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순이삼촌&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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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涯月 - 나종영
서른 무렵 떠나간 사랑
달뜨는 애월에 남겨둔 사랑
파도치고 물새는 우는데
가슴 깊이 새겨진 뜨거운 꽃떨기여
산마루에 빛나던 한 줄기 불빛의 기억
눈보라 치는 바닷가 끝없이 걸어도
떠나간 시간은 만질 수 없네
세상은 굽이돌아 바위가 깎여 갔지만
샛바람에 날리는 붉은 꽃향기 잊을 수가 없네
새벽길 깨치고 서른에 떠나간 사람
어둠은 깊고 별빛이 서러워라
사랑은 물결에 흘러서 가고
동백꽃 달빛에 홀로 피었네
그대 없는 억새오름 하늘은 붉고
서른 살 청춘에 타오른 불꽃
노을 속에 펄럭이는 그대 하얀 옷자락이여
눈 덮인 산하 외로운 깃발이여
동트는 바다 너머 새벽은 오네
너무나 푸르러 검붉은 바다
백 년이 오고 백 년이 가도
순결한 서른의 사랑
가슴에 고이 묻어둔 애월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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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때 나이 서른도 채 못 되어 산화한 젊은 영혼들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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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작가는..
1960년 제주 오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 광신중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등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소설 습작을 병행했다.
1975년 단편소설 〈아버지〉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같은 해 습작기의 작품인
〈꽃샘바람〉과 〈초혼굿〉·〈실어증〉 등을 발표했고, 이어 1976년 단편 〈동냥꾼〉과 〈소드방놀이〉를 〈한국문학〉
과 〈현대문학〉에 각각 발표했다. 1978년 제주도 4·3사건을 작품화한 중편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제주도의 민중사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문제 작가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4·3사건에 대한
금기을 허물어 뜨림으로써 1970년대 최고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았으나 작가 개인으로서는 필화사건을 겪는
등 고통이 따랐다.
소설 순이삼촌...
이 소설은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려 고향에 들른 서술자 ‘나’가 친척 아주머니인 ‘순이 삼촌’(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다.)이 죽은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되어 그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30년 전 제주도에서 있었던 비극적 사건의 한가운데서 두 자식을 잃고 천행으로 살아남았으나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고 평생을 신경 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며, 그 비극의 현장인 자신의 ‘옴팡밭’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자살하였던 것이다.
소설의 전개를 따라 그녀가 무엇 때문에 자살했는가가 드러나는 한편, 제주도 4.3 항쟁 당시 제주도민들이
겪었던 비극의 실상이 서술자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회상과 증언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그 핵심은 국가
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것이다.
4.3사건은
4 ・ 3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 여에 걸쳐 2만5000~3만 여
명의 제주도 주민들의 희생당한 사건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6 ・ 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으로 꼽힌다.
2000년 제정된 '제주4 ・ 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4 ・ 3사건의 시기를
경찰의 발포 사건이 있었던 1947년 3월 1일부터 한라산 금족지역이 해제되는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7개월 간으로 잡고 있다.
이 시기 동안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당시 도민 인구의 11% 가량에
해당하는 2만5000~3만 여 명의 주민이 희생당했다. 가옥 4만 여채가 소실되었고, 중산간 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다.
4 ・ 3사건은 군사정권 동안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되며 금기시되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특별법 제정, 진상조사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진상규명과 정부의 공식 사과, 희생자 보상 등이 이뤄졌다
제주4.3평화공원
역사 이래로 영웅만을 기념하던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민초들의 역사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인권기념공원이다. 제주 4.3평화공원 조성사업은 제주4.3사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의 하나로 이루어졌으며, 4.3특별법 공포(2000), 공원부지 매입, 조성기본계획 연구 용역, 현상공모,
건축공사, 전시물 제작 및 설치 등이 이어여 2008년 3월 28일 개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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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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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제주 4.3 행방불명희상자 위령탑 비문을 옮깁니다
진혼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다시 쓰러진 산하에 아롱진
눈물의 기억을 풀어 놓겠습니다
죽음의 먹구름이 막 올러오던 그해 봄
아비와 아들은 토벌대에 걸려들어
주정공장 수용서에서 죽도록
곡욕질 당했습니다
천형같은 도피자 가족으로
닉인 찍힌 식구들은 육지 형무소로
끌려간다는 기별에도
따뜻한 한마디 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나라는 세워졌지만
해방조선 빨간우표로 보내온 엽서 한장이
마지막 사랑이었나 봅니다
이제 나는 아득히 노래합니다
까마귀 소리 처량한 많은 세월
주정공장 수용소 긴 벼랑 붉은 동백꽃이
뚝뚝 떨어 질 때 그 고운 사람들은
어디로
어디로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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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작을 볼 수 있어 큰 보람을 갖습니다.
기획사 음악교육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잽싸게(?) 전화 예약을 하신 토즐님 깜순이님을 비롯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기꺼이 전화 예약을 해주신
사즐님 새날님 소전님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2층도 아닌 3층에서 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문화나들이에서 뵈옵겠습니다.
- 이같또로따
첫댓글 4.3사건에 대해 자세히 적으셨네요
이렇게 대단한 후기를 쓰시는
로따님의 열정과 능력에
탄복합니다
가슴 짠했습니다.그리고 미쳐 몰랐던 역사를 되돌아 보았구요.
옆자리에서 함께해 더욱 보람 가득했구요.
겪어보지않은 우리세대들은
그 큰 아픔의 역사를 자세히 알아보고 잊지 말아야하겠지요.
로따님 덕분에
뜻 있는 공연 관람을 하여 역사를 다시 배웁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우리님들 태어난 시기라 가슴에 더 아프게 와닿는 얘기입니다.
늦게라도 제주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놀토님 께서는 미리 책을 구해 탐독하셨다지요?
연출 음향 연기 등 모두모두 감흥깊었던 시간였구요.
제주도 4.3사건 묻어버릴수있는
민중사 대사건 로따님에 자세한
설명을 읽어보니 큰 사건사네요
큰 작품을 못 봐 많이 아쉬웠는데
후기보니 많이채워지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다시한번 역사 공부를 했답니다.
함께하셨으면 뜻깊은 시간였을 턴데 ㅠ 다음에 함께하시기를.
로따님 늦은시간 까지
대단히 수고많으셨습니다.
세세히 4.3 아품의 역사를
잘 기록해주셔서 순이삼촌
4.3오페라 공연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6년전 4.3평화기념관 상설전시실을 박물관에
서 견학을 다녀온곳이어서
더욱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귀한 공연 관람을
볼수 있는기회 주셔서
깊은 감사드립니다~***
이미 오래전에 4.3평화공원을 다녀오셨군요.
올만에 함께하여 반가웠습니다.늦어 커피타임 못해 아쉽구요.다음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