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0일
제목 사랑, 가장 소중한 가치
본문 요일4:15-21
오래전 학교에서 가정방문을 할 때 집이 전세인지 자가인지, 신문 구독 여부, 부모의 학력 등을 기재합니다. 이런 설문을 통해 그 집의 생활 수준은 알아낼 수 있지만 사람이 갖출 진정한 가치를 알아낼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말씀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요한 사도는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합니다. 요일4:15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방법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방법이 있고,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임을 요일4:16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이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의 머무시는 보좌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서로 사랑하는 자들 사이에 계심이 마땅합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자 안에 거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지 볼 수는 없으나 내 안에 사랑이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움과 시기가 넘치는 곳에는 사탄이 머물기에 최적의 장소가 됩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심을 무엇으로 증명하실 것입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체적인 실천이 있다면 그것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거주하십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이는 한강 작가가 초등학교 때 지은 시입니다. 사랑이란 가슴과 가슴을 연결해주는 금실이라는 말이 명문장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금실과 같습니다. 사랑은 정말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편하게 계실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형제 사랑, 이웃 사랑은 철학이나 문학으로 구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스스로 만들어 낼 능력이 없습니다. 물론 신자가 아니어도 자연 은총 안에서 사랑의 마음을 품고 실천할 수는 있지만, 그 한계는 미천하고 취약합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랑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다 주면서 사랑할 것 같은 연인들도 사랑이 식고 돌아섭니다. 부패한 사람의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품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내게 없는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이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도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롬8:39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하므로 거듭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내주신 감동적인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으니 사랑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실천해야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사랑을 실천한 단계입니다.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예수님 믿으면 자동판매기처럼 사랑이 쏟아져 나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는 사랑을 문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몸부림한다면, 우리는 받은 사랑을 삶으로 소화하고 실천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사랑의 실천은 맨발로 히말라야의 설산을 기어오르는 것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쉽다면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죄 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가치입니다. 보통 사람의 마음에는 슬픔, 절망, 상처, 분노, 미움, 증오 등 많은 악이 득실거립니다. 자연인들은 사랑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신자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신자라도 사랑의 실천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기도하며, 나의 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짧은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사는 방법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습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대학생들과 나눈 대화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이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은 사랑받는 데서 멈추지 말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면 더욱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가치는 화폐가치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할 것이나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용서가 쉽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용서해야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함은 독약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고 맙니다. 인생이라는 강을 무사히 건너려면 반드시 용서라는 징검다리를 딛고 건너야 합니다. 용서하므로 나를 과거의 짐에서 벗어나게 하고 현재의 내 삶을 치유할 수 있게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환>이란 그림을 보며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인생은 관계가 좋으면 천국이 되고, 나쁘면 불행해집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자의 인생은 환희로 가득 차고 인생의 의미가 충만해질 것입니다. 덤으로 인생의 열정도 회복될 것입니다. 인생의 즐거움과 열정이 식어졌나요? 그렇다면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 기쁨과 열정이 넘쳐나고 인생의 의미가 생기고, 가치 있는 삶에서 오는 만족이 얻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을 사랑이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믿음이 없이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소망도 믿음만큼 중요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놀라운 약속을 바라보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이 두 가지보다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은 혀에서 나옴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옵니다. 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게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받은 사랑으로 이웃과 형제를 사랑한다면 성공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가치 있는 삶, 성공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세상의 형적은 사라질 것이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따라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