거리로 이루어진다. 축문은 신명앞에 고하는 글이며 그 내용은 제위분께 간소하나마 제수를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을 담는다. 축문도 지방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한문으로 쓰는 것이 좋다. 축문의 규격은 가로 24cm, 세로 36cm 의 깨끗한 백지에 쓰며, 벼슬이 있을 때의 호칭은 지방을 쓸 때와 같다. "學生" 대신에 "관직명"으로,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등을 쓴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에는 축문을 쓰지 않는다. 3. 지방쓰는법 지방에는 원래 정해진 규격이 없지만 신주를 약식화한 것이므로 신주의 체제에 유사하게 제작하는 것이 좋다. 문안을 쓸때에는 붓을 사용하여 한자로 쓰는 것이 좋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적당한 필기구를 이용하여 한글로 작성하여도 무방하다. 지방의 규격은 가로 6 cm, 세로 22 cm의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쓴다. 상단을 둥글게 하고 아래쪽을 평평하게 하는데 이는 천원지방(둥근하늘과 평평한 땅)을 상징한 것이다. 문은은 일반적으로 남자고인의 경우 '顯考學生府君神位', 벼슬이 있으면 "學生"(학생)대신에 벼슬의 관직(예를 들면 "崇祿大夫"등)을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을 쓴다. "孺人" 다음에는 본관성씨를 쓴다. "考"(고)는 사후의 "父"(부;아버지)를 뜻하며 "비"는 사후의 母(모;어머니)를 뜻한다.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더라도 남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는것이 기본이다. 지방을 붙일 때 왼쪽이 높은 자리, 오른쪽이 낮은 자리이다. 한 할아버지에 두 할머니의 제사일 경우 가장 왼쪽이 할아버지, 중간이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인다. 출처: 화원반도 원문보기 글쓴이: 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