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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양우정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송재휴1
① 고양둘레갈11코스=쥬리리움동물버스정류장-월산대군사당-송강정철시비
-필리핀참전비
② 고양둘레길12코스=필리핀참전비-대자동마을회관버스정류장-촤영장군묘-고양중남미문화원응달산버스정류장-전주이씨묘-선유랑마을-안장고개(선유동입구버스정류장)
산해위치 : 고양
① 산행시간 : 11코스 3:10
② 12코스 3:20
2023 6/20 화요일 | 경기둘레길11-12코스 | 6:30-20=6:10 | ①11코스(3:10 ②12코스3:20 |
-차장 밖 풍경들이 한순간에
눈에 들어왔다가
멀리 사라진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이
산행을 잘하라고 손짓을 한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풍경들이
잡힐 듯하고 집들이 참 정겹게 보인다.
산행 후에는 결국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만 마음에 닿는다
-여행이란
세월이 지나는 흘러가면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가는 외출이며
길에서 길로 연결되는 외출이며
길에서 길로 연결되는 것이다.
떠나고 머무는 곳에서
또 다른 길을 묻고
모든 이야기가 길 속에서 만들어진다.
때론 인생 뭐 있어 하며
무작정 기약 없이 떠나도
기다려주는 곳은 없어도
반가운 곳은 없어도
반가운 곳은 너무나 많다.
길은 여행을 만들고
여행은 길을 만든다.
.
친구와 쥬리리웅동물정류장 만나 산행을 시작했다.
테마동물원쥬쥬
도심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동물등을 체험할 수 있는 학습공간이다.
구내 최초 살아있는 동물 전문 박물관으로
다양한 동물들을 가까이서 직접 관찰되고
체험을 통해 성명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공간이다.
송강문화원
송강 정철(1536-1593)은 조선중기 문신 겸 시인으로
한문을 주류를 이루던 가시문학의 대기로서
주요 저서로는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이 있다.
송강마을은 정철선생이 살아생전 마믈렸던 곳으로
마을입구인 39번 구도변에는 송강의 시비가 서있고
송강고개를 넘어가면 송강이 시를 했다고
송강보가 있으며, 전시관 뒤에는 선생을 사모했던 강아의 묘가 있다.
원당교를 건넌다.
-사람들은 산행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동기부여를 하고
삶의 꿈과 희망을 만든다.
발바닥 닿은 곳마다
아름다운 광경에 매료되었던 산행은
삶에 활력을 주고
새로운 원동력을 채워준다.
지역 | 코스 | 코스명 | 시작점 | 종료점 | 거리 | 소요시간 |
김포 | 1코스 | 염하강철책길 | 대명항 | 문수산성남단 | 14km | 4시간 |
2코스 | 조강철책길 | 문수산성남단 | 애기봉입구 | 8km | 3시간 20분 | |
3코스 | 한강철책길 | 애기봉입구 | 전류리포구 | 17km | 4시간 30분 | |
고양 | 4코스 | 행주나루길 | 행주산성 | 호수공원 | 11km | 2시간 20분 |
5코스 | 킨텍스길 | 호수공원 | 동패지하차도 | 9km | 2시간 20분 | |
파주 | 6코스 | 출판도시길 | 동패지하차도 | 성동사거리 | 14km | 3시간 40분 |
7코스 | 헤이리길 | 성동사거리 | 반구정 | 21km | 6시간 30분 | |
8코스 | 반구정길 | 반구정 | 율곡습지공원 | 13km | 3시간 40분 | |
9코스 | 율곡길 | 율곡습지공원 | 장남교(원당리) | 19km | 5시간 20분 | |
연천 | 10코스 | 고랑포길 | 장남교(원덕리) | 숭의전지 | 18km | 5시간 |
11코스 | 임진적벽길 | 숭의전지 | 군남홍수조절지 | 19km | 5시간 30분 | |
12코스 | 통일이음길 | 군남홍수조절지 | 역고드름 | 28km | 8시간 10분 |
철망기둥에 고양누리길 리본이 걸쳐 있다.
누리길을 가는데 어디선가 까치가 울어댄다,
까치가 울어서
산울림
아무도 못들은
산울림
까치가 들었다.
산울림
나팔꽃
이제는 한계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화자의 예상과 달리
끊임없이 뻗어가는 나팔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성찰한다
나팔꽃을 보며 경탄한다.
그리고 꽃봉오리마저 피워 내는
나팔꽃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경탄한다.
한계에 직면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이를 이겨 내려는 나팔꽃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도, 그리고 우리 인생의 슬픔도
더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장미꽃을 보면 늘 떠오르는
유월이 부른 '장미'
친구에선 꽃내음이 나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친구는 장미를 닮았다.
친구의 모습이 장미꽃 같아
친구를 부를 때 친구를 부를 때
장미라고 할거요.
친구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싱그런 잎사귀 돋아난 가시처럼
어쩌면 친구는 장미를 닮았네요
어쩌면 친구는 장미를 닮았네요.
.
장미꽃보다 더욱 아름다운
장미꽃 향기보다 더욱 향기로웠던 사람 '친구'
-나무 한 그루가
세월과 비바람과 햇살이
잘 어우러져서 근사하게 상처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멋진 예술품이다.
공릉천
양주시, 고양시, 파주싱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쳔이다.
공곡천이라 불렸으나
2009년 원래 이름인 공릉천으로 개명되었다.
공릉천을 따라 걸어보면 메타세쿼아길도 이어져 있고
억새 등 많은 야생식물 및 오리, 백원앙 등 애생 조류들도 불 수 있다.
가둔천이라고도 한다.
길이 53.75km.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에 있는
챌봉(516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고양시 고봉동, 파주시 조리면, 금촌읍 일대를 지나
파주시 탄현면 송촌리 북쪽에서 한강 하류 동쪽으로 흘러간다.
이곳의 강변을 따라 남과 북을 이어주는 통일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이 도로는 예로부터 서울-평양 간을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이 강의 중류지역인 고양 부근은 심천, 조리면 부근은 봉일천,
금촌읍 남쪽은 금성진, 하류인 교하 부근은 방천이라 부른다.
조선 제8대 예종의 추존비인 장순왕후
한씨의 능인 공릉(恭陵, 1461)이 지금의
파주시 봉일천리 일대에 들어선 후
공릉천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공릉은 한씨가 세자빈의 신분으로 승하한 후
처음에는 세자빈묘로 조성되었는데,
성종이 즉위하면서 한씨를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호를 공릉이라 칭하여 지금에 이른다. 고릉은 봉일천리 일대에
조성된 영릉, 순릉과 더불어 파주삼릉이라 불리며,
사적 제20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20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고양·경성 측도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기록된 후
2008년까지 곡릉천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져 오다가,
국토해양부에서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의 검증과 심의를 거쳐
2009년 1월부터 공릉천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이 강유역에는 봉일천의 공릉을 비롯,
공양왕릉, 서삼릉, 일영의 온릉, 탄현면의 장릉,
고려의 최영장군 묘 등 많은 능묘가 산재해 있다.
그리고 서울 근교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송추유원지와 일영유원지가 있어 도시인들의 휴식처를 제공해 준다.
이 강유역의 주산물인 쌀은 예로부터 교하미라 하여
여주미·이천미에 비견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였다.
특히 강에서 잡은 게는 궁중에 올리던 진상품이었다.
호박꽃
이제야 호박꽃을 깨닫았다.
한 마리 호박벌이 되어서
나 호박꽃하고만 살리라
저 환한 속 깊은 곳으로
나 캄캄하게 실종되리라
귀신도 모르는 무덤 되리라
고양구화훼단지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 조성된 화훼특구단지이다.
총면적은 약16만이며 2004년도 조성되었다.
현제 200여 농가가 입구하여
주로 장미, 채소, 분재, 과실, 난초, 절화 등을 재배하고 있디.
최첨단지 의 온실을 비롯하여 선진국의 재배기술,
그 품격의 유통단지 및 출하를 통해 높은
고수익을 올리고 있고,
현장에서 직접 구애도 가능하다.
공릉천 메타세퀴이아 길
공릉길 송강누리길 구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나무 숲길이다.
이 길은 1970대 중반, 인근에 있는 통일로를 이용하여
남북한 당국이 서로 왕래하여 회담을 할 때 만들어진 숲길이다.
당시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남한 측이 풍치(風致)를 목적으로
공릉천 재방위에 수백그루의 메타세워이야 숲길을 조성한 것이다.
숲길의 총 길이는 1.5km에 이르며 신원동 송강마을로 연결된다.
매타세쿼이야는 봄과 여름에는 녹음이 푸르며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물든 후 늦가을이면 잎이 떨어진다.
나무의 수령이 삼각형을 이루고 곱게 뻗어 우리나라의
곳곳에서 가로수를 심어져 있다.
이 숲길 공릉천 건너편에는 1번 국도인 통일로가 지나며
관산동 건전 체육공원, 필린핀 참전비가 있고
서울과 파주를 연결하는 많은 교통편이 경유하고 있다.
고양송강누리길
중단된 철길 신호등을 건너자 가니 가옥이 나오고
산길에 들어선다
-꽃 감고 견디는 푸른 나무 속으로 나비 한 마리 팔락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이다.
걸으며 호주머니 속에서 그러쥔 빈주먹 , 허공이다.
이정표에서 월산대군사당→ 방향을 진입한다.
술잔처럼 오목하거나
접시처럼 동그랗지 않고
양물처럼 길쭉한 꼴로
밤낮없이 허옇게 뿜어내는
밤꽃 향기
쓰러진 초가집 감돌면서
떠난 이들의 그리움 풍겨줍니다
대를 물려 이 집에 살아온
참새들
깨어진 물동이에 내려앉아
고인 빗물에 목을 축이고
멀리서 고속철도 교각을 세우는
크레인과 쇠기둥 박는 소리에 놀라
추녀 끝으로 포르르 날아오릅니다
참새들이 맡을 수 있을까요
아까운 밤꽃 향기
밤꽃 향기 / 김광규
-오매!
환장하겠네.
싱그러운 풀 이파리에
박가분 풀어 놓았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유월의 농밀한 유혹
말미잘의 풋풋한 내음으로
옷고름 풀어 헤친
저 까슬까슬한
가슴을 보게
밤꽃은 언제나
밤에만 사랑을 나누고
밤에만 욕정을
불태울 줄 알았는데
대낮 초장부터
이게뭐람?
푸른 유월의 숲 자락에
쏟아 놓는
저 은밀한 향기
.
밤꽃 피는 이 계절에...
노란 색을 품었지만 흰색에 가까운 밤꽃들이었다.
주변에는 밤나무가 몇 그루 더 있었다.
길쭉길쭉 하게 피는 밤나무 꽃은 새로 자라난
가지의 잎 마디마다 한 송이씩 한꺼번에 여러 개가 핀다.
그 때문에 꽃송이들이 많아 꽃냄새도
상당히 강하게 퍼진다.
내가 말 한 <그 냄새>는 성인 남녀, 특히 기혼자라면
모두가 아는 냄새다. 옛날부터 밤꽃 냄새나 밤송이와
연관되는 성(性)농담들과 웃자고 지어낸 맹랑한 얘기들은 참 많다.
특히 그 내용들은 여자들 앞에서는 대놓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이런 얘기들은 내 고향 마을 개천가에 있던
커다란 두 그루 밤나무 아래에서도 자주 오고 갔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 대부분은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으며 자랐기 때문
에 밤꽃이 만발한 곳을 지날 때쯤이면 슬며시 웃게 되나보다.
나 역시 푸른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밤꽃들의 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웃고 지나왔다.
나는 이 길을 여러 해 다녔기 때문에 해마다
밤이 상당히 많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다만 밤이 익어 밤송이가 벌어질
무렵이면 오가는 사람들이 다 따버리고 늦가을까?
지 달려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코스모스
몸달아
기다리다
피어 오른 숨결
오시리라 믿었더니
오시리라 믿었더니
눈물로 무늬진
연분홍 옷고름
남겨 주신 노래는
아직도 맑은 이슬
뜨거운 그 말씀
재가 되게 할 수 없어
곱게 머리 빗고
고개 숙이면
바람부는 가을 길
노을이 탄다
~ 이 해인 ~
-코스모스처럼
명랑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순하게
코스모스처럼
다정 다감하게
코스모스처럼
단아(端雅)하게
코스모스처럼
가볍게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코스모스처럼
꺾일 듯 꺾이지 않으며!
구부러진 작은 도로를 걸으니 마을의 뒷골목을 걷는다.
-뒷골목
뒷골목에는 애환이 있고
삶이 있고 낭만이 흘러 넘친다.
수많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듯
그들만의 삶의 이야기가 있다.
이정표에서
월산대군사당→ 간다.
풀밭길을 걷는다.
풀밭을 걸을 땐
뒤꿈치로 걸어도
미안해.
풀밭을 걸을
내 발이
가벼운
아이 새면
발이면 좋겠다.
무게가 없는
산소나 공기가 되면 좋겠다.
풀들도
벌레들도
그림자처럼
풀밭에 눕고 싶어요.
그림같이
몸무게를 빼어버리고
그냥 날고 싶어요.
코에 스미는 향기
자연의 생명을
바람처럼 느끼고 싶어요.
흐르는 물소리 같이
숨쉬고 싶어요
풍선처럼 높이 높이 뜨고 싶어요
내 영혼이 돌아가
편히 쉴 그런 자유의 나라로
물새가 날 듯
그냥 날고 싶어요.
물구리 마을과 느티나무
물구리마을은 고양시 덕양구 산월동에 속한 자연촉락 마을이다.
예부터 한자로는 수곡(水谷)으로 표기하며
물골리라 부르다가 현재는 물구리라 되었다.
물구리는 예전부터 마을에 물이 많아 불거진 이름으로 얼마전까지
주민들이 이용하던 우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물구리 마을에는 조선조 전기부터
월산대군(月山大君)의 후선들이 살고 있으며
지금도 이와 관련하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이 풍치(風致)의
목적으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보호수
O품격 : 마을나무 지정번호 : O경기 고양26
-수령 : 약100년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신정동 산14번지
-수고 : 20m -관리자 : 일산동장
-나무둘레 : 2.6m
특하 사항 : 밑둥으로부터 3m지점에서 모두 8가지로 나뉘져 져 있고
뿌리부분에 큰 옹이가 만들어져 있다.
동쪽에서 나뭇잎이 서쪽으로 내려다 볼 수 있어 기울다
-저 늙은 느티나무는 아마
어느날 느닷없이 날벼락 맞고
문득 깨쳤으리라 몸을 비웠으리라
중심을 잡기 위해 무게를 덜고
부질 없는 노욕을 버렸으리라.
속 비우고 여생을 지탱하는 힘
마지막 안간힘이 곧 나무아미타불
이승에서 이름을 완성하는 것이리
이제는 저승의 명부에도 빠졌을
저 늙은 느티나무는 이 다음
죽어서도 느티나무 타불(陀佛)이 되리.
월산대군과 사당
이곳에서 설명문 뒤로 약50m지점에는 조선조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사당이 위치하고 있다.
사당은 현재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으며
사당의 명칭은 석광사이다.
또한 월산대군의 묘와 신도비는
호국로 너머에 있는데 고양시 향토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월산대군은 이곳 고향 땅 신원마을에 별창을 짓고
그 이름을 자신의 호를 따서 풍월정이라 부르며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곳 능골(물구리)고개 부근에는
월산대군의 자손인 덕풍군, 파랑군 등의 묘소와 비석 등
관련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월산대군 묘
월산대군 사당
월산대군 사당 앞 스탬프
월산대군(月山大君祠堂)
경기문화조 79호
월산대군을 조선9대 임금인 성종의 친형으로 이름은
이정(1454-1485)호는 풍월이다.
문장이 매우 뛰어나 중국까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성종에 대한 충성과 우애가 매우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효는 효문공이다.
사당 옆에는 원산 대문의 묘가 있다
사당은 숙종19년(1693)이전에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정조10년(1786)에
이미 있단 건물들은 다시 지은 것이다.
이곳에 영조가 직접 석광사란 현관을 하사하였으며,
정조, 순조 때에는 조정에서 신하가 나와
왕을 대신하여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현재 사당에는 산주를 옮길 때
사용하던 작은 가마인 요여가 남이 있다.
월산대군 사당
이정표에서 송강정철시비→로 향한다.
-새 한 마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내 주위를 기웃거리더니 날아가 버렸다.
꼭 여행을 왔다가 훌쩍 떠나는 나의 모습이다.
도로에 설치된 스태프 도장을 찍으려 하였으나
굳게 닫쳐 있어 못 찍고 그냥 떠난다.
고양의 독립운동 유적지 대자산 일대
고양군 백제면 대자리, 관산리에서는 3 .1 운동 당시 많은 주민들이 대자산과
가장곡산 등에서 만세 수위를 벌인 사실이 당시 일제 사건 기록에 남아있다
“3월26일 백제면 대자리의 이해철, 권성용, 이상돌 등은
대자산에 올라 주민 수십 명과 함께 불을 피우고
다음날 아침까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검거되어
모두 징역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3월27일 백제면 관산리에서는 주민 30여명이
가장곡산 정상에 올라 가 횃불을 올리며 밤새 만세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일본헌병소재소지는 고양리와 일산리에 있었는데
고양리에서는 일경의 탄압이 극심하여
고양리와 인접한 관산리, 고양리 등에서
만세운동이 결렬하게 이어졌다.
정대점. 김자근봉, 정의양, 정탱옹, 최숙석, 김기원 등은 체포되어 징역4개월에 처해졌다.
이 안내문은 고양의 3.1운동 민족 정신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서 고양시에 세움
대자산 숲길
대자산(大慈山) 숲길은 대지를 최영장군 묘 입구에서
고양동 고양향교까지 연결된 산속, 숲길이다
총 거리는 약2.5km로 오솔길, 평지길, 산길로 이루져 있으며
정상부에는 210m의 대자산이 있어 대자산의 숲길로 불리고 있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 동백나무 등이 우거진 숲을 이루고 있다.
숲길 기간 중 최영장군묘소, 고향향교와 같은
문화유산도 있어 오래전부터 유명한 길이다.
자연환경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며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북한산의 주봉(主峯)을 볼 수 있어 걷기 좋은 숲길이이다.
이 곳부터 인적이 드문 산길이 시작됩니다.
혼자서 걷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일행분들과 동행하시기 바람니다.
오솔길 걷는다. 소슬바람 소르르 초여름 누군가 그리운 날 회상의 언저리 걸으면 흐르는 시간 잠시 곁에 머문다 그립다 중얼거리면 오솔길 바람 설레벌레 발 아래 추억 들고 어느새 여름 길을 간다 |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많아 들어본 일이죠?
고려말 최고의 명장 최영장군이 평생 실천한 명언입니다.
안팎으로 혼란스럽던 중국 원- 명 교체기에
밖으로 외적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고려왕실을 지키려한 명장이자
재상이었죠.
중국에 혼란한 틈을 타 옛 고구려 땅
요동정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는데
이때 출병한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되돌려
역혁명으로 조선을 세울 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평성을 청렴하고,
국가에 충직했던 최영, 그의 억울한 죽음에
이 무덤에는 풀도 나지 않았다 합니다.
고양시
최영장군묘(崔榮將軍墓)
경기도 기념물 제23호
소재지 : 경기도 덕양구 대자동 산70-2
고려 말기의 명장으로 고려를 끝까지 받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당하고 최영(崔榮) 1316-1388.의 묘이다.
최영은 동주(東州)최씨로 철원에서 태어났으며
고려 공민왕1년(1352)조일신의 난을 평정한 이후
100여 회의 전투에서 매년 승리한 명장으로,
특히 공민왕5년 공민왕의 반원 정책을 도와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 서쪽 지역을 공격하여 되찾았다.
또한 요동정벌을 단행하여 팔도 통도사로서
전쟁을 지휘하였으나 출병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막지 못하고 이성계에게 체포되어
아버지인 최원직의 묘소 앞에 안장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고
양지역을 중심으로 무속신앙의 숭배 대상으로 섬기기도 하였다.
최영을 충신이자 명장이면서
“황금보기를 돌까지 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평생을 청렴하게 지내어 공직자의 귀감이 되었다.
최영장군 묘 앞의 스탬프
대자산
대자산은 덕양구 대자동과 고양동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해발210m이다
대자라는 명칭은 조선조 전기 세종대왕이 현 대자동에
대지사(寺)사찰을 준공하고 마을의 이름을
대지라고 하여 붙어진 것이다.
대자산의 산세는 북쪽으로 파주시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통일로변 공릉천에 닿는다.
산기슭에는 최영장군 묘를 비롯하여
고양향교, 성녕대군, 강안군, 이창군 묘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바위가 적고 숲이 발달되어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이나 문화유산 답사의 코스로 인기가 좋다.
이 곳부터는 인적이 드문 산길이 시작됩니다.
혼자서 걷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일행들과 통행하시기 바랍니다.
포도천 안내
이 곳에서는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며 공자의
여려 성현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가족 또는 친구들과 사진으로 ‘찰칵’~~하시고
누리길을 걸으며 좋은 추억을 남길 바랍니다.
고양향교
향교는 조선시대 군현에 설치한
지방의 공립교육기관(중. 고등하교)으로 건국 이념인
유교사상을 가르치는 교육적기능과 공자를 비롯
가인의 성현을 가리는 제례공간이다.
대성전, 동, 서무, 내삼문은 조선 말기 건축법을 보여주고
명륜당, 정사칭, 외사문은 6.25때 소실된 이후
1983년 신축함 현재 고양향교에서는 매월 초하루,
보름에 분향제를 올리고
음역8월27일(공자 탄생일) 25정현을 모시는 선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마을에서 유랑마을로 간다.→
유랑마을에서 산으로 진입한다.
산에서 내려오니 도로가 나온다.
산 입구에 SBS
식사를 하셨어요? 찰영지
다시 산길에 들었다.
성황당 고개와 돌 무더기 이야기
이곳 성황당(城隍堂)고개는 고양동과
선유동 경계를 있는 큰 고개로 선유동 누리길 구간 중
가장 높은 곳이다.
본래 중국과 한양을 잇는 연행로(燕行路)를 왕래하던
사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예길이다.
이 갈을 다니던 사람들은 소원성취,
마을 평안, 국태민안 등의 목적으로
고개 정상에 돌무더기를 쌓았고 이곳에서
민간 신앙의 일종인 성황당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고개 정상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남아 있는데
일설에는 성당고개에 쌓인 돌을 이용하여
의부 세력이 마을로 돌아오는 것을 막아 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선유동 전주이씨 묘역
이직(李稷)선생
이곳 선유동에 대표적인 선생의 이직1362`-1431 선생의 유적이다.
조선조 전기 영의전을 역임한 문경공(文景公)이직 선생의 묘소 및
시비(詩碑), 신도비(神道碑)성주이씨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직은 고려말 공민왕대에 관직을 시작하여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유명한 오로시를 만기기도 하였는데
오로시는 후손들이 세운 시비에 잘 남아 있다.
영의정 이직의 묘소는 정경부인 양천하씨가와 합장되어 있는데
고려말 조선전기의 양식인 사각 봉분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묘소 일부 문인석은 조선조 전기의 투박하며
단순한 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직선생 묘
안장고개 (상유동 입구버스정류장 도착하여 오늘
고양누리길11-12구간을 전부 마쳤다.
850번 버스 승차하여
삼송역에 내려 집으로 향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반복되는 만남이 있다.
그 중에서 제일 편하고 권태롭지 않은 만남은
아마도 산과의 만남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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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양우정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송재휴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