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만다라>
최봉호
‘47년, 보령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옥바라지를 해야 하는 할머니를 따라 대전에서 서대전초와 삼육고등공민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김성동 작가가 작년 9월에 영면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전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당했다. 그는 빨갱이의 자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라벌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열아홉 살 때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했다. 그는 출가한 이유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연좌제에 묶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없었고, 군인이 되더라도 장교가 될 수 없었으며, 사법고시에 붙을 경우에도 임용의 길이 막혀 있었다. 이게 연좌제에 따른 ‘삼불(三不)의 덫’이다. 출세를 꿈꾸기는커녕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막했지. 그래 고3 때 출가해 절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절 아니고는 갈 곳이 없었고, 중 아니고는 할 짓이 없었던 거다.”
<만다라>는 김성동 작가가 열아홉 살에 출가해, 20대 청춘을 절에서 지낸 후 환속한 서른 살 즈음인 1978년에 쓴 소설이다.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는 불교계에서 죽이겠다고 협박해 피해 다녀야 했다고도 한다.
<만다라>를 다시 읽게 된 계기는 그가 대전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한 사람이라는 얘길 듣고 이 소설이 생각나면서 다시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 대전 중앙시장의 헌책방에서 1979년에 출판된 책이 보이기에 구입해 읽어보았다. 전에 스님들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엔 스님들은 수양을 많이 쌓아 번뇌에서 벗어나 고민이 없는 고매한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래서 누가 ‘뭐 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산에 들어가 스님이 되면 좋겠지!’라는 답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산하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해탈, 성불 등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취업, 결혼, 자녀를 갖는 것 등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나 싶다.
불교의 본질은 보리(菩提), 즉 깨달음이기 때문에 만다라는 수행자가 명상을 통하여 "불성"과 합일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깨달음의 안내도라는 의미가 있다.
만다라 소설은 작가를 대신한 법운(法雲)수좌가 화자이고, 지산(知山)이라는 땡초를 통해서 화자의 고민을 풀어나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법운은 ‘병속의 새’를, 지산은 ‘무(無)’字 화두를 가지고 깨우치고자 고민한다. 나도 법운이나 지산과 같이 어떤 화두를 잡아 매일 깊은 생각을 하고 정진해야 하는데,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지산은 술·담배도 하고, 고기도 먹고, 여자에 관심도 쏟고 타락한 땡초처럼 행동을 한다. 법운은 지산을 만나기 전엔 그저 우직하게 ‘병속의 새’ 화두를 가지고 선(禪)만을 추구하는 수좌였다. 그러다가 지산을 만나 지산의 땡초 모습이외 도를 튼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산에게 빠져 들었다. 지산이 젊은 나이로 입적하였을 때는 다비식도 손수 해 주었다. 다비식 도중 화염 속에서 새가 날아가는 환영을 보고 그동안 풀지 못하고 고민했던 ‘병속의 새’ 화두를 깨우쳤다. 활활타는 장작불 열기의 어떤 기운이 새처럼 보였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여러 구절 중 다음과 같은 문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팔만사천 번뇌를 등에 지고서 아프게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결국 인간은 죽는 것이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것이고, 죽어서 죽은 그림자 까지도 혼자 가야 하는 비정하게 철저한 개체이다.”
왜 이 문구가 마음에 닿았냐하면, 혼자 살아가야하는 것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항상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 문구를 보고, ‘삶은 혼자 살아가는 거구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독야청청(獨也靑靑)이란 단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심오한 불교소설을 쓴 김성동 작가는 집착에서 벗어나고 깨우쳤을까? 그는 죽기 전 인터뷰에서 ‘보이는 것 없는 길 위에서 홀로 앓기, 인생사 그렇게 덧없다’라는 얘기를 했다.
“불경(佛經)은 가르치길 일체가 무상하니 집착을 놓으라 한다. 그러나 무슨 수로 집착에서, 욕망에서 벗어나겠나? 소설이라는 반성문을 통해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보기를 거듭했지만 가벼워지기 어려웠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건 늘 외로움이라는 놈이었다. 실존의 고독, 이건 어쩔 수 없는 화두다. 더 큰 덩어리에서 보면 인생은 결국 허무한 것이고.”
내가 두 번 읽은 책, <만다라>의 저자 김성동 작가는 꽉 막힌 공간인 병속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가 사방이 막힌 병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심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답답할 것이다. 김성동 작가는 이제 좁은 그곳에서 벗어나 불사조가 되어 널따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기를 빈다.
첫댓글 최봉호 쉴가님,
올려주신 수핗 잘 읽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