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보셨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가 생각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영화의 설명은 못 드립니다. 솔직히 제가 설명하는 것 보다 한 번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잡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딸”이라고 생각하셔도 되고, “부모와 자녀”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오늘 저는 그저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나 한 가정의 자녀 양육하는 과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가정들에게 주는 교훈을 같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엘가나의 가정
엘가나의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부인을 통하여 얻은 자녀들이 있었지만 사랑하는 부인을 통해서는 처음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아이 없이 고생하다가 어렵게 얻은 아들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겠습니까?
그 아들의 출생은 특별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얻었고, 아이들 주시면 하나님께 드린 다는 서원 속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 27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내가 아이를 위하여 기도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가 기도한 바를 허락하셨다라고 간증하고 있지요. 이런 간증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이런 간증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엘가나의 아내인 한나는 약속대로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정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이렇게 고백하지요. 사무엘상 1장 28절입니다.
(삼상 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러므로 나도”,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해 주셨기에 나도 하나님에 대한 나의 약속을 실행합니다. 라는 것이지요. 아이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엘리의 제사장의 성막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인 엘가나가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그리고 부모의 손을 떠나 그곳에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삼상2:11을 같이 볼까요.
(삼상 2: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가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아이는 엘리 제사장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합니다. 젖 뗀 아이가 몇 살이었을까요?
그 꼬마를 하나님을 섬기도록 제사장에서 맡기고, 본인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꼬마가 부모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처음 그이 눈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러 나왔겠습니까?
어려서 부모님을 떠나 보셨습니까? 저희 집이 살기가 좀 힘든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위로 형님과 누님이 계시고, 밑으로 여 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형이 저보다 3살 위입니다. 형과 누나는 학교를 다니고, ㄷ동생은 아직어리고, 막내고, 저는 힘든 시절 많은 날들을 외갓댁에서 자랐습니다. 마치 외삼촌이 아이가 없어서 아들처럼 잘 돌보아 주셨지요. 아버님이나 어머니가 저를 외갓집에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남기고 가면 얼마나 서럽던지요? 어린 것이 자존심은 있어서 뒤뜰에 가서 소리 없이 얼마나 울었던지요? 저를 데리러 온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 당시야 편지 밖에 더 있습니까? 편기가 온 날부터, 그때부터 매일 신장로를 향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혹시 버스가 내리면 어머니가 오시지 않나? 택시가 들어오면 아버님이 아닌가?
그런데 이 꼬마는 그렇게 제사장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심부름 꾼으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런 아들을 위하여 그들이 부모로써 사무엘에게 할 수 있던 것은 이것 하나입니다. 19절의 말씀을 같이 볼까요?
[19]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말씀을 통하여 볼 때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납니다. 이때 겉 옷을 지어다 주는 정도 였습니다. 일 년 만의 만남, 얼마나 어색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에 엘가나와 한나는 제정신이었을까요?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앙도 좋지만 이 정도면 도가 넘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를 망쳐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부모로써의 책임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이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미 알고 있는 성경적인 대답 말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생각으로 답해 보십시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아이는?
그렇다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망나니가 되었습니까? 부모님 사랑 못 받고 자랐지 않습니까? 부모가 거의 팽개치다 시피 한 것 아니겠습니까? 부모님들의 따뜻한 품에 한 번도 안겨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자라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사람의 말 한 번 들어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라납니다. 18절의 말씀을 같이 볼까요?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이는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 앞에서 섬겼습니다. 사무엘은 부모님 앞에서는 자잘 수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21절을 볼까요?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1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납니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서 점점 자라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그의 자라남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6절을 볼까요?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비록 부모님의 손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섬기고, 하나님 앞에서 자라나고, 사람들과 하나님과 은총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혼자 였습니다. 부모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응석을 받아 줄 사람도 없습니다. 잘못한 것에 대하여 야단치는 사람들은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의 어리광을, 그의 나약함을 보듬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이겠지요.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 받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자란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 됩니까?
결국 사무엘은
결국 사무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가 됩니다. 우리 사무엘상 7:3을 볼가요?
(삼상 7: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며, 그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합니다.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엘리가 죽고, 그의 두 아들이 죽고, 하나님의 법궤는 불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긴 지도자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고, 성경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시대 존경받는 최고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사무엘의 자라남을 되돌아봅시다.
그에게 무엇이 있었습니까?
부모님들의 지극 정성이 있었습니까?
매일 저녁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인생 상담을 했겠습니까?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따뜻한 밥 한 그릇 해 먹일 수 있었습니까?
그의 아버지가 인맥을 동원해서 그의 앞길을 인도해 주었습니까?
모두 아닙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그럼데 여러분! 본문에는 없지만 제사장의 집에 떨구고 가는 자기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맡기고가는 부모의 발 걸음, 떨어 졌겠습니까?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그렇게 떨구고,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그 눈물이 기도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 엘가나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 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데, 할 수 있는 그것 얼마나 매달렸겠습니까?
우리가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까? 기도하시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기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매일 잔소리 할 수 있고, 나의 능력으로 아이들을 바로 키울 수 있다는 쓸데없는 자만심 아닙니까?
그냥 하나님 앞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그것 외에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셔서 암흑시대를 여는 샛별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를 어떻게 키우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키우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 자녀들을 바로 키우는 열쇄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