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오이
조근호
오이밭에 왕잠자리
꾸벅꾸벅 앉아 졸다
비행기소리에 놀라
훌쩍 날아가 버린 뒤
오이도
깜짝 놀랐는지
소름 잔뜩 돋았다.
미루나무
연줄이 거미줄처럼
미루나무에 걸렸어요.
달빛에 머리 감고
바람에 헹구어도
나무는 꽁꽁 묶여
움직이지 못해요.
까치도 재밌다고
까악 깍
까갓 까갓
참새도 수군수군
입방아를 찧는데
포근한 아침햇살이
살살 빗질해 줘요.
<동화>
별똥별 이야기
조근호
채림이는 오늘도 일기를 쓰고 난 후 창문을 열어 놓고 하늘나라 별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자기 이야기도 하고요, 별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도 즐겁거든요. 별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컴퓨터 게임과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무척 재미있거든요.
“채림아.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있니?”
별님이 물었습니다.
“별님아, 사실은 말야…….”
하면서 채림이는 마음속에 담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채림이네 반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점심시간만 되면 선생님 옆에 앉아서 점심을 먹으려고 온통 난리를 피웠습니다.
날마다 소란스럽게 쟁탈전을 벌이니까 선생님께서는 순번대로 선생님 옆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채림이네 반 아이들은 조금은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 날은 공부도 채림이만 못하고 힘도 약한 미순이 차례가 되었습니다. 채림이는 이 때다 싶어 미순이에게 양보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조금 미안했지만 선생님 옆에서 점심을 먹고 싶은 것을 어쩌겠어요? 그런데 미순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앙탈을 부리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공부도 못하는 게 나한테 대들어?’
채림이는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선생님이 옆에 계셔서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자기 자리에서 먹었지만 괘씸한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채림이가 친구들에게 미순이와는 놀지 말자고 선동을 했다는 이야기와 그 때문에 미순이가 괴로워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채림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별님의 눈빛이 조금씩 흐려지는 거였어요.
“별님아, 네 눈빛이 왜 그러니? 점점 흐려지고 있잖아.”
“채림아, 나는 네가 그런 아이인 줄 몰랐어. 우리 별나라 이야기를 해줄까? 너 별똥별 본 적 있지?”
하면서 별나라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가끔씩 볼 수 있는 별똥별은 사이좋은 별나라 친구들 사이에서 저만 잘난 체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별을 다른 우주로 내쫓는 거래요. 쫓겨나는 별똥별은 늦게서야 지난 날을 뉘우치며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운해서 눈물을 흘리는 자욱이 길게 꼬리로 남는 거랍니다. 사이좋은 별들만 남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반짝반짝 빛나는 거래요.
그러면서 채림이 너도 친구들을 괴롭히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상으로 내쫓길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겠어요?
채림이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엄마 아빠도 모르게 다른 세상으로 훌쩍 쫓겨 간다고 생각해 보니 아찔했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선생님과 친구들도 모르게 채림이만 혼자 엉뚱한 다른 세상으로 쫓겨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별님아, 나는 어쩌면 좋으니?”
채림이는 애원하듯이 물었습니다.
“간단해, 내일 미순이와 친구들에게 화해를 해.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해 주면 되지 않겠니?”
“그러면, 나 다른 세상으로 쫓겨 가지 않는 거야?”
채림이는 울먹이면서 물었습니다.
“그럼, 그렇게만 하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무척 좋아할 거야.”
별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채림이는 내일 미순이에게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후련하였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님들은 다른 날보다 훨씬 반짝거리며 채림이에게 잘 자라고, 고운 꿈꾸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약 력>
• 『충청일보』신춘문예 당선,『시조문학』추천으로 문단 데뷔(’84)
• 『문학사랑』신인상 문학평론 당선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 한국시조문학상, 정훈문학상 대상, 대전문학상
한국동시조문학상, 한밭시조문학상, 충남외솔상 수상
• 홍조근정훈장 받음
• 아산시 모산초등학교장 정년퇴임
♠ 시 집: 『겨울 엽서』, 『그대의 강에 흐르는 갈채』,
『달빛 밟기』, 『바람의 동행』
♠ 평론집: 『유동삼의 시조와 삶』(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