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971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청담 “극락 가면 우리 다 만납니다”
<자료 1> 청담 대종사 사리탑비 글
《청담대종사 전서 4》 『잡언록』 삼각산 도선사 발행, 제작 불교춘추사, 1999.
268~270쪽
응화(應化) 3008년 신유(辛酉, 1981) 오대산인 탄허 택성(呑虛宅成)이 짓고 쓰다.
무릇 법왕(붇다)의 바탕(體)은 크면서 비었고, 묘하면서도 세밀하고 또한 빛나면서 영스럽게 밝아서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모양이 우뚝 솟아 견줄 바 없이 홀로 높이 솟아 있음을 말함이라.
예부터 어질고 만사에 사무친 도인들이 이 법왕의 모양을 의지해서 혹은 인도에서 도의 이름을 떨친 큰 스님이 났고, 혹은 중국에서 도의 이름을 떨친 큰 스님들을 내면서 그 영원한 진리의 빛으로 부질없는 인간 세상의 큰 꿈을 깨달아 느끼게 하니 이른바 한 진리 가운데에 공자의 교는 그 뿌리를 심었다 하면 노자의 교는 그 뿌리를 북돋아 줬고, 불타의 교는 어수선한 군더더기에 뿌리를 시원스럽게 뽑아 해탈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 하겠다. 인연이 오면 움직여 주고 느끼면 응대하여 주며 마지못할 때 일어나면 음으로 더불어 덕을 같이하고, 양으로 더불어 인연의 물결을 같이하여 드디어 썩지 않는 업(作爲)을 이루나니 청담 스님이 이러한 이치를 순응해서 출세한 분이라 하겠다.
종사의 성은 이씨李氏요, 본은 성산星山이며 속명은 찬호讚浩요, 출가명은 순호淳浩요, 청담靑潭은 그의 법호法號다. 아버님은 화식化植이요, 어머님은 제주 고씨濟州高氏이니, 단기 4235년 임인壬寅 10월 20일 경남 진주시 수정동에서 탄생하시다. 고씨의 꿈에 일찍이 큰 잉어가 방에 들어가서 점점 변하여 청용이 되어 오색 무지갯빛을 띠고 하늘에 오르는 것을 보고 태기가 있었다고 하니, 대개 이러한 이적으로 태어나심이라, 나면서부터 특별히 총명하고 깨달아 앎이 여러 무리에서 뛰어났다. 24세에 진주 농고를 졸업하고 일본 송운사松雲寺에 찾아가서 행자로 수학하다가 26세 때에 귀국하여 경남 옥천사玉泉寺에서 당대 고승이신 영호映湖 장로를 의지하여 삭발하고 그 법까지 이어받으니 백파 율사의 8세손이 되신다.
27세에 당시 불교학 최고 강원인 개운사開運寺 불교전수강원에 입학하여 최고 주전住典인 대교과를 수료하고 바로 속세를 떠날 뜻이 있어 교를 버리고 만주 수월水月 선사 회하會下에 가서 서래밀지西來密旨를 묻고 다음 해 귀국한 뒤, 정혜선원에 입방 入枋하여 안거 중에 주공做工의 힘을 얻고 만공 스님의 인가를 얻고 이어 시로 게송을 지어 답하되 “위로부터 내려온 불조 둔치한鈍痴漢이 어찌 사事를 요달해서 알았다 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너는 어떤 능사能事가 있느냐 물어 오면 길가에 고탑古塔이 서쪽으로 향하여 기울어졌다고 하리라” 하니 이때가 32세 되던 때라.
이로부터 조그마한 깨달음을 얻은 것을 만족치 않고 이름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면서 더욱 정진을 다 하시니 묘향산 설령雪嶺의 삼안거三安居와 설악산 봉정鳳頂에서 3년 안거와 고성 문수사에서 10년의 용맹정진으로 보림하시던 곳이며, 선사의 경지를 빛나게 하던 때라,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일제 치하의 침략 종교의 폐단을 제거하는 불교 정화 운동의 선구先驅에 나서신 것은 하나의 인준忍俊을 금하지 못한 뜻이요, 또 하나는 애써 공부하여 깨달은 뜻으로 많은 중생들을 구제하려고 일선에 나오심이니 이것이 이른바 문수보살이 오셨던 길을 잃어버리고 보현보살은 서로 중생들과 손잡고 다 같이 돌아가게 하시던 도리를 바탕하심이라 하겠다.
안으로는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중앙종회 의장, 해인사 주지, 종법수호순교단 조직, 동국학원 이사장, 선학원 이사장, 불교재건비상종회 의장, 신도회 총재, 통합종단 종정을 역임하시고, 밖으로는 세계불교지도자 대회 한국 대표, 세계불교협회 한국 지부 위원장, 한국종교협회 회의장, 세계불교연합회 장로원장 등에 추대됨에 동시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 받음과 동국대 명예 철학 박사학위 등의 추서 받으심은 종사의 분사 분사分上에는 부질없는 일이니, 이것을 일러 티끌 속에 비강粃糠으로 요순 임금의 도주陶鑄함에 견줌이 아닐까 보냐. 참선하시던 틈을 타서 지으신 저서 『영산靈山』, 『나의 인생관』, 『현대의 위기와 불교』, 『마음』, 『신심명강의』, 『반야심경 강의』 등이 있어 많은 사부중에게 애독하게 하여 감명을 남기시다. 신해辛亥 11월 15일 화연이 다하시어 고요히 열반하시니 세수는 70이요, 법랍은 45세이시다.
종단장으로 다비하여 사리를 8과를 얻어서 일분一分은 도선사에 안치하고, 일분은 고성 문수암에 안치하고, 일분은 옥천사에 안치하여 모시다. 사리라는 것은 인도 말이니 총칭하면 영롱한 구슬이라고 한다. 따로 해석하면 세 뜻이니 골신(神)이라고도 하며 정취精聚라고도 하며 부사의不思議라고 하니 대개 계와 정과 혜를 정밀히 수양한 데서 얻는 최고의 수도상의 결정체라고 하겠다.
70년 동안을 환해幻海에 깊은 산속에 묻혀 세간에 나오시지 않고 수도하시고 세간 인연을 따라 진세塵世에 묻혀서 중생교화에 힘쓰시니 입入과 출出이 걸림이 없고 생 生과 출出이 걸림이 없고 생生과 숙熟의 마음대로 하시니 법왕의 공덕신(化身)이라 하겠다. 옛사람이 말하되, 싹이 트나 이삭을 이루지 못함이 있는가 하면 이삭은 났으되 열매를 맺지 못함이 있다고 하니 슬프다. 종사께서는 싹이 트면서 이삭이 나고, 이삭이 나면서 완전히 완성한 과실을 맺을 뿐이라 하겠도다.
지나간 백 년의 세월이나 앞으로 올 백 년 동안에 선사와 같은 업적과 법력을 세간에 남김이 없다고 할 일이로다. 다시 새겨 말하노니 세상에 태어나심으로부터 특별히 정특挺特하시어 배움에도 생각을 더 하지 않고 힘쓰지 않고 모든 것을 능통히 얻으시다. 마음은 항상 경과 율과 론 속에 노시고 뜻은 최고 진리에 통하시다. 삼업에 정려 精勵하여 탈선치 않으시고 참선에 치우쳐 공부하시고 마음의 구슬은 도에 심으시어 칠정七淨이 서로 빛나고 지혜의 달과 자비의 꽃은 삼공(我空 · 法空 · 俱)이 줄지어 비침이었도다.
정화의 업적은 높은 태산에 견줄 것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변절치 않고 꾸준하심은 금과 돌에 굳음에 비하겠도다. 명예가 높으신 당시에 덕을 넓혀 교화하시고, 도의 가풍이 국내외에 멀리 드날리고 퍼지셨도다. 철인이 돌아가심에 사부중이 무엇을 모방할 것인가. 욕심慾心마다 거치른 파도 속에서 고苦에 빠진 중생을 건지는 자비의 배가 침몰하였도다.
만인의 입에서 선사를 기리니 이것이 비碑 이거늘 하필 비에 새겨서 돌을 세우겠는가. 오직 높고 특출하신 그 법력이여, 높은 산과 깊은 물의 너그러움이다. 탑을 쌓아 절 앞에 세우니 사事에 즉 하고 이理에 즉 한 걸림 없는 도의 힘이 그 속에 있으니 길이 전하여 다함이 없도록 많은 중생의 의지함이 되겠도다.
“지극 염불로 정토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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