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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1차 집단학습
1) 변증법이 형식논리학을 계승한 점과 다른 점
※유물론-자연,존재,물질을 일차적/관념론-정신,사고,의식을 일차적 .물질-인간의 감각에 의해 주어지고, 우리감각에 의해 복사.촬영.모사되지만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 물질통일성.불멸성.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 운동량 보존사상.→다른 것으로 상호전화는 무에서 물질생성,신에 의한 세계창조 부정
※변증법과 형이상학
.변증법-모든 사물이 관련되어 있고 변화하고 있다는 입장
.형이상학-사물의 상호관련성을 부인하여 사물을 고립적으로 보고, 사물의 운동.변화를 부인하여 고정적.정지적으로 보는 철학적 견해
고대에서 근대까지 형이상학이 지배적인 위치: 이유인즉 당시 인간의 인식이 낮은 단계
주위 생물을 각각 분리시키고 그 정지된 모습을 개별적으로 관찰하고 연구. 제자리 가만히 있는 것은 식물, 움직이는 것은 동물로 1차 분류-동물은 다시 어류, 조류, 파충류,양서류,포유류로 나누고, 포유류는 다시 개, 소,말, 토끼, 인간 등으로 나누고 각각의 구조와 특성을 연구해야 했다. 인간인식이 낮은 단계-외계의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우선 변화하고 운동하는 과정에 있는 것을 고정시키고 상호연관 속에 뒤엉켜 있는 것을 분리해서 봄-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이자 연구방법
변증법과 형식논리학 모순에는 심원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유와 실재, 더 특수하게 말하면, 논리와 외부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강단학파와 변증법론자가 취하는 정반대의 입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형식논릭학이 본질적으로 정신에 숨겨져 있고 그것이 사회.자연과 필연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라고 가정하며, 또 그렇게 주장한다. 중요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회피할 뿐이다.
변증법적 논리학은 사고와 현실의 법칙과 형식의 관계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취한다. 인간의 정신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 실체와 구조가 사회적 관계와 물리적 세계에서 발생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으며, 사고의 진화는 유기적 진화의 전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단언한다.
형식논리학자들의 논리학이 고립된 반면, 변증법적 논리학은 이전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훌륭하게 실천적 행위로 이끄는 합리적인 방법을 마련하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논리학는 과학이다. 모든 과학은 다른 물질적 운동 양식과 관련을 맺고 있는 특정한 운동 양식을 연구하고, 그 특정한 운동의 일반적인 법칙과 특별한 양식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논리학은 사유과정에 과한 과학이다. 논리학자는 인간 두뇌에서 진행되는 사유과정의 구체적 흐름을 연구하며, 그러한 정신적 과정의 법칙.형식.상호관계를 공식화한다.
변증법은 역사발전과정에서 형식논리학으로부터 생겨났다. 형식논리학은 최초로 사유과정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종합한 위대한 체계이다. 그리스 사상의 정점인 형식논리학은 고대그리스인들의 철학적 업적들을 집약해서 완성한 것이다. 그리스사상을 종합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유에 관한 여러 연구 업적들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비판하고, 체계화해서 형식논리학을 창조했다.지난 2000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은 많은 사람들의 사유방식을 주도해 왔다.
변증법도 수 세기에 걸친 지적 노동을 포괄하는 혁명적 과학 운동의 결과였다. 변증법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유럽에서 발생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사상을 대표하는 뛰어난 철학자들의 지적 노력의 완결판이다. 헤겔은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포괄적이고 완전히 의식적인 방식으로 변증법적 운동의 일반 형태를 상세히 설명”으로써 최초로 논리학을 변화시킨 위대한 사람이다.
근대의 변증법은 형식논리학이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사유방식일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정확한 사유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형식논리학 그 자체는 분명히 불충분했고, 그것이 지닌 일부 타당한 요소들은 변증법으로 수용했다.
2) 형식 논리학에는 3가지 기본법칙이 있다.
1.동일율-A는 항상 그 자체와 똑같거나 동일하다. 대수학의 용어로는 A=A로 표시
이의 기본사상은 어떤 사물이 항상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곧 모든 조건에서 그 사물은 항상 동일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즉 주어진 하나의 사물은 어떠한 순간에도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질은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다.” 즉, 물질은 항상 물질로 남아 있다.
한 사물이 그 자체로 완전히 동일하다는 이 무조건적인 주장은 사물과 사유의 본질에서 파생하는 차이점들을 무시하고 있다. 만약 A가 항상 A와 동일하다면 A는 결코 A-(nonA)와 동일할 수 없다.
2. 위의 결론은 형식논리학의 둘째 법칙인 모순율에서 명확해진다. 모순율에 따르면 A는 A-가 아니다. 형식논리학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A는 A와 동일하고 따라서 A는 결코 A-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형식논리학의 둘째 법칙인 모순율은 동일율의 필수적인 보완물이다. 예) 인간은 비인간적일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는 비민주적일 수 없다. 임노동자는 임노동자가 아닐 수 없다.
모순율에 따르게 되면 사물의 본질과 사물에 관한 사유의 본질에서 파생하는 차이점들을 무시하게 된다. 동일율과 모순율에 따른다면, 동일성과 차이점은 완전히 다른 것이며 그것들 간의 상호관계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사물과 사유 모두에서 상호배타적인 특징을 의미하는 범주들이 된다.
3. 사물의 상호배타적인 성질에 관한 규정은 형식논리학의 셋째 법칙에서 명확하게 표현된다. 배중율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두 개의 상호 배타적인 사물 가운데 하나이며, 또 하나이어야만 한다. A는 A와 같다면 따라서 A는 결코 A-가 될 수 없다. 서로 상반되는 두 문장이나 상황이 존재할 경우, 양자 모두 동시에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없다. A는 B든지, B가 아니든지 둘 중 하나이다. 하나의 판단이 옳다는 것은 항상 그 판단과 대립되는 판단이 틀린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며, 또한 그 반대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3번째 법칙은 처음 두 개의 법칙을 종합한 것이며, 그 법칙들에서 도출된 논리적 귀결이다.
뉴턴의 역학 법칙만큼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에 관한 법칙은 객관적인 세계에서 실제적인 내용과 근거를 지니고 있다.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적 논리학을 모두 포함한 우리의 사유 방식은 자연 그 자체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상호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물질적 실재의 어떠한 특징이 형식논리학의 사고법칙에 반영돼 개념적으로 재구성된 것일까?
동일율은 모든 사물들이 다양한 현상적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그 사물 고유의 특성을 유지한다는 실제 사실을 정식화한 것이다. 모든 실재에 본질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면 동일률응 항상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동일율을 따르지 않고서는 행동할 수도, 사유할 수도 없다. 만약 우리가 매 순간이나 매일 자신을 똑같은 사람으로 인식할 수 없다면, 또는 기억 상실증이나 기타 정신적 충격으로 자기 동일성에 대한 의식을 잃어버렸다면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또한 동일율은 인긴의식 못지 않게 다른 영역에서도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다. 어느 시기, 어느 장소든 그 법칙은 사회생활에 적용된다.
유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비교함으로써 성립하는 정확한 분류는 모든 과학적 연구 활동에서 필요한 기초이며 제1단계에 해당한다. 동일율이 없다면 분류 즉 똑같은 종류에 속하는 사물들을 묶고 다른 종류에 속하는 사물과 집단들을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지적 활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은 부분적으로 동일률에 의존하고 있다.
동일율은 다양성 속에서 유사성을, 변화 속에서 연속성을 인식할 것, 서로 분리돼 있으며 명백히 서로 다른 물체와 실재들 사이에 존재하는 기본적 유사성을 찻아내는 것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통일의 진정한 토대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현상적 변화 속에서 연속성과 단절성을 추적하는 것 등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노동자들이 직업이나 민족,인종의 경계를 초월한 공동의 계급적 이해를 어디서나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분명히 노동자들의 의식수준의 커다란 성장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동일률에 포함돼 있는 진리를 인식하는 것은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모순율은 공존하는 사물들과 사물들의 종류들, 또는 같은 사물의 연속적 상태가 상이하고 서로 배제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공식화한 것이다.
차이점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모순율은 동일율만큼이나 정확한 분류를 위해 필요한 법칙이다. 동일성이 없다면 분류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분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배중률은 현실에서 사물들이 서로 반대되고 상호 배제한다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 중 어느 하나이어야만 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거나 다르다. 나는 인간과 동물 중 어느 하나이어야 한다. 나는 동시에 똑같은 의미를 가진 두 가지 다가 될 수는 없다.
형식 논리학의 법칙들은 실제적인 내용과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 그것들은 사유법칙이며 동시에 사회와 자연에 관한 법칙이다. 그렇기에 그 법칙들은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다.
3) 형식 논리학의 한계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시간은 존재의 기본적인 요소다. 그러므로 A는 A와 동일하다는 공리는 사물이 변하지 않는다면, 즉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과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A는 A와 동일하다는 공리는 한편으로는 모든 지식의 출발점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오류의 출발점이다. 동일한 하나의 법칙이 어떻게 동시에 올바른 지식과 오류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이 모순은 동일율이 두 측면의 성격 즉 그 자체가 진리와 오류를 갖는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동일율은 사물을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으로 여기는 한, 즉 변화를 무시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진리다. 즉 동일율은 일정한 한계는 한편으로는 해당 사물의 실제 발전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실천적 목적에서 드러나는 본질적인 성격에 의해 주어진다.
과학적 사유는 기술을 포함한 일반적 실천의 한 부분일 뿐이다. 개념에서도 오차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A는 A와 동일하다는 공리에서 출발하는 형식논리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공리에서 출발하는 변증법적 논리학에 의해서 확립한다. 상식의 특징은 변증법적 오차를 체계적으로 초과한다는 사실이다. 오차의 허용치가 클 경우에는 형식 논리학의 법칙으로 충분하지만, 미세한 오차만이 허용될 때에는 새 도구를 창조해 사용해야만 한다. 지적 생산의 영역에서 이 새 도구를 바로 변증법적 논리학의 관념들이다.
A와 동일한 A 대신에 이제 2A나 1/2A와 동일한 A가 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A는 A이다라는 것과 A는 A가 아니다.라는 것이 모두 진리라는 모순에 부딪히게 됐다. 동일한 A에 덧붙여 2A나 1/2A와 같다.
이것은 A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A는 단순히 형식 논리학가 말하듯이 고정되고 불변적인 범주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A의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실제로 A는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A는 A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것이다. 그것은 A를 매우 포착하기 어렵게 만든다. A를 잡아두려는 순간 A는 다소 다른 것으로 변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결코 A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
A가 단순히 A가 아니라면 도대체 A란 무엇인가 하고 물을 것이다. 변증법적 대답은 A는 A이면서 A가 아니라는 것이다. 형식논리학처럼 A를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A로서 파악하면 A의 한 면만을 보고 다른 면, 즉 부정적 측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A로서 취해진 A는 완전히 실현될 수 없고 실제도 발견될 수 없는 추상이다.
동일성이 실현되거나 상실되는 과정에서 A가 그 자체의 출발점과 다른 것으로 변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만약에 우리가 A에 충분히 더하거나 뺀다면 그것은 특정한 질을 변화시켜 다른 것 즉 새 질로 전화한다. A가 자기 동일성을을 상실하는 이러한 임계점에서 지금까지 타당성을 갖고 있었던 동일율은 완전히 오류로 변한다.
변증법적 용어로 양적변화가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 질을 낳은다. 양이 질로 변하는 임계점의 바로 그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학을 포함한 지식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고 왜 특정한 순간에 양적 변화가 새 질을 낳고 또한 그 역이 성립되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동일율이 실재의 특정한 모습을 바르게 반영한다 할지라도 다른 것을 반영하는데는 실패하거나 그것을 왜곡한다. 더구나 동일율이 왜곡하고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은 좀더 충실하게 묘사하는 상황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근본적이다.
4) 형식 논리학의 한계에 대한 재론
형식 논리학의 근본적인 다섯 가지 오류 또는 허구적인 원리를 밝힌다.
(1) 형식 논리학은 정적인 세계를 요구한다.
형식논리학의 법칙들은 운동,변화.발전을 배제한다. 그 법칙들은 운동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나 운동의 합리적 의의를 명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법칙들의 내적 논리가 필연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이 간접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도록 제약한다.
(2) 형식 논리학은 사물들 사이에 넘을 수 없은 장벽을 세운다.
형식 논리학은 한 사물과 다른 사물 사이, 그리고 동일한 사물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연속적인 국면과 객관적인 실재가 우리 정신 속에 반영된 것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우기 때문에 그릇된 것이며 불완전하다. 형식논리학은 모든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긍정하거나 무조건 부정한다. 참과 거짓 사이에는 아무런 매개물도, 과도적 단계도, 연결고리도 없다.
만약 우리가 형식논리학의 법칙을 취한다면, 모든 개개의 사물이나 어떤 사물의 모든 개개의 단계가 다른 모든 사물이나 단계와 절대적으로 무관하다고 추정해야만 한다. 세계라는 것은 모든 것이 다른 어떤 것과도 분리돼서 완벽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미리 가정된다.
이런 철학적 입장은 주관적 관념론 철학인데, 이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물이라도 언제나 다른 어떤 것으로 이행하거나 그 자신을 변화시킨다. 이를 위해 그것은 이전에 그것을 다른 것에서 분리시켰던 경계를 필연적으로 타파하고 소멸시킨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사물들을 분리시키는 움직일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은 없다.
(3) 형식 논리학은 동일성에서 차이를 배제한다.
형식논리학이 동일성과 차이를 가장 첨예하게 구분한다. 그것들은 서로를 완전한 타인처럼 응시하면서 서로 절대적으로 대립해 있다. 동일성과 차이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때도 그 관계는 단지 외적이고 우연적이며, 동일성과 차이의 단순하고 분리되지 않은 내적 존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식물이나 동물의 모든 세포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그 자신과 동일하며, 또한 동시에 그 자신과 구별된다. 그것은 물질의 섭취와 배설에 의하여, 호흡에 의해서, 세포의 생성과 소멸에 의해서, 순환과정에 의해서 구별된다. 즉 생명을 형성하는 부단한 분자의 변화와 그 결과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태아기,소년기,성적 성숙기, 재생산과정, 노년기 사망 등과같은 삶의 여러 국면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다.
(4) 형식 논리학의 법칙은 절대적으로 것으로 제시된다.
형식논리학은 자신을 절대적이고 결정적이며 무조건적인 법칙을 제시한다. 모든 것에게 논의의 여지가 없는 복종을 강요하면서 사유의 세계를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통치한다. 그들은 그들의 통치력에 무제한의 권위를 요구한다. A는 언제나 A인 것이다. 이 독단을 인정하지 않고 감히 달리 주장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으랴
만약 모든 것이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한계 내에서 나타나고, 발전하고, 스스로 다양해지며, 바뀌고, 그리고는 사라진다면, 어떻게 어떤 절대적 법칙이 어떤 것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같은 정도로 언제든지,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겠는가? 이전의 분석에 따르면 신이야말로 형식논리학의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은 유일한 존재였다.
(5) 형식 논리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라도 그 자체만은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것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제공한다고 추정되는 형식논리학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즉 형식논리학은 그 자체를 설명하지 못한다. 맑스는 모든 것은 물질적 원인의 결과로서 존재하며, 연속적인 국면을 통해 발전하고 결국 소멸한다. 실제로는 형식논리학이 종교와 독단주의와 협력해 나아갔다. 영원한 논리법칙은 영원한 도덕원리와 같은 곳에 위치한다.
5) 변증법적 유물론의 탄생
맑스와 엥겔스가 1840년대 운동을 시작하면서 우선적으로 세계관을 정립하는 문제였다. 이들은 변증법을 유물론적으로 적용하는 과정, 인간 사회에 대한 유물론(사적 유물론)을 정립하는과정을 거쳐서 총체적인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세계관을 정립하였다. 칸트, 헤겔 등의 독일고전철학에서 인간의 인식에서 비약적으로 이루어지며 변증법이 완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변증법이 이들에 의해 유물론적으로 개작되고 인간사회에 대한 유물론이 완성되면서 총체적인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이 완성되었다.
19세기 당시 과학의 비약적 발전과 그에 기초한 변증법적 자연관이 성립하였기에 변증법적 유물론이 성립되었다. 이는 과학발전의 산물이고 과학적 세계관으로 인류의 과학발전의 산물이다. 1840년대의 차티스트운동 등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정치적 진출은 맑스와 엥겔스로 하여금 인간사회에 대한 과학, 역사적 유물론의 정립에 매진하게 했다. 인간사회에 대한 과학이 정립됨에 따라 비로소 세계 전체, 즉 자연, 사회, 인간의 사고를 포함하는 세계 전체에 대한 세계관으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형성될 수 있었다. #68혁명 후-신좌파적 운동?
첫째 마당 철학이란 무엇인가
첫째 마디 철학과 일상생활의 관계
1. 철학의 필요성- 철학은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고 우리 생활은 철학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 나간다.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부분만 보아서는 안되며 전체 모습을 파악해햐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2.사례들- 사례1. 물에 열을 가하여 끓이면 물이 없어진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흘러간다. 두 가지 현상은 연관되어 있다.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되고, 수증기는 또 공중에서 냉각되어 조그만한 물방울이 되며, 이것이 모인 것이 구름이다. 구름은 다시 눈이나 비로 지상으로 떨어져 물이 된다.
사례2.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닭이나 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즉 세상이 있으면서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다 둘 다 모두 생물이 진화해 온 어떤 단계에서 나타난 것이다. 먼저 알이이로 부르는 것이 생겨 알을 낳은 여러 가지 동물이 나타나고 그 뒤에 닭이 생긴 것이다.
3.철학은 감상과 어떻게 다른가?-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생각을 감상感想이라 한다. 감상은 혼잡하고 철학적 생각은 체계적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생각 즉 감상은 각자의 생활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감상은 일관되지 않고 혼잡한 것이다. 모든 사물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자기 생활범위에서 오는 제약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사물에 타당한 법칙과 원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철학은ㄹ 감상에 의존한다. 즉 감상이 없으면 철학적 생각도 없다.
사례3. 지역적 환경이 다르거나 사회적 환경이 다르면 동일한 사물을 놓고도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 마디 철학은 인생의 나침반~세계관
1. 개별과학과 종합학문인 철학 광물학-광물,생물학-생물, 법학-법, 경제학-경제 역사학-역사
철학을 필로소피아(Philosophia)=필로스(Philos 사랑)+소피아(sophia지혜) 지혜를 사랑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탐구한다. 철학이란 자연과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 태도이다. 세계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태도로 다른 말로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우리 머릿속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까지도 결정한다.
2. 세계관-사람은 활동범위↑,관계를 맺은 사회적 범위↑-세계인식↑. 이런 인식 양적 증대되고 질적 심화과정→삶의 가치관과 세계에 대한 세계관형성.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체계화.총체성 과정-세계관 형성과정. 철학이 지양되고 하나의 단순한 세계관이 되기 전에 철학은 일종의 지식의 총체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더 이상 기존의 철학과 같이 과학의 과학, 지식의 제왕이 아니라 단순한 세계관이 되었고 이를 철학의 지양이다. 기존에 철학에 담겨 있던 많은 영역들이 분화되어 발전하는 개별과학 대상이 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과학적 세계관이다. 19세기 근대과학 3대 발견 즉 진화론, 세포의 발견, 에너지 보존 및 전화의 법칙 등은 변증법적 자연관을 가져왔다. 맑스와 엥겔스는 19세기에 물질적 삶, 물질적 생산의 문제가 역사발전의 추동력임을 인식하였고, 한편으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에 의해 인간역사가 추동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 철학은 혁명적 실천의의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인식은 실천과 결부될 때만 구체성과 풍부함,정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실천은 인식에 반성자료를 제공해주면서 변증법적 부정을 통한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3. 사례 실업-향락주의자, 염세주의자, 숙명론자, 현실주의자
4. 체계적인 세계관이 필요한 이유?-상식적 세계관은 자기가 겪은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체계적이지 못하다. 새로운 곳에서 생활한다든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때, 또는 일관된 생활을 하고자 할 때는 상식적 세계관으로는 충분치 못한다. 그러므로 체계적인 세계관이 필요하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을 기초로 한 것이며, 올바른 철학은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세계관이다.
둘째 마당 ~모든 것은 관련되어 있다.
첫째 마디-늑대는 늑대, 멧돼지는 멧돼지인가
1) 사물의 관련성 이해의 중요성
.사례1. 늑대-주민들이 무서워 밤에 외출 삼가-주민들이 늑대 죽임-멧돼지의 번식 증가-농작물피해/육식동물x-초식동물의 수 증가-삼림황폐-나무x-산소부족으로 인간도 생활 힘듬
사례2. 육체와 정신 분리:육체-탐욕 죄악, 정신-선만 천국/ 뇌는 신체의 일부분, 육체→정신
심리학-생리학-생물학-화학(화학반응-분자결합과 분해)- 물리학(원자)-지구과학(요소기원)-천문학(태양계)
사례3. 노동자,농민, 학생, 상인 등 사회계층의 사람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 상호작용하면서 생활하고 정치와 밀접히 관련/ 각자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하고 정치 관심x/ 노동자는 상품생산만, 농민은 땅만 파고, 학생은 공부만하라는 주장이 잘못됨
사례4. 플라톤의 <국가> 이성적 인간(정치,지혜,귀족)-기력적 집단(국가방위,용기,무사)-정욕적 집단(생산,절제,평민.노예) 신분제 사회→이상국가론 *공자도 마찬가지
사례4. 2차 대전 때 일본에 핵폭탄 투하-제조에 관계한 존 힐튼-참가하게 된 동기가 순수과학이란 이름 아래 과학을 사회나 인간으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했기에
둘째 마디-바람이 불면 통 장수가 돈을 번다.
2) 사물의 관련성 이해의 중요성-관련성의 상대적 독립
.농부.노동자(의식주)와 저술가(책)의 결과물에서 관련성. 해-햇빛-식물(먹거리)-바다 해산물-산에서 나무나 석탄같은 연료-나무는 대기에 이산화탄소.산소:공기 맑게 해줌→우리는 사회적.정신적.자연적으로 외계의 사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
@관련성만을 강조하면 단편적인 사고방식 빠짐
사물은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지 않다. 이를 상대적 독립
.사례1. 은으로 만든 공-압력-얇은 은박지-은체적 변하지 않지만 표면적은 변함-이 경우 체적과 표면적은 서로 분리할 수 없지만, 한쪽이 다른 쪽에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변화할 수 있다. 체적과 표면적은 한편으로는 관계,다른 한편으로는 관계하지 않는다.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
사례2. 한 사람의 일생 청년-장년-노인 변함. 입는 옷과 하는 일 달라짐-모습이 변함. 사람의 본질적인 면과 현상적인 면은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
사례3. 인간의 정신구조 회사동료나 친구-민주적인 사람, 여성문제-봉건적이 생각/ 돈 범-수단과 방법을 안가린 인색, 자기 자녀에게 인정 많은 아버지/실험실-아주 과학적인 태도, 밖에서는 비과학적 사고→인간의식도 상대적 독립하에 존재. 인간의 정신구조는 매우 다면적이며 정신구조의 각 부분이 불균형하게 발전⇒정신구조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가를 알고 그 부분에 정신적인 자극을 줌으로써 전체적으로 정신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2.사물의 상대적 독립 파악의 중요성-모든 사물은 관련을 맺고 있는 동시에 상대적 독립 하에 존재한다. 즉 관계하고 있음과 동시에 관계하고 있지 않으며 그것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쪽은 다른 쪽에 관계없이 일정한 한계 내에서 변화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 주위 사물과 맺고 있는 연관과 그것의 상호작용을 고찰-무수한 연관이 있어 복잡하게 관계. 무수한 연관들이 모두 똑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각각의 연관이 그 사물과의 연관 속에서 일으키는 작용에는 차이가 있다. 이것은 무수하고 복잡한 연관 가운데 본질적인 연관과 비본질적인 연관. 주요한 연관과 부차적인 연관이 있다. 사물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여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순망치한
*참고책-철학에세이(본교재), 세계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새롭게 보는 논리학, 유물론의 과거와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