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7편은 다윗이 주께 노래하는 이유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참 아름답고 대단한 믿음에 의한 구원의 노래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이 믿음을 확립하여 다윗과 같이 선언적으로 주의 구원을 노래해야 합니다.
1절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나의 생명의 능력 곧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과연 우리가 모시고 믿고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의 생명의 에너지가 되고 있는가? 빛은 어둠을 이기고, 구원은 죄와 사망을
이기고, 생명의 능력은 확신과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무한대의 하나님의 힘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의 에너지입니다. 그렇지만 이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드문데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 됨을 선언적으로 입술과 마음의 묵상이 이부합창이 되어 노래할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로마서와 요한복음을 습득하신 겁니다.
2절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행악하는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나를 삼키려고
내게 덮쳤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다고 간증합니다. 사실 육체에 속한 자들이
그리스도를 그 안에 모시고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심을 고백하고 노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삼키려면 아마 끓는 납을 들이마시는 것과 진배가 없을 겁니다.
내 살을 ‘먹으려고’는 삼키려고 하는 겁니다. 바울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을
맹수라고 말했습니다(고전15:32)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언제나 십자가의 도를
비방합니다. 그냥 이유 없이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육신의 사람들은 영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곤란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언제나 육신의 조건을 공격합니다. 증거하는 말씀보다 육신을 쪼아댑니다.
가난이나 질병 등, 갖가지 육체의 조건을 두고 조리돌림으로 모욕감을 줍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게로 왔으나 실족하여 넘어졌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스스로
나자빠지고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사람은 언제나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맙니다. 하만이 모르도개를 달려고 세운 나무에
자신이 달리듯이 말입니다. 세상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겐 사필귀정이 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날 때까지 인내가 필요합니다.
3절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삥 둘러서는 형국입니다.
영화에서 깡패들이 한 사람을 두고 삥 둘러서서 공격하듯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본성적인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가 모시고 있는 주님으로 인해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을 우리는 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두려움이 없고 부러운
것도 하나 없는 믿음의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을 이깁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을 치려하는 전쟁의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태연하리라고 말합니다.
사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나면 사방에 원수가 둘러싸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주님으로 인해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빛이요 구원이시요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다윗의 결단을 봅니다. “네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전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2절과 3절과 같은 상황 속에서라도 나는 이와 같이 기도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하나님은 요즘 같이 천민자본주의에 사로잡힌 기복주의
신자들에게는 백해무익한 존재입니다. 과연 다윗의 하나님과 지금의 기독교의 하나님이
같은 분일까요? 그랬으면 참 좋겠으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축복 대 성회, 은사집회, 신유 환상 입신 등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윗의 하나님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흡사 동양철학관 광고
같은 교회의 전도 전단지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빛, 구원,
영원한 생명’ 등은 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운동도 생활체육이 있고
엘리트체육이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이 되어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내주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직 한 가지만 구하겠다고 결심합니다.
1)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겠다’ 사는 날 동안, 항상 주의 집에 거하겠다는
의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도 남을 만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야 성전시대의
인물이니 여호와의 집이라고 함이 당연한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죠? 교회가 그 집일까요?
로마서를 익히고 난 다음에 히브리서 안에서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확립
하세요. 항상 삼위 하나님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내리게 됩니다.
2)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앙망하겠다’고 말합니다. 참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간직해 놓은 은총을 주시하고 바라보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를테면
베드로와 같이 주님만을 주목하든 아니면 자신의 수영실력으로 헤엄을 치든지 애초에
결정을 해야지 어부생활이 몸에 익은 사람이 창피하게 ‘살려 달라’고 고함치면 안 됩니다.
3) ‘그 전에서(궁전)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자세히 살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욱 분명히 하나님을 주시해야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주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권투 선수는 시합 전에 눈싸움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공부도 이긴 아이들이 잘합니다.
정신적으로 진 아이들은 잘 못합니다.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은 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이 되시면 그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앙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종이 주모의 손길을 기다림 같이...
5절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심은 자신의 몸으로 덮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한 번 덮으시고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를 덮으시는 초막 곧 장막이 되십니다. 개인텐트이며 전체를 덮는 텐트입니다.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비밀한 곳이며 세상이 모르는 곳입니다
그리고 ‘높은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원수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곳입니다.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보좌까지 높이신다는 뜻입니다. 아마 세상은 우리의 자취도
찾기 힘들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장막도 비밀인데 어찌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이 시온의 대로를 그들이 넘볼 수가 있겠습니까? 컨닝도 할 수 없습니다.
6절을 보면 원수들은 항상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들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즐거운 제사, 곧 노래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십니다. 찬송은 이긴 자의 노래입니다.
어디서요? 그 장막 안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육신의 삶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제사를 드리는 복입니다(롬14:17)
하나님은 아무런 대책 없이 우리를 향해 제사를 드려라 찬송을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어둠을 이기는 빛이십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는 구원이요 무한대의 에너지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와 사망과 위험을 덮어버리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만세반석 안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숨기십니다. 그리고 높은 반석위에 우리를 두십니다.
그래서 합3:18-19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형편과 사정을 아랑곳 하지 않고 구원의
즐거움을 노래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아 의를 얻고 영광을
얻어 주님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비밀을 터득해야 합니다.
시27편의 다윗이나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과 인생의
문제의 근원과 그 결과를 훤히 보면서 이기는 복된 인생의 시범을 보입니다.
첫댓글 빛은 어둠을 이기고, 구원은 죄와 사망을 이기고,
생명의 능력은 확신과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무한대의 하나님의 힘!!
이 의의 에너지이신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을
살게 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오늘, 지금 이 순간 같은 기도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오늘을 빛과 구원과 생명의 능력으로
살도록 견인하고 계심을 찬양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