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봉건 영주였던 사야가는 22살이던 1592년 군사 3천명을 거느린 왜군 선봉장으로 출병 했다가 조선의 문물에 감동
조선에 귀화했다. 그는 조선장수로 울산과 경주.영천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조선군에 전수 했다.
그 공으로 선조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 벼슬을 받고 김충선 이란 이름을 하사받은뒤 임재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있따라
공을 세웠다.
전란이 가라앉자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하고 경북달성군 우룩 마을에 정착하였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김충선들의 후손이 지금까지 모여사는 사성 김해김씨집성촌이며 해마다 3월이 되면 후손들이모여(일본관광객 필수코스) 일본후손 포함.제사를 지낸다.
둘째딸 현민 /아벨라
마을입구 단풍나무 가로수
몇 가구가 모여 사는데 이름은 잘 모름니다.
청도 근교라 감나무가 아주 많습니다. 여기서 커는 감은 씨앗이 없는데 재넘어 대구에 (고개하나넘어오는데)오면 같은 종자라도 씨가 생김니다. 신기합니다
첫댓글 가을이 주저리주저리 익어 가는 모습 귀경 잘하고 갑니다.
제레마노씨 언제 한번 만나긴 만나보고 싶은데
올해 가기전에 상봉한번 해봅시당.
좋습니다 저도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