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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천도재-이대로 좋은가?
부처님 법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供養)이지 천도재란 없습니다.
천도재는 중인도 마갈타국의 북쪽의 숲에서 죽은자를 위한 장례를 치루던 것에서 전래되어 오게 되었고 중국을 통하여 들어오면서 도교의 시왕사상(十王思想)이 접목 되면서 오늘날의 한국불교의 49재. 천도재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한국불교는 효라는 명분 아래 재가 크게 성행했습니다. 부수적으로 행했던 재가 돈벌이가 잘되니 본말이 전도되어 재만 지내는 절이 아마 8~90%는 차지할 것입니다. 대승경전의 지장보살은 가진 재산을 팔아 부처님을 찾아 가던중 헐벗은 이웃에 옷까지 벗어주고나니 부처님께는 가진 향하나 피워 부처님뵙기를 소원하였고, 목련 존자도 스님들 하안거 끝나는날 갖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스님들께 공양을 베풀어 어머니가 지옥고를 벗어 났다고 하던데 현시대의 불자들은 절에다 천도재를 위탁하게 되었습니다.
-영가도 수배해 천도한다는 어느 절,
천도재 예약은 밀려있고, 비용은 5백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승려라는 자가 쓴 책에 보면 천도의 자격을 붓다의 지위에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하며 붓다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00사의 00승려라고 했으니
결국 자기 절에서 하라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
예전엔 사람이 죽어 초상이 나면, 무당을 불러다 진호귀(鎭呼鬼)라는 자리걷이 굿을 해주고,
3년상을 치루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속이 미신으로 외면당하기도 했지만, 굿하는것이 번거로우니
굿하는대신 절에서 49재나 천도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천도재, 구병시식, 점 등은 무당들 것인데 불교에서 따라(흡수?)해 버린 것이지요.
역으로, 무속인이 법당을 차리고 삼존불까지 모셔두고, 주력까지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능엄신주)
신당은 법당으로, 박수는 법사로. 여자무당은 보살로 불리우고 있으니.
불교의 법당, 법사, 보살호칭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일반인들은 무속집인지 절집인지 구분을 못하게된 건 기정사실입니다..
절집에도 사주봐주고 천도재하고, 무당집에도 점쳐주고 굿하고, 인등, 연등까지 접수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불교가 사이비화 되어가는 모습을 비불교적이라고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외부 시각에서 불교를 바라보며 비판하는 것, 미신적 불교, 49재 천도재.방생,생전 예수재,힌두교적 불교, 윤회설등등)
가장 두려워해야 할것은 당신 자녀들이 육도 윤회설에 정신이 병든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절에서 하는 천도재는 수 천만에서 억대까지도 있다 합니다.
상을 당해 초재부터 막재까지 절에서 하게되면 수 백 만원이 드는데,
막말로 돈없는 사람은 절에다 위패하나 올릴 수 없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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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음, 중유란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중생의 윤회전생을 사유로 설명하고 있어, 生有와 本有·死有·中有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각자의 업력 및 아뢰야식이 모태에 의탁하여 태어나는 때를 생유라 하고, 그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본유라 하며, 죽는 순간을 사유, 그리고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을 중유라 한다.
여기서 죽음이란 壽(命)·暖(體溫)·識(心) 3자의 상실을 의미하며, 죽음을 말미암아 맞게 되는 中有는 '사람이 죽어 다시 생을 받을 때까지의 識身'을 뜻하고 있다. 이들 식신 즉 中有는 쁘레따(preta)라 불리는데, preta는 한역경전 가운데 아귀라 통칭되는 채 '가버린 사람' 즉 죽은 선조의 혼을 지칭한다. 한편 구사론에서는 이들 중유를 의성·구생·식향·중유·기 등 다섯 이름으로 칭하고 있으며, 당 생에 앞서 잠시 기한 존재로서 중유는 당 생의 처를 구하게 된다. 그럼에도 '극악 등 업력이 치성한 경우가 아닌 이상 곧바로 당 생을 얻지 못하는' 이들(욕계의) 중유는 식향의 존재로서, 끊임없이 '향을 섭취함으로서 그 생을 이어간다.'고 인식되고 있다.
'향을 섭취함으로서 생을 이어간다'는 관념은 中有, 즉 망자에 대한 제례를 유발시키는 표현으로,
망자의 친족이 공양을 올리지 않을 경우 망자의 영혼은 반드시 苦를 받게 된다고 믿어져온 인도 고래의 견해 속에서 '선조의 혼에 공양 올리는 것이 생자의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은 인도 종교 성향의 일반적 태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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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는 초기경에 바탕한 의식은 아닙니다.
초기경이나 아비담마에 의하면 죽고 나서 행하는 의식보다는 죽기전 특히 죽기 직전에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해주어 그 사람이 집착을 여의고 편안하게 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49재가 상업화되고 속물화되는 것은 불자들이 스스로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특히 법(dhamma)을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는 불자들은 삿된 작자들의 삿된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49재는 단순하게 조상에게 음식을 올리는 제사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에게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어 집착을 여의게 하는 의식이며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보시를 하여 영가가 그 공덕으로 선처에 태어나게 하고 재에 참석한 사람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삶을 점검해보는 숭고한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들의 가정에서 상이 생기면 항상 법을 념하고 고인을 위한 자비의 념을 하고 경을 독송하고 일정기간(우리 불교의 전통대로 49일이 좋겠죠)을 스스로 근신하며 우리 가정을 있게 해주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헌신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아울러 자신의 삶도 겸허하게 돌아보는 기간을 가지며 그분의 이름으로 사회나 사찰에 보시하는 것은 참으로 좋고 유익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재(齋)는 조상들에게 음식을 올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재는 포살로 옮기는 우뽀사타(uposatha)의 번역입니다. 부처님 시대부터 불자들은 초하루나 보름이나 그믐 등의 정해진 날에는 절에가서 5계나 8계나 10계를 지키면서(특히 8계, 중국에서는 이를 8관재계라 옮겼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까지는 철저하게 지켜지던 풍속이었습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공덕을 쌓았습니다. 49재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각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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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더 큰 결실과 이익이 있는 제사는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용모가 뛰어난 가미니는 이른 아침 부처님을 뵙고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바라문은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하늘을 섬김니다.
어떤 중생이 목숨을 마치면 바라문은 마음대로 죽은 이를 천상에 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 법의 주인이신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목숨을 마치거든 천상에 태어나게 해 주십시요.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가미니여, 내가 너에게 물을 테니 아는대로 대답하여라.
어떤 사람이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고게다가 산 목숨을 죽이며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사음을 행하며 거짓말을 하고,그릇된 소견을 가지는 등 온갖 나쁜 업을 지으면서 살았다고 하자,
그가 죽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당신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그러면서 악업만을 행했습니다.
당신은 그 인연으로 목숨이 다한 뒤에는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십시오″ 라고 했다 하자.
가미니여.. 이렇게 여러 사람이 축원했다고 해서 그가 천상에 태어날 수 있겠는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 게으른 그가 더구나 온갖 나쁜 업을 지은 그가 축원을 받았다고 해서
천상에 태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비유를 들면 저쪽에 깊은 못이 하나 있는데어떤 사람이
거기에 크고 무거운 돌을 던져 넣었다.
마을 사람들이 못가에 모여서″돌아, 떠올라라″하고 축원을 하였다.
그 크고 무거운 돌이 축원을 했다고 해서 그들의 소원대로 떠 오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 그가 천상에 태어날 수 없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왜냐하면 나쁜 업은 검은 것이어서
그 갚음으로 저절로 밑으로 내려가 반드시 나쁜 곳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묘한 법을 실행하고온갖 착한 업을 닦는다고 하자.
그가 목숨을 마칠 때 여러 사람이 모여서
″당신은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묘한 법을 실행하여 온갖 착한 업을 이루었습니다.
당신은 그 인연으로 목숨이 다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에 가서 지옥에 떨어 지십시오″ 라고 저주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가 과연 그들의 저주대로 지옥에 떨어지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 그것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왜냐하면착한 업은 흰 것이어서 그 갚음으로 저절로 위로 올라가 반드시 좋은 곳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이를테면 기름병을 깨뜨려 못물에 던지면 부서진 병조각은 밑으로 가라앉지만
기름은 물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같이 목숨이 다한 육신은 흩어져 까마귀와 새가 쪼아 먹고짐승들이 뜯어 먹거나
혹은 태우거나 묻히어 마침내는 흙이 되고 만다.그러나 그 마음의 업식(業識)만은 항상
믿음에 싸이고 정진(精進)과 보시(布施)와 지혜에 싸여 저절로 위로 올라가 좋은 곳에 나는 것이다.
가미니여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으며,
사음과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특한 소견에서 벗어나는 좋은 길이 있다.
이른바 팔정도(八正道)가 위로 오르는 길이며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가미니와 여러 비구들이 다들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中阿含 伽彌尼經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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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결실과 이익이 있는 제사
꾸미단따 브라흐민(제관)은 부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고따마 부처님 이 제사보다 덜 어렵고 덜 번거롭고 그러나 더 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오는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브리흐민이여 그것은 덜 어렵고 덜 번거롭고 어느 누구라도 청정한 마음으로
계행을 지키는 것입니다.
살생을 하지말고,
주지않은 건 갖지 말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말며
술을 금하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덜 어렵고 ,덜 번거로우며 그러나 더 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오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고따마 존자님 이 다섯가지 계(오계)보다도 더 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오는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
"있습니다...브리흐민이여 그것은 붓다는 온전히 깨달은 분이며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법을 설합니다.
그리고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계행을 닦습니다.
감각기관을 절제하고 마음챙김에 머뭅니다.
그 결과 네 가지 선정을 통하여 번뇌를 맑힙니다.
그리고 열반을 성취하고 윤회의 사슬을 끊습니다.
이런 수행이 바로 그 어떤 제사보다도 더 단순하고 더 많은 결실과 이익을 가져오는 제사입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고따마 존자님 저를 재가신도로 받아 주십시오.
저는 각각 700마리의 황소와 수송아지와 암송아지와, 염소와 숫양을 모두 풀어 주겠습니다.
저는 그들을 살려주고 푸른 풀을 먹게 하겠습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하고 시원한 바람이 그들 주의에 감돌게 하겠습니다."
(디가 니까야 5꾸따단따 경 26-28)-일아스님 빠알리 경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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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인 천도재는 무엇인지 알아 봅시다.
“고따마 존자께서도 제사를 칭송하십니까?”
1. 그때 우다이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세존께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다이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께서도 제사를 칭송하십니까?”
2. “바라문이여, 나는 모든 제사를 칭송하지는 않는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나는 모든 제사를 칭송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그 제사를 통해서 소들을 죽이지 않고 염소와 양들을 죽이지 않고
닭과 돼지들을 죽이지 않고 여러 생명들을 살해하지 않는 이와 같은 살생을 포함하지 않는 제사,
즉 항상 보시를 베풀고 대를 이어가는 제사를 나는 칭송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바라문이여, 이와 같은 살생을 포함하지 않는 제사에 아라한들과
아라한도에 든 자들은 다가가기 때문이다.”
3. “세상의 장막을 벗겨버리며
세상에서 시간과 태어날 곳을 넘어섰고
잘 제어된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은
살생을 포함하지 않는 적절한 제사를
적당한 때에 거행하는 그런 제사에 참여한다.
공덕에 관해서 현명하신 부처님들은
이러한 제사를 칭송하노라.
어떤 이는 깨끗한 믿음을 가진 마음으로
제사와 슈랏다에 어울리는 공양물을 올리고 제사지낸다.
좋은 들판인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과
보시를 올려 마땅한 그들에게 올린 공양은
잘 준 것이고 잘 제사 지낸 것이고 잘 얻은 것이다.
그 제사는 좋은 결실을 가져오고
삼보에 신심있고 슬기롭고 현명한 자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이와 같이 제사 지낸 뒤
악의가 없는 행복한 세상을 얻으리.“
쌍윳따 니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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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오계를 지키며 청정한 삶을 살며 선정을 통하여 번뇌를 끊는 길이
더 큰 결실과 이익이 있는 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천도재를 백만날 지내고
만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낸다해도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며, 주지않는 것을 탐내며,
삿된 음행을 하며, 거짓말을 하며, 술을 마신다면 아무 이익이 없다 하십니다.
그러므로 불자들의 가정에서 상이 생기면 고인을 위한 경을 독송하고 일정기간(우리 불교의 전통대로 49일 정도)을 스스로 근신하며 우리 가정을 있게 해주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헌신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아울러 자신의 삶도 겸허하게 돌아보는 기간을 가지며 그분의 이름으로 사회나 어려운 이웃, 사찰에 보시하는 것은 참으로 좋고 유익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한국불교 이미지 대 추락!
영험적, 돈되는건 다 끌어드린 비불교적인 요소들이 불교를 망치고 있습니다.
누가 불교를 망치고 있습니까? 제를 지내로 오는 신도인가요? 부추기는 승려인가요?
수효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 애초에 누가 천도재를 조장 했나요?
예전 스님들은 ..천도재비 받지 않고 시주자에 대한 배려 였지 싶습니다.
평소 절에다 쌀이라도 가져다 주었던 시주자나 초상이나 절에와본 이 누구나 가리지않고,
형편대로 제물만 준비해와서 스님께 부탁하면, 경을 읽어주며 망자가 좋은 곳으로 갔으니
안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 49재 천도재를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가 굳어지고, 거금의 천도재 문화가
정착되었으니..막말로 막대한 수입원이 되어, 너도나도 절을 차려 천도재만 지내는 절이 수두룩 하다는 것,
천도재를 조장하는 원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윤회설이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생이 있음을 믿기에 극락왕생 천도재를 지내는거 아닐까요?
49재 천도재를 불교적으로 할 방법은 없지만 효를 중시하는 민족 정서에 맞게하는 방법이 있다면,
한달에 한번 또는 일년에 한번 정도 합동으로( 효의날)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재를 지내는 것이라 봅니다.
한달에 한번 지내게 되면 초제~ 49제 지내는 폐단이 한날로 정해져 합동으로 치뤄지는 것이 됩니다.
(초제 막제..이런 날짜등에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재가신도들에게 이익이 있는 제사는 무엇인지? 망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무엇인지
바르게 가르쳐 줘야 할 의무가 승려들에게 있다고 봅니다..바로 작복이지요.
불교의 절은 죽은자를 상대로 제나 지내는 절이되지 말고, 절에 오는 모든이들이 고에서 해탈하여
평안해지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할것입니다.
재가불자들도 무엇이 망자를 위하는 길인지 알았으면, 재나 지내는 절에는 발걸음을 끊어야 합니다.