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아편전쟁> 영화를 보며 임칙서의 스승이면서 황상의 스승이기도 한 분이 아편에 중독 돼 있는걸 보면 청나라 당시에 아편 중독이 심각한 문제인 걸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황제가 임칙서에게 아편근절을 지시하게 되면서 이 영화가 시작하는데 임칙서의 결단력과 굳건한 의지가 돋보인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아편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점유하고 싶은 영국의 욕심에 의해 발발한 전쟁으로 그만큼에 중국 시장이 유럽에서도 욕심이 났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중국이 그 당시에도 대단한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홍콩을 빼앗기고 서구의 이권 침탈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대략 100년의 역사를 거쳐 1997년 홍콩 반환과 동시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찌 보면 그때의 치욕적인 아픔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다짐과 동시에 앞으로 중국인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중국이 최고이고 황제가 천자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고 외세의 침략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영국의 강력한 화력 앞에 무너지는 중국을 보면서 그러한 사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국을 거대한 시장이라고 표현한 영국의 강력함을 알게 되었고 홍콩이라는 영토까지 빼앗으며 그 당시 영국이 얼마나 강력한 나라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편전쟁 이후 중국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어 중화사상이 많이 약해지고 황제의 힘이 약해지는 그러한 계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편전쟁>에서 당시 청나라는 아편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 아편이 나라에 얼마나 악인지 알고서 아편 반입을 대대적으로 막았고, 이 과정에서 영국과의 트러블로 아편전쟁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본인들이 최고라 생각하고, 무기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쳐지는데,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해 왔던데로 목숨 걸고 싸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모습이 좀 답답해 보였습니다. 또한 영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돈을 줌으로써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이란 나라가 그 당시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편전쟁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처음 느낀 점은 같이 시대에 살고 있는 중국과 영국의 차이점이었습니다. 중국은 황제의 말이 법이고 무조건 실행 되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같은 경우는 의회가 따로 있어 의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모든 의사가 결정 되었습니다. 영국은 국민을 위해 일했고, 중국은 황제를 위해 국민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사상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고 느껴졌습니다. 또 중국의 아편전쟁 당시 많이 불리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국에게 대한 모습을 보니 우월주의에 빠져있지 않았나 생각 들었습니다.
아편전쟁으로 인해 중국은 서서히 몰락해 결국 서양열강과 일제에 수많은 피해를 입고 멸망하게 되엇습니다. 청 초기 청태조 누르하지 부터 시작되어 홍치타이, 강희, 옹정, 건륭제 대에 들어 강성한 나라를 만들어왔던 청나라가 정말 영화 속 황제의 말 처럼 한낱 조그만 섬나라 따위가 감히 청과 맞설 수 있을까 햇지만 실제론 서서히 그리고 무참히 청을 무너져 갓다는 것이 씁쓸하였습니다. 산업혁명의 늦음이 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남의 손을 빌어 개화가 되어야 하는지 서양의 우월적 의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중간중간 외세와 맞서고자 하는 중국내의 위인들의 모습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마음이 아프까지
그 당시 서양에서는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 등이 인기였다고 합니다. 반면 중국인들에게 서양의 물건이란 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은 마약인 아편을 유통시켜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대륙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합니다. 이윽고 발생한 전쟁에서 중국은 패하게 됩니다. 후에 중국은 ‘양무운동’과 ‘변법자강 운동’과 같은 개혁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가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한 마르크스 공산주의 사상이 중국에 뿌리내리게 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역시나 하고 생각한 것은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이었다. 영화 곳곳에서 중국인들의 대사, 심지어 영국인들의 대사에서도 중국의 역사와 위업, 공자나 장자와 같은 사상가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부분은 연출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1997년 당시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나아가 엄청난 수의 중국인들을 응집시키는 데 성공한 영화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제1차 중일전쟁, 아편전쟁의 결과물인 난징조약으로 중국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난징조약이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편 중국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첫댓글 <아편전쟁> 영화를 보며 임칙서의 스승이면서 황상의 스승이기도 한 분이 아편에 중독 돼 있는걸 보면 청나라 당시에 아편 중독이 심각한 문제인 걸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황제가 임칙서에게 아편근절을 지시하게 되면서 이 영화가 시작하는데 임칙서의 결단력과 굳건한 의지가 돋보인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아편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점유하고 싶은 영국의 욕심에 의해 발발한 전쟁으로 그만큼에 중국 시장이 유럽에서도 욕심이 났다고 생각하면 그만큼 중국이 그 당시에도 대단한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은 홍콩을 빼앗기고 서구의 이권 침탈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대략 100년의 역사를 거쳐 1997년 홍콩 반환과 동시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찌 보면 그때의 치욕적인 아픔을 되풀이 하지 말자는 다짐과 동시에 앞으로 중국인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중국이 최고이고 황제가 천자이다 라는 생각을 가졌고 외세의 침략에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영국의 강력한 화력 앞에 무너지는 중국을 보면서 그러한 사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국을 거대한 시장이라고 표현한 영국의 강력함을 알게 되었고 홍콩이라는 영토까지 빼앗으며 그 당시 영국이 얼마나 강력한 나라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편전쟁 이후 중국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어 중화사상이 많이 약해지고 황제의 힘이 약해지는 그러한 계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편전쟁>에서 당시 청나라는 아편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 아편이 나라에 얼마나 악인지 알고서 아편 반입을 대대적으로 막았고, 이 과정에서 영국과의 트러블로 아편전쟁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본인들이 최고라 생각하고, 무기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쳐지는데,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해 왔던데로 목숨 걸고 싸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모습이 좀 답답해 보였습니다. 또한 영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돈을 줌으로써 해결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이란 나라가 그 당시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 이승호 : 퇴고하세요. 1) 뒤쳐 지는데 ->> 2) 해왔던데로 ->>
아편전쟁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장 처음 느낀 점은 같이 시대에 살고 있는 중국과 영국의 차이점이었습니다. 중국은 황제의 말이 법이고 무조건 실행 되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같은 경우는 의회가 따로 있어 의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모든 의사가 결정 되었습니다. 영국은 국민을 위해 일했고, 중국은 황제를 위해 국민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사상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고 느껴졌습니다.
또 중국의 아편전쟁 당시 많이 불리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영국에게 대한 모습을 보니 우월주의에 빠져있지 않았나 생각 들었습니다.
* 김기호 : 퇴고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아편전쟁으로 인해 중국은 서서히 몰락해 결국 서양열강과 일제에 수많은 피해를 입고 멸망하게 되엇습니다. 청 초기 청태조 누르하지 부터 시작되어 홍치타이, 강희, 옹정, 건륭제 대에 들어 강성한 나라를 만들어왔던 청나라가 정말 영화 속 황제의 말 처럼 한낱 조그만 섬나라 따위가 감히 청과 맞설 수 있을까 햇지만 실제론 서서히 그리고 무참히 청을 무너져 갓다는 것이 씁쓸하였습니다. 산업혁명의 늦음이 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남의 손을 빌어 개화가 되어야 하는지 서양의 우월적 의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중간중간 외세와 맞서고자 하는 중국내의 위인들의 모습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마음이 아프까지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홍콩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기까지의 100년의 세월 동안 다시 강성해진 중국구민들의 힘과 노력, 열정 등을 생각하면 다시금 중국은 쉬운 나라가 아니고 언제든 강대국으로써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나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김지환 : 퇴고하는 습관을 기르세요.
그 당시 서양에서는 중국의 비단, 차, 도자기 등이 인기였다고 합니다. 반면 중국인들에게 서양의 물건이란 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영국은 마약인 아편을 유통시켜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대륙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합니다. 이윽고 발생한 전쟁에서 중국은 패하게 됩니다.
후에 중국은 ‘양무운동’과 ‘변법자강 운동’과 같은 개혁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가 유물사관을 바탕으로 한 마르크스 공산주의 사상이 중국에 뿌리내리게 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과제 수행 : 김미중 강태용 이승호 김기호 김지환 박상준(6명)
이 영화를 보며 역시나 하고 생각한 것은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이었다. 영화 곳곳에서 중국인들의 대사, 심지어 영국인들의 대사에서도 중국의 역사와 위업, 공자나 장자와 같은 사상가의 위대함을 설명하는 부분은 연출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1997년 당시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나아가 엄청난 수의 중국인들을 응집시키는 데 성공한 영화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제1차 중일전쟁, 아편전쟁의 결과물인 난징조약으로 중국이 막대한 손해를 입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난징조약이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편 중국 근대화의 방향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