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안 의사의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서울 2011-03-26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11-03-26
안중근 의사 추모하는 태극기 물결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역사음악어린이합창단원들이 추모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안중근 의사 추모가 합창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역사음악어린이합창단원들이 추모가를 합창하고 있다.
조동성 관장, 안 의사 약전 봉독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이 안 의사 약전을 봉독하고 있다.
안응모 이사장 추념식사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안중근의사 숭모회 안응모 이사장이 추념식사를 한 뒤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안 의사의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헌화하는 안중근 의사 외손녀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의사 순국 101주기 추념식에서 안 의사의 외손녀인 황은주 씨가 헌화하고 있다.
안중근의사 순국 정신 되새겨야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친손녀 안연호씨(74)가 지난달 미국에서 별세했다고 전한다. 반면 안 의사가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외고손자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ㆍ51)가 9일 일본 외무대신에 임명됐다는 소식이다. 두 집안의 엇갈린 운명에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4분에 일제는 안 의사에 대해 교수형을 집행했다. 이에 앞서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사람을 죽였으니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라는 뜻을 전했다. 안 의사는 25일 동생들과의 마지막 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 기개 떨친 의거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은 죽으므로 죽음을 일부러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 인생은 꿈과 같고 죽음은 영원하다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
홍범도(洪範圖)ㆍ김좌진(金佐鎭) 장군의 청산리 전투가 항일독립전쟁 최대의 승첩이라면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독립운동 사상 최대의 쾌거였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은 안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대한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처단한 곳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플랫폼에 울려 퍼진 총성 네 발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대한국인'의 용장(勇壯)한 기개를 한껏 떨친 장쾌한 의거였다.
안 의사는 1909년 이전부터 수백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넘나들며 일본 군경과 싸우다가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민족의 원수, 동양 평화의 적 이토를 몸소 처단하고자 결심했다. 안 의사는 그 해 10월 21일 동지 우덕순 유동하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 하얼빈에 도착해 그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10월 26일 오전 9시30분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와 멎고 이토가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각국 영사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권총을 뽑아 들고 뛰쳐나간 안 의사는 이토에게 총탄 네 발을 연발했다. 첫 발은 이토의 앞가슴에, 제2탄은 옆가슴에, 제3탄은 배를 관통했다. 의거가 성공하자 안중근 의사는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치고 태연하게 러시아 헌병에게 붙잡혔다.
하얼빈역에서 300m쯤 떨어진 만주 둥칭(東淸)철도국 사무실로 끌려간 안 의사는 "나는 대한의병 참모중장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적장을 총살, 응징했다"고 당당히 진술했다. 러시아군에서 일본영사관으로 넘겨진 안 의사는 그 뒤 200여 일 동안 뤼순 감옥에서 고초를 당하다가 이듬해 3월 26일 조국을 위해 귀중한 한 목숨을 바쳤으니 나이 31세였다.
한스럽고 통탄스러운 사실은 안 의사가 순국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아직까지 무덤과 유해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못난 후손들은 참으로 안 의사를 비롯한 선열들께 면목이 없다.
-나라 위한 희생의 교훈
아직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안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일본이 매장지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며 관련 자료도 모두 소각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하얼빈 영사가 '안중근의 유해를 절대로 가족에게 인도하지 말라'고 관둥 도독부에 보낸 전문이 최근 발굴되기도 했다. 또 중국이 안 의사의 매장지에 아파트를 지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해마다 안 의사의 의거일과 순국일만 되면 기념관을 새로 크게 짓느니 세미나를 여느니 하는 것보다 안 의사의 거룩한 순국정신을 제대로 되새겨보는 것이 좋겠다. 지금 우리는 또 다시 국가적으로 난국을 맞았다. 국난 극복의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안 의사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황원갑 2011-03-25
추모사 낭독하는 임성남 공사
26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大連)시 뤼순(旅順)구에 있는 뤼순감옥박물관에 열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추모식에서 추모단을 대표해 주중대사관 임성남 공사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아파트로 변한 안중근 의사 묘역 추정지
아파트가 들어선 안중근 의사 묘역 추정지. 뤼순감옥 뒤편 야산이던 이곳은 최근 개발로 아파트 단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 정부 조사단은 중국과 공동으로 2008년 이곳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나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뤼순감옥 담장 안쪽에서 바라본 안중근 의사 묘역 추정지. 뤼순감옥 뒤편 야산이던 이곳은 최근 개발로 아파트 단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 정부 조사단은 중국과 공동으로 2008년 이곳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으나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2011-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