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명희는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단편 「쓰러지는 빛」으로 당선, 그 이듬해인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2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제1부)이 당선되었다. 『혼불』은 1980년 4월부터 첫장을 쓰기 시작하여 1996년 12월에 이르기까지 만 17년간 오로지 이 하나에 투혼하여 집필해온 작품으로, 1990년 겨울 한길사에서 제 1,2부가 출간되었고 다시 6년 만에 총 5부 전10권으로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 소설 『혼불』로 제11회 단재상을 수상하였고, 전북대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였으며, 세종문화상, 여성동아대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몌별」(袂別) 「만종」(晩鐘) 「정옥이」 「주소」 등이 있다. 현재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한국학과에서는 그가 초청받아 강연했던 글 「나의 혼, 나의 문학」을 고급한국어 교재로 채택하여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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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는 원고지 한 칸 한 칸에 글씨를 써넣는 것이 아니라 새겨넣고 있다. 그의 글씨는 철필이나 만년필로 쓰는 것이 아니다. 아주 정교하게 만든 정신의 끌로 피를 묻혀 가면서 새기는 처절한 기호이다. 『혼불』은 나를 숨막히게 한다. 『혼불』은 지금 우리 문학에 횡행하는 온갖 소음과 기만을 무섭게 경고한다. 최명희, 그는 분명 신들린 작가이다. - 고은(시인)
매달 『혼불』 연재 기다리는 재미에 감옥 한 달이 어찌 가는지도 모른답니다. 피로 찍어 쓴 듯한 문장 문장에서 뿜어 나오는 기(氣)가 제 몸속 옛 기억을 짚어내는 순간 불덩이처럼 솟는 시의 영감에 한동안 눈을 감고 얼어붙곤 합니다.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절로 경배하고픈 순간입니다. 그러니 선생님 제가 낯뜨거운 부탁 하나 드립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기한 없는 제 감옥살이에 『혼불』연재 거르지 않게시리 밥 꼭꼭 드시고 잠 편히 드시고 정말 건강하셔야 합니다. 이 땅의 한 많은 인생들 위에 저 푸른 목숨의 불, 혼불이 훨훨 - 경주 남산자락 독방에서 박노해
소설 만들기에 대한 최명희의 '혼불' 같은 투신(投身)의 결정이 곧 『혼불』이다. 만 17년 동안 이 작품에 매달린 신들림과 각고의 세월이 그렇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이런 표현에 엄밀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가 묘사한 우리 삶의 진짜배기 원형질이 슬프고 아름답게 차근차근 다가온다. 이 소설의 특기할 만한 미덕은 바로 이 점에 있는 듯하다. 탄생과 결혼과 죽음 의식(리추얼)이나 그 사이에 낀 여러 풍속사의 극채색에 가까운 묘사는 놀랍다. 그 속에 포괄된 의미들이 한국인의 생활을 규정하는 것인지, 우리네 정신의 본향이 그걸 요구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면서, 어떻든 먼 회상여행을 거쳐 오늘의 나를 탐색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 이런 소설도 있구나 싶고 이건 미싱으로 박은 이야기가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이바구'라는 걸 새삼 느낀다. - 최일남(소설가)
최명희는 문체와 관심하는 희유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정겨운 서정성과 예스러운 정취를 지향하는 문장으로 된 『혼불』은 우리 말의 보고로서 주술적인 힘과 기운마저 가지고 있다. 우리 겨레의 풀뿌리 숨결과 삶의 결을 드러내는 풍속사이기도 한 이 소설은 소리 내어 읽으면 판소리의 가락이 된다. 독특한 울림이 호소력을 발휘하는 노작(勞作)이다. - 유종호(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
『혼불』은 전통 문화와 민속 관념을 치밀하고도 폭넓게 형상화하고 있다. 문화 전승의 담론 가운데 전범(典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여기 구현된 민족 문화의 면모는 그 어느 민족지에 기술된 것보다 더 정확하고 다채롭다. 『혼불』의 가장 큰 매력은 조탁한 언어이다. 『혼불』의 언어는 마치 생동하듯 우리의 느낌에 다가서는데, 우리는 주술에 걸리기라도 한 듯이 이 빛나는 언어에 매료된다. 『혼불』에 빠져드는 것은 결국 문학 고유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일이 될 것이다. - 장일구(문학평론가, '96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혼불론' 당선)
최명희의 소설을 대하면 어느 벌족한 가문의 종가댁 잔치마당엘 들어선 것 같은 설레는 기대감과 아련한 흥분을 느끼게 된다. 나는 곧 거기서 울을 넘는 음식 냄새와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 이어 뜨락을 메운 질펀한 흥취와 안방 여인네들의 정겨운 어우러짐, 그리고 사랑채 어른들의 경세담들을 모두 한마당에서 만난다. 고색 창연한 그 일문의 내력을 숨기고 있는 뒤꼍 대밭의 은밀스런 속삭임까지도, 최명희는 아마 그 모든 것들을 묵묵히 보고 듣고, 깊이 간직해온 그 집 마당가의 한 그루 늙은 오동나무 혹은 은행 고목인지도 모른다. 그래 끝내는 우리 삶의 참모습과 옳은 자리를 보여 주는 을 써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 이청준(소설가)
일제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가 에 이르러 비로소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된다. 역사의 격심한 갈등과 대변혁 속에서도 의연히 민족혼의 알맹이를 마모시키지 않고 영글 수 있게 만든 것은 옹골찬 여인들의 한 많은 삶이 다져낸 넋의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청암부인을 비롯한 숱한 우리 민족의 어머니와 아내, 여인상을 최명희는 애절함과 그리움으로 우리 시대에 부상시켜 준다. - 임헌영(문학평론가)
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 은 여성적인 넋의 고혹스러움과 섬세한 문체의 마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면서도 대하 서사시적인 규모를 지닌 일대 거작이며 엄청나게 폭이 넓은 사회소설이다. 이야기 중심, 사건 중심이 아닌 소설 장르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이 작품으로, 최명희의 소설사적 지위는 이미 확고한 것으로 굳어졌다. 그는 우리가 대대로 전승해온 풍속의 세계를 최대한 정밀하고 자상하게 또한 아름답게 복원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마치 우리 민족의 참된 정체를 지키려는 수호여신과 같은 풍모를 띠게 된다. 『혼불』은 앞으로 소설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우리 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문헌의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 이동하(문학평론가, 서울시립대 국문학과 교수)
『혼불』에는 애처롭도록 가냘프면서도 뜨겁고 강인한 우리 민족의 혼이 타오르고 있다. 『혼불』에는 우리 선조들이 모든 일상생활과 의례에 쏟았던 무한한 정성과 기도가 면면히 깃들어 있다. 가혹한 인습의 제약에, 또는 처참한 가난과 억압에 고통받는 형극의 삶 속에서도 인륜의 대소사는 물론, 장(醬)을 한 가지 담거나 연을 한 개 접을 때에도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염두에 두었던 그들의 생의 궤적이 가슴을 저민다. 『혼불』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사이면서 또한 수용과 인내로 역사의 잔인한 파도를 이겨낸 극복의 역사이며, 우리의 갖가지 생활 양식과 규범, 속신(俗信)의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수천만 자에 달하는 이 대작(大作)을 단어 한 개, 토씨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찬란하고 영롱한 장편의 서정시로 완성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다. - 서지문(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무엇인가 오래 묻혀 있다 떠오른 세상인 것 같다. 인간정조의 극적인 미감을 고혹스럽게 길어올리는 작가의 묘사력에 힘입어 민족사의 한판 잔치마당이 벌어졌으니, 산업화의 포크레인이 옛것들을 완전히 밀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오늘, 우리네 삶의 진액들이 흘러흘러 대하의 강을 이루는 『혼불』의 장엄한 장관을 보라. 그 혼불의 빛을 받으며 때로 은밀히 속삭이듯, 때로 소용돌이치듯 요동하는 형상의 물살 속에서 우리의 역사는 새로 태어난다. - 임규찬(문학평론가)
한국인은 삶의 크고 작은 토막들을 통틀어서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더러 '사연'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가 하면 아예 '말' 그것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 것이 곧 '이야기'이다. 요컨대 '이야기'야말로 우리들이 가장 많이, 가장 긴요하게 주고받는 '말의 말'이다. 그것으로 한국인은 인생을 말하고, 인생을 풀이하고 인생에 매듭을 지어 나갔다. '이야기'로 살고, 사는 것을 이야기 삼아왔다. 최명희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일 '이야기'를 말하는 출중한 '이야기꾼'이다. 근대말과 현대에 걸친 그 아픈 과도기의 구석구석, 바꾸어 말해서 안방, 집안, 고샅에서 사회에 이르는 크고 작은 현장을 바늘귀로 헤집어서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는 그 아린 사연들을 풀이하는 '이야기꾼'이다. 그러기에 이 작가의 이야기는 심히 '여공(女功)'적이다. 길쌈질, 바느질에 바친 전통사회 여성들의 손의 공력(功力)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사망, 말의 공력(功力)을 부림으로써, 『혼불』이란 이야기로 엮어 내었다. 실제로 이 작가는 시치고 호고 뜨고 공그리고 할 뿐만 아니라 박고 누비고 꿰매기까지 하는 저 알뜰한 옛 여인네의 손놀림, 섬세한 여성 손끝의 바늘놀림 그대로 이야기를 꿰어나간다. 그래 이 작가는 장단이며 사설에 걸쳐서 그녀의 고향 남도의 판소리 흥이며 기운을 이야기에 싣는 것을 절묘하게 연행(演行)해 보이고 있다. 판소리 양식이며 문체에다 여공(女功)의 극을 다한 이야기 풀이라고 한다면, 그녀가 소리하는 이야기꾼이라고 한다면, 전통적 이야기 곧 전통적 서사(敍事)가 오늘의 역사를 만나서 이룩한 최절정이 곧 『혼불』이라고 해도 좋다. 이 땅의 '이야기'의 역사가 오늘에 간직할 생명의 불꽃, 혼불로서 작품 『혼불』은 빛나고 있다. - 김열규 (문학평론가, 인제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출처: 한 초상 원문보기 글쓴이: 귀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