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2일(주일) 스물두째 날 묵상
나의 값은?
말씀
고린도전서 6장 12-20절
요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사신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묵상
오래 전 영국 런던의 한 악기(樂器)점에 남루(襤褸)한 복장(服裝)의 중년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 남자는 묵직하고 낡은 바이올린 하나를 내밀며 부탁(付託)했습니다. “이 바이올린을 5달러에 사주시지 않겠습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요.” 악기점 주인 벤츠는 불쌍한 나그네를 돕는 셈 치고 5달러를 내주고 낡은 바이올린을 받았습니다. 중년의 남자는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한 후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벤츠는 받아든 그 묵직하고 낡은 바이올린 활을 당겨보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덕지덕지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 속을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이 쓰여있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1704년 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
그것은 17세기 최고(最高)의 현악기 장인인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이었습니다. 벤츠는 급히 나그네를 찾았으나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습니다. 그 바이올린은 지금도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최고의 명품(名品)입니다.
그 악기를 팔러 온 사람은 그 값을 몰랐던 것입니다. 근데 이 사람만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다. 혹 우리도 우리 자신의 값을 이토록 모르고 있지는 않을까요? 내 인생을 5달러짜리로 여기며 되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자기를 싸구려로 조롱(嘲弄)하며 사는 자조(自嘲)인생은 5달러 인생을 만듭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存在)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값진 삶으로 여기며 살아내는 삶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명품 인생을 창출(創出)해 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값은 얼마일까요? 아니 우리가 우리 값을 매길 필요(必要)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가격표(價格表)가 붙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값을 매기기 전,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값을 매기셨습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우리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은 그 값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참으로 값진 존재입니다. 예수님짜리입니다. 그러므로 값싼 존재로 되는대로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이 사실(史實)을 알려주시고자 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도 같은 가치(價値)를 지녔음을 깨닫게 해주시고자 함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天使)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대강절은 내 가치를 회복(回復)하고, 이웃의 가치를 회복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가까울수록, 우리의 가치도, 이웃의 가치도 예수님짜리로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눈을 비벼보십시오. 저 형제가 예수님 짜리로 보이십니까?
찬송
436장(통493)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기도
예수님, 값싼 존재인 줄 알고,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모르고 그 형상(形狀)을 일그러뜨리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나를 구원하신 것을 잊고 죄와 육체의 소욕(所欲)대로 살았습니다. 내 가치를 폄하(貶下)하고 살다보니, 내게 허락하신 사람들의 가치도 헤아리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우리의 값을 내가 매기기 전 하나님께서 매기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성전(聖殿)의 가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게 허락하신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 사용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 가운데, 내 가치를 잘 지켜나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학생(學生)들을 위해 한자어를 병기(倂記)하였습니다. 묵상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範圍)에서 약간씩 문체(文體)와 어휘(語彙)를 수정(修訂), 설명과 문구를 추가(追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