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외 1편
권혁웅
성게는 가끔 무성생식을 한다 짝이 없어도 주니어를 낳는다는 말씀 아니,
정확히는 어린 자신을 낳는 거지 누군가 알 맛을 보기 위해 밤송이를 까듯
몸을 뒤지기 전까지, 성게는 긴 족보를 혼자서 작성해 나간다 아브라함 성게
가 아브라함 성게를 낳고 그가 장성하여 다시 아브라함 성게를 낳고… 영생
이란 아메바나 짚신벌레, 기껏해야 성게나 도마뱀의 삶을 누리는 거라고! 그
래서 노인들은 중얼거리는 것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그건 성게처럼 살지 않
고 유성생식을 하겠다는 말씀, 그래서 노인대학에서는 오늘도 로맨스가 그
치지 않는 것이다 밤송이처럼 뒷방에 웅크려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달은 곰보 아저씨
달은 곰보 아저씨, 어떤 꿈은 그렇게 화병(火病) 같아서 이제는 어떤 아이도 장래희망을 대통령이나 장군이라고 적지 않지 꿈이 다트판이라면 우린 우리 얼굴에 대고 바늘을 꽂았던 거야 달은 곰보 아저씨, 내 어릴 적 소보로빵을 곰보빵이라 불렀지 자주 가던 삼보제과 주인은 살짝 얽었는데 곰보 아저씨 소보로빵 주세요 아니 소보로 아저씨 곰보빵 주세요였던가? 어느 쪽이든 상처는 두툼하고 달콤하고 부스러지기 쉬웠지 달은 곰보 아저씨, 자전과 공전 주기가 같아서 달은 한 번도 뒷면을 보여주지 않지 그러니 달은 곰보 얼굴을 내세워 자기 뒤통수를 숨기고 있었던 거야 달더러 고개 좀 돌리라고 해봐 그냥 저물어 버리잖아? 달은 곰보 아저씨, 천왕성의 1년은 지구의 84년이라서 오래 살아야 생일이 기일이지 돌잔치 지나면 금방 미수(米壽)야 수성에서는 88일이 지구의 1년이어서 사춘기가 되어봐야 걷지도 못하지 평생이란 그런 것, 한 번에 흘러가거나 지긋지긋하게 흘러가는 것 관리비 고지서처럼 달 아저씨만 시간을 지켜 찾아오지 한 입 베어 문 곰보빵처럼 달이 다시 저물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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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충북 충주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1997년 《문예중앙 》시부문 당선
2000년 제6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
저서로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 』『시적 언어의 기하학 』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미당문학상 등 수상.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전자주소 : hyoukwo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