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셨다
점심 약속이 벌교에서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은
전주 순천 고속도로에서 바라 보는 전망은
내가 스위스의 산속을 달리는 느낌을 주기에
안성마춤이다.
짙은 녹색으로 더욱 더 푸르른
산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겨누면서
한껏 우정을 돈독이 쌓고 있으니
보기에도 좋고
고향가는 길이 더 기쁘게 느껴지는
아침의 선선한 고속도로위 풍경이다.
고개를 넘어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덩그러이 선 체육관 건물이
선수방죽길에 뭔가 변화가 있음을 알리고 있어서
그래도 조금씩 생동감을 느끼게 해서 좋았다
늦은 저녁에 전화가 왔다.
어디냐?
응 안성쯤 내려오고 있다
왜?
응 내일 아침에 일을 좀 해야 것다.
뭘?
불판을 가져와서 뭔가 준비를 해야겠는데...
응, 알았다, 아침 9시30분 이전에 학교에 가서 기다릴께!
토요일 아침 새벽 부터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난다
마침 토요일에 대광교회에서 고흥으로 소품을 가는데
어머니께서 따라 나서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대전에 보낼 것들을 !)
아침에 소라와 이런 저런 곡류를 넣어 죽을 써서
함께 먹고 나서
먼저 어머니께서 집을 나섰다.
나도 학교 주위를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집을 일찍 나섰다.
학교는 많이 변한 정도를 넘어
완전히 새로운 학교로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의 열정과 꿈이
그 척박한 형태의 땅과 지형을
이처럼 아름답고 멋지게
그리고 꿈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도무지 상상이 안될 정도로
완전한 모습으로 새롭게
아니, 지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 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벌교 중학교나 벌교에 있는 다른 어느 학교보다
더 많은 투자와 교세가 확장되고 있음을
외견적으로는 쉽게 느낄 수 있도록 건물이 많이 들어섰고
또 운동장 역시, 인조잔디 구장과 트랙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나는 이리 저리 학교 주위를 돌아보면서
사진을 연신찍었고 동영상으로 담아 두었다
이내, 종수가 왔다
윤식이랑 통화를 하고 나서
수봉이 집에 숯불을 피울 수 있는 그릴을 가지고 와서
준비물을 슈퍼에 사서
창수가 점심으로 기부한(400만원상당) 장어를 굽는 것이
오늘 나에게 주어진 부탁이었다
나는 장좌리로 갔다
기억을 더둠어 수봉이 집 어귀로 가니
이미, 윤식이가 와서 기다리고 잇었다.
훤칠한 키에 까뭇한 얼굴이
영락 없는 윤식이 아버지의 모습을 떠 올리고 있었다
이내 그릴을 분해 해서 차에 넣고서
감자기 궁금해서 나는 물었다
수봉이 부모님 모두는 돌아가셨지?
그럼... 진직 돌아가셨지!
그믄, 지금 이 집에 누가 사냐?
아무도 없어!
아니, 근디, 이렇게 깨긋하고 정원에 나무들이 잘 다듬어 져 있는디?
응, 수봉이가 종종 내려와서 관리를 하고 있제!
그래, 나는 집으로 들어가 잠시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너무도 깨끗하고
문간방이 서너개 본채 옆으로 또 방들이 서너개...
모두들 자취방들이었다...
한세대를 기억하게 하는 모습이다
텅비어 가는
고향의 집들이다
텅비어 가는
아름다운 우리들의 어린 동심의 세계이다
어떻게 이러한 단절을 매울 수 있을까?
갑자기 먹먹해 지는 맘을 숨기고서
이리저리 작은 골목길을 나오니
바로 큰길 슈퍼가 보인다
첫댓글 고향이 우리 추억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건 소박함을 넘어 욕심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데 하물며 사람이야..그래도 산천은 의구한 데 인걸은 간데 없네의 옛시가 우리의 인생무상을 읊쭈리지 않았더냐.
엄마품같은 고향이 그래도 고향일 수 있는 건 너를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고향이다. 그게 고향추억이다. 엄마가 고향에 계시는것도 또한 축복이다. 장좌리 수봉이집이 남아 있는것도 텅빔이 아니라 아직까지 남아 있는 채움이라는 걸....
지금은 인천공항보다 LAX공항이 그리움까진 아니더라도 낯설지 않음은 ,편안한 삶의 터전이기에 이곳에 도착하면 웬지 편안하기까지 하다. 그래야 또 하루를 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사 아니더냐. 장좌리수봉이집과 집터의 흔적만 남아 있는 기숙이집의 비교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짠하게 한다. 삼현이의 집에서 바라 보던 그 아이의 마당은 엄청 커 보였는 데....
그게 세월의 흔적이다.
박제된 민속촌도 변한다는 데 하물며 생명이 생로병사하는 인간의 마을이야 변하는 게 당연지사겠지...
잘 가꾸어진 수봉이 마당깊은집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터전이 남아 있는 한 그것 또한 고향이다.
그래, 터가 아직 있다는 것만 느껴도 기쁨이다
수봉이 집을 보니...
한 때, 벌교가 북적북적 거렸던 때가 생각이 나더라
문칸방으로 본채로 여기 저기 방들이 정갈스럽게 연이어 있는 것이
여기저기 벌교읍내로 공부하러 온 많은 학생들이 생각나더라
그런데... 이렇게 텅 비어 있으니
벌교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위축되고 있는지
실감 할 수 있기도 하고
그러나 여전히 고향은 고향으로
우리의 생명의 시작점으로서
친근감과 포근함 그리고 아늑함이
언제나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더라
^^
금요일 밤까지 체육대회 점심식사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역시 우리 봉식주방장이 답이었다.
식당에 일체로 맡겨지지 못하고, 숯불을 피워서 장어를 구어야 하는 대형 사건에
봉식이한테 필요한 내용만 전해줬는데, 역시나 깔끔하게 해결해서 장어 구울 준비마치고
조대현이가 오랫만에 왔는데도, 봉식이랑 오후내내 장어 굽고, 끝나고 불판 수봉이 집에 갔다 주고,
만종이도 식당에 가서 밥/국 가져와서 나눠주고
동기들 노가다 시키면서 체육대회 참석한 사람들 먹였다.
일은 저질렀는데, 역시 친구들이 다 해결해 주었다.
감사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역시 사람은 믿고 힘을 합치면 못할게 없는거 같다.
봉식아 사랑한다~
이렇게 긴 장문이!?
혼자 생각하면 막연한 일들도 합력해서 착한일을 꾸미다 보면 좋은 생각이 절로난다. 그게 뭉침의 힘이다. 고향에 어릴 적 친구에 .. 설레는 만큼 오지다야.
리허설이 끝났으니 제석회도 잘 마무리 하거라. 마음으로만 제석회를 응원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랫만에 봉식이도 섬김을 몸소 행하셨구만...
@woonghokim 제석회야 기숙이도 있고, 뭐 좀 실수가 있어도 그런데
삼광 체육대회는 혼자서 추진하는 게 가장 힘들었지..
상화라도 같이 했으면 덜 했을 것인데,
하여튼 "봉식이~" 하고 떠 올렸을 때가, "아 해결됐다!!" 하게 된 유레카였다.
명불허전이라, 주방장님 포스는 여전하더라고.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듯,
일회용품 포함된 장보기 리스트 가져가선
한번도 전화나 물어볼 일도 없더니, 짠~ 하곤 끝내버렸다.
@송학사 음 그랬었군!
많은 것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는데
이렇게 너의 걱정거리 하나를 해소 하였다니
나도 기쁘다....
너가 철두 절미하게 잘 준비된 설계도와 여유 있는 재정적 지원으로
난 즐겁게 잘 할 수 있었지!
그런디, 한가지,
영수증을 잘 보면, 과자 한 봉지가 계산서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내가 세번째 슈퍼에 갔을 때, 갑자기 과자가 먹고 싶어
한 봉지 샀지(모나카?)
그런데, 그 과자를 한 봉지도 입에 넣지 못했다 ㅠㅠ
장어를 구우면서, 옆에 앉아 있는 정열(?)이에게 주었더니만
그놈이 술과 담배를 먹어서 그런지
그냥 하나만 먹더니만 통째로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에게
줘 버리더라
옆에서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ㅠㅠ
봉식이가 쉽지않은 일은 잘해줬구나. 대여섯명도 아니고 30명의 식사준비를 깔끔하게 해낸다는 것, 대단한 일이지. 고생했다
뭘!
음식을 만드는 것은 나의 취미이자, 기쁨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식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가 지날수록 더 많이 떠 오르더라
아무래도, 음식으로 세상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나의 뜻은 이루어지겠지^^
이번주 칭구들과 즐거운 나들이 잘 다녀 오거라
월요일 저녁에 일우 만났는데, 니 이야기 했지
일우는 아마도 오늘 목요일에 떠난다고 하던데...
^^
예전부터 봉식이 너 꿈에 대해 보고 듣고하다보니 친구들도 그 꿈이 이루어지길 고대하고 응원하고있다. 이번 금요일에 함께 하면 좋겠지만 영 시간이 안난다니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겠네. 그리고 일우랑은 카톡으로 대화를 했었는데, 아무래도 뭔지 부담스러운 것 같더라. 하긴 국민학교때 만나고 40년이 흘러서 만난다는 것이 봉식이랑 만나는 것과는 달리 어색하고 뻘줌하지않을까 싶어서 서울에 치과치료하러 오면 잠깐 차나 한잔하자고 연락달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못보는것같다. 나중에라도 함께 기회만들어서 볼 수 있겠지? 날도 더워지고하는데 늘 건강 조심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