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멈춰 서고, 누군가는 뛰어넘는다!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 사무엘하 6장 13-15절
다윗의 행렬이 시작된다.
이 걸음이 마냥 행복한 설렘과 기대 위에 세워진 건 아니었다. 앞서 3만의 무리를 동원하고 비파와 수금과 모든 제악으로 찬양하며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고자 했던 다윗의 마음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일어난 웃사의 죽음을 통해 크게 좌절되었다(삼하 6:3-8).
다윗이 얼마나 당황하고 두려웠을까? 한편으론 하나님께 서운했을 것도 같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가 보란 듯이 거절됐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도 삶에서 이런 충돌을 맞닥뜨린다. 영광스러운 목적을 향해 가는 여정 중에 뜻하지 않게 우뚝 솟은 커다란 장벽을 만나면 우리의 선한 동기마저 꺾여버릴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장벽 앞에서 우리가 품은 갈망의 크기가 드러난다. 장애물에 좌절할 것인가, 높이 뛰어넘을 것인가?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 교수가 아들에게 남긴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들아, 네가 인생을 살며 어떤 벽에 부딪힐 때 그 벽은 너를 막기 위한 게 아니야. 그 벽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막아주기 위한 것이란다. 너를 그곳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지.”
그러니 삶의 장애물, 인생의 벽 앞에서 절망하지 말라는 거다. 분노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장벽을 넘어 계속 그 길을 가라는 것이다. 인생에 장벽이 있는 건, 우리를 내몰거나 주저앉히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깨닫게 하려고 있는 것이다.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장벽 앞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인생의 장벽은 간절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그러니 장벽 앞에 서면 자신의 갈망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추구하고 갈망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만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거라면 장벽을 뚫고라도 가야 한다. 이 절실함의 차이 때문에 삶의 장벽은 누군가를 멈춰 서게 하고, 누군가를 더욱 목마르게 만든다.
다윗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중심에서 소용돌이치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향한 목마름 때문에. 그래서 그 갈망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기 위해 말씀 앞에 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실패했던 자리, 좌절됐던 지점,
거절당한 그 장소로 돌아가서 첫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예배란 내가 드리는 것으로 완성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실 때 완성되는 것임을 고백하면서.
결국 인생의 동력은 갈망의 크기로 결정된다. 갈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생은 전진한다. 갈망이 크고 깊을수록 인생의 보폭과 크기가 달라진다.
가장 높고 위대한 것을 갈망하라.
그것은 단연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 영광을 끊임없이 갈망하라. 그럴 때 우리 인생은 누구도 따라잡기 힘든 동력을 갖게 될 것이다.
- 여섯 걸음, 원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